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절차 단축, 사회적 비용 절약될 것"

2021-11-17 12:02:53 게재

법조계, 영상재판 기대하면서도 우려

소송지휘권 행사로 제3자 개입 막아야

대법원은 각급 법원에 영상재판 도입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만들도록 권고했다. 이미 발 빠른 법원들은 지역변호사회 등과 함께 간담회를 하거나 각종 의견을 수렴 중이다. 법원행정처는 각급 법원과 일선 판사들이 재량껏 영상재판을 활용할 것이기에 관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제도와 시스템은 마련하되 영상재판의 장단점을 모두 고려한 판사들의 결정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종전에는 재판 일정을 협의하다가 변호사들이 영상재판을 요청하면 재판부가 검토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건 당사자나 변호인이 영상재판을 신청하면 재판부가 영상재판이 필요한지, 시설이나 인력 운영에 문제가 없는지를 판단한 뒤 이를 원·피고에 통보하도록 했다.

당분간은 원고나 피고 개인보다는 법률 대리인(변호사)을 중심으로 영상재판을 진행해 시행착오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영상재판을 선호할 것으로 보이지만 재판 절차나 법적 용어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재판장이 모든 사항을 영상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영상재판을 시작하기만 해도 충분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재판 진행속도 빨라질 듯 = 한 고등법원 재판장은 "복잡한 민사사건에서는 준비기일을 별도로 잡지 않고 변론기일을 열고 논의해 왔는데, 절차상 재판을 열지만 1시간도 안 돼 종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법정에서 공방이 필요하지 않은 절차 협의 등에 대해서는 원격재판 도입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이어 "장거리 재판이 이뤄지는 지역의 경우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변호사와 소송 당사자가 지출하는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았다"면서 "영상 재판 도입은 사회적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시군구 법원에서의 기대가 크다. 시군구법원이 있는 지역에 변호사가 많지 않아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 본원 주변에 사무실을 둔 변호사가 법정에 출석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 때문에 소송 당사자나 재판부 일정보다 변호사 일정을 이유로 재판이 연기되는 일이 적지 않다.

김지향 대전지법 공주지원장은 "재판부 외에 대리인인 변호사들이 대전에서 장시간 출장 오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법정 공방이 아닌 간단한 절차를 영상재판으로 한다면 재판 진행속도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주지원은 영상재판과 관련해 12월 초 지역 변호사들과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변호사들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연기신청이 자주 이뤄졌던 법정재판이 영상재판 도입으로 재판 소요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속성이 절실한 회생절차에서 영상재판의 확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수원지법 회생위원을 지낸 강지훈 변호사는 "회생 절차에서 중요한 관계인집회와 현장검증도 어려워져 서울회생법원에서는 대표자 심문기일과 현장검증 등 절차에서 영상재판 방식을 도입한 바 있다"며 "현재는 도입단계지만 영상재판은 점차 확산될 것이고, 가상현실(VR) 기술이 반영된다면 더욱 활발히 이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증언·변론 질 낮아질 수도 = 하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공개재판주의가 침해되고 증언이나 변론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법원은 법정에서의 공개재판을 강조해 왔는데, 영상재판으로 인해 당사자 간 공방이나 증인신문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 구두 변론을 할 경우 발음의 부정확 때문에 재판 맥락이 끊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영상재판 역시 영상과 음성의 정확성과 질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변호사도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당사자의 언어가 부정확하거나 잘 들리지 않을 경우 그대로 당사자의 이익 또는 불이익으로 재판부가 판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지방부장판사는 "법정 재판에 비해 준비할 절차가 많아 영상재판이 활성화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분 확인 절차도 간과해서는 안 되고 도서지역이나 인터넷 사용이 미숙한 원·피고를 위해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에서도 영상재판을 할 수 있도록 유관기관과의 논의도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관은 "시범운영기간이나 관련 규정상 법정이 아닌 판사실에서 영상재판을 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재판부는 영상재판을 하더라도 판사실 재판을 지양하고 법정에서 재판하는 것이 옳다"며 "판사들이 손쉽게 재판을 하기 위한 영상재판이 아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쌓기 위한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영상재판은 직접심리만을 고집할 경우 초래될 증거조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1심의 생동감 있는 영상 증인신문 등을 2심이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상급심 심리도 충실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증인을 직접 접하며 표정 태도까지 고려해 얻은 심증의 증거가치를 높게 두는 재판이념이 직접심리주의인데, 영상재판을 통한 증인신문의 경우 판사가 증인의 시선이나 태도를 바로 파악하기 어려워 심증형성에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영상재판결과를 모두 녹화할 경우 법원 서버 용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판사들은 '화면 속에 나오지 않는 제3자의 재판 개입'을 걱정하고 있다. 영상 재판의 경우 1~2인이 화면에 등장하는데 선임되지 않은 변호사나 사무장이 화면 밖에서 변론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한 영상재판 시범운용 과정에서 한 변호사가 화면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문서를 넘겨받은 일이 목격된 적도 있다.

한 고법판사는 "영상 재판 도중 미심쩍은 일이 보인다면 즉시 영상재판을 중단하고 법정에 출석하도록 기일을 다시 지정하는 등 재판장의 소송지휘가 강력하게 행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성열 · 오승완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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