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지역이 만나 꽃피운 '문화가 있는 날'

2021-11-01 11:58:29 게재

17만명이 함께하는 '지역문화콘텐츠 특성화' … 주민 주도성 질적 도약, 지속가능성 관건

#'제주 자작나무숲'. 피아노, 첼로, 플루트, 성악 등 클래식을 연주하고 즐기는 제주 예술인 모임이다. 자체 활동을 하던 이들이 2016년부터 제주의 숲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제주 클래식 예술가와 '문화가 있는 날'이 만난 '숲 콘서트'가 그것이다. 치유의 숲, 사려니 숲을 지나 도시정원으로 선율이 퍼졌다. 환경을 담은 음악이 이제는 제주 토속음식으로 치유를 노래하는 별난 음악회로 커졌다. 5년에 걸친 공공과 지역예술가의 화음으로 '자작나무숲'은 제주의 숲과 문화예술 축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자작나무숲의 제주 숲 콘서트│제주지역 예술인들이 참여한 '자작나무숲'이 10월 30일 오후 제주 사려니숲에서 숲 콘서트를 열었다. 사진은 단원들의 자녀로 구성된 합창단의 공연 모습. 사진 지역문화진흥원 제공


#'보틀팩토리'는 서울 연희동에서 쓰레기와 낭비를 줄이는 '제로웨이스트' 사업으로 유명한 단체다. 주민들이 이웃의 작은가게와 함께하던 행동이 연희동을 대표하는 지역문화운동으로 커졌다. 캠페인의 지속성에 무게를 두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축에 주안점을 둔 덕분이다. '제로웨이스트'에 참여하는 시민과 가게가 늘어나 5년차에 연희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제로웨이스트의 중심동네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민의 참신한 발상이 문화적 가치를 한층 높인 지역사회 문화운동으로 진화하는 사례다.

2014년 '우리 국민이 한 달에 단 하루만이라도 문화·예술을 즐기자'며 시작한 것이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이다. 공연·전시 입장료를 할인해주고, 창작자들에게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문화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보고 듣던 주민들이 직접 창작자가 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객석에서 무대 공연을 보던 관객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문화에 사람이 더해지는 문화민주주의다. 주민이 기획하고 공공이 지원하는 상향식 문화민주주의의 단면이다. 2014년 첫 발을 뗀 문화가 있는 날이 1.0이라면, 시민이 주체가 된 2021년은 2.0 버전인 셈이다.

◆ 문화에 지역을 담다 =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양한 형태로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자체·관련 기관과 손잡고 독자적 혹은 협업을 통해 사업을 펼친다.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 '청춘마이크' '직장 문화배달' '동동동 문화놀이터' '지역문화우리' '동네책방 문화사랑방' 등이 그것이다.

지역문화진흥원이 벌이는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 사업도 이중 하나다. 문화가 있는 날에 지역주민을 주인공으로 세우자는 취지이다.

2020년 공모에 전국에서 194개 문화예술단체가 참여해 39개 단체가 지원을 받았다. 순수 예술인단체부터 마을공동체, 문화콘텐츠 전문단체, 문화재단 같은 공공기관, 청년예술인모임 등이 참여했다.

정부로서는 문화취약지역의 예술인과 주민들을 지원할 수 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인력과 문화단체는 공공의 지원으로 문화역량을 키우고 뽐낼 수 있다.

주민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만큼 참여열기도 뜨겁다. 2019년 33개 단체에서 208회 행사가 진행됐고 모두 15만 6408명이 참여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중심이 된 2020년에도 44개 단체가 479차례 행사를 진행했고 직접 참여주민이 17만8026명에 달한다.

◆ 기반 넓히는 중장기 지원 필요 = 지역콘텐츠 특성화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5년 동안 단계별로 지원해 문화단체와 참여 주민의 역량을 키워 자생하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앞의 제주 자작나무숲이나 연희동 보틀팩토리가 그 예다. 또 하나는 다양한 유형의 사업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지역문화진흥원 관계자는 "문화를 매개로 마을만들기, 환경 캠페인, 관광 증진 등 거의 모든 지역이슈로 확대할 수 있다"면서 "지역의 특성과 주민의 처지에 맞는 상상력과 시도를 접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관건은 지속성이다. 상향식 문화축제와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업예산 축소로 지속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문화역량 증진 활동은 '콩나물 시루'에 비유되곤 한다. 하루 이틀 물붓기로 제대로 된 콩나물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벤트 중심의 사업지원이 아니라 기반을 다지는 중장기 지원이 절실함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명환 송현경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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