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대중국 투자에 워싱턴 정가 불만

2021-10-27 11:45:59 게재

SCMP "월가에 대한 미국 내 여론 악화 … 미중관계 중재자 역할 한계"

미국과 중국이 전면적인 경쟁을 벌이지만, 미 월가는 지속적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에 거는 판돈을 높이고 있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골드만삭스는 이달 중순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로부터 중국 합작법인 가오화증권의 소유권 100%를 확보하는 것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이에 앞서 JP모간은 지난 8월 합작법인을 인수하면서 중국에서 100% 지분을 소유한 첫번째 외국 증권사가 됐다.
미국 뉴욕 맨해튼섬 남쪽 끝에 있는 금융밀집구역 '월가'를 가리키는 표지판(사진 왼쪽)과 중국 오성홍기. 사진 연합뉴스


중국 지도부는 오래 전부터 월가 금융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2000년대 초 중국 4대 국영 상업은행들에 대한 구조조정에 월가 금융기관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일부 월가 은행가들은 미국 행정부의 중재자로 활동했다. 사모펀드기업 블랙록그룹의 공동창업자 스티븐 슈워츠먼, 골드만삭스 CEO였던 행크 폴슨이 대표적이다.

월가 베테랑 금융인인 존 손튼은 올 여름 6주간의 중국 방문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국무원 상무(수석)부총리인 한정을 접견했다. 전례없는 일이었다. 미중 양국 간 공식적인 교류가 냉각될 때 월가 금융인들은 주요 비공식 대화채널의 역할을 맡았다.

골드만삭스는 가오화증권 완전 소유에 앞서 올해 5월 중국 4대 국영은행 중 1위인 중국공상은행과 자산관리사업 협력을 시작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공상은행의 막대한 고객 저축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같은달 블랙록도 "중국건설은행과 자산관리 파트너십을 맺는 것에 대한 중국 당국의 승인을 얻었다"고 밝혔다.

중국 국가부주석이자 전직 경제참모인 왕치산, 시진핑 주석의 오른팔로 중국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인 류허는 최근 수년 동안 월가 금융인을 포함한 미국 기업 대표들을 두루 만났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시작한 무역전쟁 와중에도 지속적인 소통라인을 유지했다.

중국은 또 2017년 증시지수 제공기업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중국A주'(중국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 상장된 주식 중 내국인과 허가를 받은 해외투자자만 거래를 할 수 있는 주식)를 포함시켜 달라고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월가 은행가들은 복잡한 정치적 환경에 직면했다. 백악관이 '중국과의 관여는 끝났다'고 선언하면서다.

미중 양국의 경제적 관계는 한때 '차이메리카'(Chimerica)로 상징됐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니얼 퍼거슨과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인 모리츠 슐라리크가 2007년 12월 만들어낸 신조어로, 미중 양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는 의미였다. 이젠 미중 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리스크가 커졌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상대국에 대해 혹독하게 검증하는 일이 늘어났다.

해외시장 의존도를 줄여 자국 소비를 늘리고 기술적 자립을 달성하겠다는 중국의 '쌍순환 전략'은 금융시장의 문호를 더욱 개방하겠다는 중국의 공언과 배치되면서 투자자들의 우려를 사는 현실이다.

'외국 투자를 환영한다'는 중국의 레토릭은 수십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지만 현실은 매우 복잡해졌다. 중국 당국의 규제통제가 강화되고 그에 따라 중국경제와 금융시장 리스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런민대학 국제관계학 교수인 쉬인훙은 "미중관계 양상이 크게 변하면서 양국관계의 안전판이었던 월가의 역할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중 양국의 안정적 관계는 월가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하지만 월가는 미국 내 정치와 경제, 여론의 변화를 잘 알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월가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14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시장은 워낙 거대하기에 무시할 수 없다. 또 중국 소비자들은 은행계좌에서 거대한 저축을 넣어두고 있다. 게다가 중국 주식은 저평가돼 있다.

중국 상무부 외자국장인 종창칭은 지난 22일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올해 현재까지 기대 이상이다. 올해말까지 1조위안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는 1조위안에 조금 못 미쳤다"고 말했다.

종 국장은 "글로벌 산업체인이 재구성되고 미중 디커플링 리스크가 계속돼 외국인 투자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도 "외국인 투자에 대한 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외국 기업들은 중국시장의 장기적 전망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낙관했다.

중국은 지난해 증권사와 펀드매니지먼트 기업에 대한 외국인 주식보유 지분 49% 제한룰을 해제했다. 중국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핵심 조치였다. 이에 따라 올해 현재까지 10여개 외국인 증권사들이 중국과의 합작법인에서 지분을 늘렸다.

상하이 소재 중국유럽국제비즈니스스쿨 경제학 교수이자 '미국 따라잡기' 저자인 주톈은 "워싱턴 정가 이너서클에 대한 월가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며 "월가는 양국의 상호 오해를 줄이는 메신저의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매우 제한적인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미중 관계가 수십년래 최악 수준으로 악화되고 미국의 정치적 풍경이 변화하면서, 월가 금융인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자신의 부와 이익만 챙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대중국 매파인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월가가 미국의 글로벌 지도력을 약화시키고 대체하려는 중국에 자본을 대고 있다"며 "월가 금융인들이 미국인들을 희생시키면서 스스로의 배를 불리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경제적 자살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헤지펀드 거물인 조지 소로스는 지난달 초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블랙록과 같은 월가 금융사들이 중국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것은 비극적인 실수"라며 "미국의 국가안보 리스크를 크게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리스크컨설팅 기업인 나델로는 최근 보고서에서 "바이든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이 '대중국 극한경쟁'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월가의 대중국 투자 열풍은 워싱턴의 구상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나델로는 "중국은 미국 금융기관들이 워싱턴 정가의 매파적 외교법을 완화시켜 주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블랙록과 골드만삭스가 중국의 거대 금융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미국의 대중국 매파들도 월가를 악마화하면서 얻게 되는 정치적 이득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가의 이해관계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외국계 은행들이 중국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에 그친다. 월가 금융업계는 오래 전부터 △중국의 시장 제한조치 △국영기업의 독점 △부적절한 지적재산권 보호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검열 등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SCMP는 "한때 미중 관계의 가장 중요한 안전판이었던 '경제적 고려'는 이제 지정학적·이념적 대립요소에 자리를 내줬다"고 전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존 L. 손턴 중국센터' 센터장인 리 청은 미국 대중들의 인식 변화를 지적했다. 그는 "중국과의 사업이 미국기업들에겐 거대한 이해관계이지만, 미국 중산층과 노동자들에겐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니다"라며 "중국과 미국이 공유해야 할 중요한 지점은, 월가에만 초점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미국 실물경제가 갖고 있는 우려를 줄이는 데에도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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