코로나사태 이후 회계개혁 점검│⑥ 감사인 등록제

"감사 수임단계에서 기업 검증, '감사 난민' 나오면 시장 달라진다"

2021-10-22 10:51:14 게재

등록 회계법인만 상장사 감사 … "회계사 본업 '공공의 이익 보호'라는 강한 메시지"

인터뷰 - 전용석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계감사본부장

"해외 주요국에서는 기업들이 감사인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회계법인에서 위험이 큰 고객들을 꺼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감사 난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회계법인들이 기업 감사를 맡기 전, 수임단계부터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면 기업들도 바뀐다."

21일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용석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계감사본부장은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관리를 강조하면서 '사전 검증 시스템'을 제시했다.

△25회 공인회계사 합격,안진회계법인 입사(90년)△고려대 경영학과 졸업(91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 미국 공인회계사 합격 △ 미국 딜로이트 시카고 사무소 근무△안진회계법인 회계감사본부장(현) △한국공인회계사회 국제이사(현). 사진 이의종 리포터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이후 재무보고의 품질이 좋은 고객을 심사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감사 수임단계에서 '리스크 평가'를 진행, 길게는 2개월 동안 심층 분석을 한다.

전 본부장은 "좋은 감사인에게 감사를 받으려면 기업 역시 재무정보의 품질이 좋아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외 주요국에서는 작동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진회계법인은 수임단계를 거쳐 감사를 시작하면 감사 과정을 점검하는 품질관리를 병행하는 등 '상시 품질관리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우조선 사태 이후 품질관리 강화를 위한 안진회계법인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7년 회계업계의 인식을 깨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감사파트너 평가에 있어서 감사품질이 차지하는 비중을 70%로 늘렸다. 대다수 회계법인이 평가의 초점을 영업실적에 뒀던 시기였다. 그 전까지 안진 역시 평가에서 감사품질 비중은 30%에 그쳤다.

전 본부장은 "감사품질 비중을 50%에서 70%로 올릴 때 한 중견회계법인 대표는 '그렇게 해서 비즈니스가 되겠느냐'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며 "회계법인이 공무원 조직도 아니고, 파트너들이 영업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는 점을 알면서도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특단의 조치"라고 말했다.

이후 금융당국도 '감사인 등록제'를 도입하면서 감사인 등록심사 요건상에 감사업무를 수행하는 파트너의 성과평가에 있어 품질평가요소를 70% 이상 반영하도록 회계법인에 요구했다. 안진회계법인은 이를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효과가 있었다.

◆감사인 등록제 시행, 달라진 회계법인들 = 2017년 외부감사법 전부개정으로 상장회사 외부감사는 일정요건을 갖춰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회계법인만 할 수 있게 됐다. '감사인 등록제' 시행으로 등록심사를 통과한 회계법인은 40곳이다. 이들은 40명 이상의 등록회계사를 유지하고 품질관리업무 전담 조직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전 본부장은 "감사인 등록제 시행은 회계사의 본업이 '공공의 이익 보호'라는 것을 일깨우는 강력한 메시지"라며 "말로만 감사품질을 얘기하지 말고 시스템을 갖추고 투자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은 바뀌기 시작했다. 회계법인 내에서 품질관리실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금융당국 등록을 위해 품질관리실장 영입이 잇따랐다. 파트 타임 성격이 강했던 품질관리실장 자리가 상시 근무로 전환됐다. 전 본부장은 "실력 있는 회계사들이 각 회계법인의 품질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며 "품질관리를 위해 전담 인력을 두게 된 것은 회계법인들로서는 굉장히 큰 변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감사품질을 높이려면 우수한 인력과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시간, 품질관리시스템 등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며 "감사인 등록제는 회계법인이 품질관리시스템을 제대로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게 만든 제도적 장치"라고 말했다. 전 본부장은 "빅4를 제외한 36개 회계법인은 빅4와 출발 선상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며 "빅4 역시 법인 내부에서 감사품질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각인하는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산손상, 일부 기업 정상화 과정에서 어려워질 수도" = 코로나 사태는 기업과 회계법인의 감사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사인 등록제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지만 감사품질 관점에서 보면 포괄적으로 연결돼 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기업들의 자산손상 측정시 기업이 추정한 가정이 명백히 비합리적이지 않고, 사용한 가정을 충분히 공시한다면 향후 추정치가 변경되더라도 회계오류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 본부장은 "회계추정시 사용한 가정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실로 바뀌기 때문에 미래에 새로운 사실에 기초해 다시 추정할 경우 유예 받았던 평가액까지 미래에 한꺼번에 손익에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기업들은 정상화 과정에서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며 "기업과 회계법인의 쟁점은 자산손상 여부에 대한 것보다는 감사 범위가 늘어난 것으로, 회계법인들은 좀 더 넓고 깊게 보려하지만 기업들은 그렇게까지 안 봐도 된다는 입장이어서 긴장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 본부장은 "1~2개 정도의 자산손상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규모가 너무 커서 기업의 존속가능성까지 위협받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 질 것"이라며 "감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공시를 통해 충분히 시장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계법인, 인력 교육에 투자해야" = 기업의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는 회계법인들의 감사품질 향상이다. 금융당국은 회계법인들을 평가해 감사품질이 높으면 더 많은 상장기업들의 감사업무를 맡기는 '지정감사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 본부장은 감사인등록제 요건에 '교육 투자'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회계법인들이 품질관리시스템을 갖췄다면, 인력에 대한 보수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등록요건에 회계법인들이 품질관리를 위해 얼마나 교육에 투자하는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회계법인의 사업보고서상에 공시되는 '소속 등록 공인회계사의 최근 3년간 교육훈련 실적(1인당 평균 교육시간)'을 비교해 보더라도 빅4는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본교육 시간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을 투입해 회계사들을 교육시킨다.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글로벌 회계법인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전 본부장은 "감사업무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회계사들을 끊임없이 교육 시키고 정신무장을 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계법인들이 품질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대형화가 불가피하다"며 "품질관리에 투자하지 않는 대형화는 (이익추구라는) 다른 목적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 분식회계 사건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회계저널 등에 실린 몇몇 연구논문에서는 대우조선 사태 이후 안진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이 향상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대형 회계분식 이후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들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안진회계법인만 살아남았다.

전 본부장은 "시장에서 신뢰를 쌓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며 "회계개혁을 통해 안진회계법인뿐만 아니라 모든 외부감사인들이 품질관리 향상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도 회계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며 "개혁이 추구하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상장회사 감사인 등록제도 … 인적·물적요건 심사]
2017년 외부감사법 전부개정으로 2019년 11월 이후 시작되는 사업연도부터는 일정요건을 갖춰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회계법인에 한해서만 상장회사 외부감사를 맡을 수 있게 됐다.

상장회사 외부감사인 주요 등록요건은 △등록 공인회계사 40명 이상 유지 △품질관리업무 담당 이사 경력(7년 이상) △품질관리 상시조직 △품질관리 등을 통합관리하기 위한 조직·내규·전산 등 체계 구축 △경영진 견제 장치 마련 등이다. 또한 감사역량이 높은 인력이 대우 받을 수 있도록 감사업무 수행 이사의 성과측정 지표는 70% 이상을 감사품질 관련 항목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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