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지은 GE, 130년 전 몰락 씨앗
블룸버그 "대호황시대 재벌 낳은 신용조건 변화 … GE, 구시대의 유물 전락"
뉴욕타임스는 14일(현지시각) "창립한 지 129년 된 전통의 복합기업 GE의 해체는 글로벌 재벌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지멘스와 허니웰 인터내셔널 등 다른 글로벌 복합기업들 역시 지난 수년 동안 사업 규모와 범위를 줄였다. 도시바와 존슨앤드존슨도 지난주 사업을 분할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재벌들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종류의 복합기업들이 등장했다. 거대 기술기업인 아마존과 알파벳(구글 모기업)은 다양한 사업라인을 구축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책과 식음료 배달, 지도와 휴대폰 등 이질적인 사업을 같은 브랜드 아래 묶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빚으로 구축된 GE가 몰락의 씨앗을 뿌린 건 130년 전이라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14일(현지시각)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1% 영감과 99% 노력'이라고 말했다. 에디슨은 어쩌면 GE에 대해 '사업은 거의 100% 새로운 상품과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전했다.
GE는 에디슨의 멘로파크 연구소를 모델로 삼아, 언제나 스스로를 연구개발의 본거지라고 자부했다. GE는 에디슨의 공학적 위대함과 마찬가지로, 공동창업자 존 피어폰트 모건의 금융적 기교에서 많은 기회를 얻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GE의 역사는 사실 신용 혁신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 미래의 전기전송 방식으로 직류를 고집한 에디슨은 신기술의 교류를 들고나온 니콜라 테슬라를 주저앉히기 위해 돈을 쏟아부었다. 돈에 쪼들린 에디슨 기업을 구제금융한 게 모건이었다. 모건은 이후 에디슨의 기업을 합병해 GE를 만들었다.
모건은 대호황시대 악덕자본 기업가의 전형이었다. 새로운 전기시장을 지배할 도구로 GE를 바라봤다. 존 D.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이 미국 석유산업을 지배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모건은 이후 앤드류 카네기의 기업을 사들여 US스틸을 구축하기도 했다.
산업을 독점적으로 통제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당시로선 쉽지 않았다. 미국 채권시장의 주요 투자자는 상점 주인들과 농부들이었다. 이들은 개별 기업보다 지방정부와 철도, 공공 유틸리티에 돈을 빌려주는 걸 선호했다.
모건의 해법은 고객들을 지배하자는 것이었다. 전기채권&주식회사를 세워 전력기업들의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그리고 낮은 이율로 이들 기업에 돈을 빌려줬다. 전력기업들은 결국 GE의 발전장비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 가계가 극심한 현금난에 시달렸다. 냉장고 등 소비가전을 살 여력이 안됐다. GE는 'GE크레딧'을 세워 같은 목적의 같은 트릭을 반복했다. 소비자들에게 'GE 제품을 사라'며 돈을 빌려줬다.
사실 그같은 의미에서 GE 몰락의 뿌리는 잭 웰치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웰치는 1980년대와 1990년대 GE를 이끈 CEO였다. 금융자회사를 공룡기업으로 키운 인물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GE캐피털은 미국 5대 금융기업이었다. 단기 기업어음 대출에서 전체 시장의 약 4%를 차지했다.
블룸버그는 "잭 웰치의 금융 우선정책이 GE를 망친 요인으로 거론되지만, GE캐피털이 GE의 역사에서 이례적인 일탈은 아니다. 미국의 가장 성공한 금융인이 세우고 성장시킨 GE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웰치 시대는 부채주도 성장의 마지막 전성기였다"고 지적했다.
GE의 현 CEO 래리 컬프는 3개의 기업으로 분할하겠다며 마침내 재벌구조를 해체하려고 한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과거와는 달라진 신용획득 조건에 대한 고육책이다. 대출을 받기 어려운 시대라면 빌려주는 측에서는 새롭고 혁신적인 기업에 현금을 투입해 키우기보다는 기존 우량주로 평가 받는 거물기업들에 자본을 대려 한다. 과거 산업재벌들은 이 덕분에 중소기업에 비해 결정적인 이점을 가질 수 있었다.
거대한 덩치를 적극 활용한 GE는 시장에서 저렴한 이율의 자본을 얻어 더 위험한 모험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이는 연구소에서 나온 각종 발명품들을 더 빠르게 혁신하고 더 완벽히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전구와 발전소, X레이, 전기밥솥, 라디오, 텔레비전, 레이저, 제트엔진, 핵발전 등 셀 수 없는 혁신제품이 그같은 기반에서 상품화됐다.
이같은 GE의 사업모델은 위험회피 성향의 은행들이 GE를 매력적인 기업으로 바라보도록, GE에게 반세기 이상 최고의 신용등급 AAA를 제시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가장 아이러니한 건 이같은 사업모델이 잭 웰치의 주주가치 극대화 전력과는 매끄럽게 연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GE는 기업이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을 거부했다. 노동자나 협력업체 공급망을 마른수건 쥐어짜듯 착취한 것은 물론 늘 환경보다 이익을 우선시했다. 블룸버그는 "만약 GE의 역사를 관통한 한가지가 있다면, 그건 주주를 위한 가치가 아니라 채권자를 위한 가치였다. 기업경영과 관련해 주주와 채권자의 이해관계는 늘 부딪힌다"고 전했다.
GE 사업모델의 노쇠화는 GE의 야심찬 계획에 언제나 기꺼이 자금을 댔던 미국 인구의 고령화와 일치한다. 미국인 기대수명은 1900년 48세에서, 이젠 거의 80세에 육박했다. 저축으로 먹고살아야 할 은퇴자는 거대한 규모로 늘어났다.
그 결과 GE의 성장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희소한 신용은 이제 옛말이 됐다. 현재는 신용이 지나치게 흘러넘치는 시대다. 마이너스 수익률로 거래되는 채권이 13조달러를 넘어설 정도다. 해가 갈수록 고수익을 제시하는 투자부적격 등급 채권의 시장 비중이 상승한다.
오늘날의 거대 기업들은 이익률이 높아 매우 저렴한 현금의 혜택을 무시할 정도로 성공적이다. 아마존과 애플, 버크셔해서웨이 등의 거대 기업들은 과거의 재벌들처럼 사업영역을 다각화하면서도 부채를 성장동력으로 삼지 않는다. 1조달러 넘는 가치를 인정받는 우량기업이지만 과거의 GE와는 확연히 다르다.
GE와 관련한 마지막 아이러니는 에디슨의 최대 라이벌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딴 전기차 기업 테슬라다. 에디슨은 전기차를 개발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테슬라는 2020년 초 GE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계정에서 여론조사를 벌이기 직전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GE의 10배였다.
존 피어폰트 모건은 "돈이고 자산이고 다른 것을 떠나 가장 중요한 첫번째는 인물"이라며 "나는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결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블룸버그는 "그같은 측면에서 GE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