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탑 '제로페이' 카카오페이로 흡수되나

2021-11-25 11:31:26 게재

서울상품권 운영사에 카카오페이 포함 40만개 가맹점 정보 통째로 넘어갈 수도

"소상공인 위한 당초 취지 무너질 것"

거대 포털이 주도하는 간편결제 시장에서 공공성을 중심으로 연계망을 확대하던 제로페이가 위기를 맞았다. 간편결제 시장이 수익성 위주의 플랫폼 대기업 손아귀로 넘어가는 것은 물론 소상공인 수수료 제로라는 제로페이 취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시가 서울사랑상품권 운영대행 사업자를 선정한 가운데 공동 사업자로 카카오 페이가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소비자가 제로페이 QR코드를 활용해 음식값을 결제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24일 서울사랑상품권 판매와 결제, 정산을 담당하는 운영사업자로 신한금융 컨소시엄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큰 관심 속에 진행된 사업자 선정에서 신한 컨소시엄이 낙찰됨에 따라 40만개 제로페이 가맹점과 183만명의 사용자를 관리할 서울사랑상품권 판매 대행사가 만들어졌다.

선정된 사업자는 내년 1월부터 2년간 사업을 수행한다. 신한은행은 상품권 자금관리 및 은행거래 연계를, 신한카드는 서울시 행정혁신 플랫폼 개발 및 운영, 상품권 판매대행·가맹점 모집을 맡는다. 티머니는 대중교통서비스를 충전·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역할을 한다. 기존에는 은행계좌로만 상품권 구매가 가능했는데 이를 신용·체크·선불카드까지 확대한다. 결제방법도 QR촬영·바코드 제시 방식에서 양방향 QR결제, NFC결제, 터치결제 등으로 선택 폭이 넓어진다. 상품권 구매와 사용 환경이 확대·개선되고 간편결제 시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숨은 문제가 있다. 신한 컨소시엄엔 그간 제로페이와 간편결제시장을 놓고 경쟁했던 카카오페이가 들어가 있다. 카카오페이는 그간 오프라인 가맹점 확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10만개 선에서 확장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제로페이는 서울시와 자치구의 행정력 동원과 코로나19 국면에서 재난지원금을 제로페이 기반 서울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면서 급성장했다. 초기 부진을 딛고 서울 내 가맹점만 40만개, 이용자는 180만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신용카드 위주 결제 시장에 새 강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서울사랑상품권 판매사업자에 카카오페이가 들어오면 상황이 뒤바뀐다. 서울사랑상품권 소유자는 서울시다. 서울시가 가맹점 모집, 결제 환경 개선, 소비자 편의 등을 위해 자료를 요구하면 제로페이의 고객 및 가맹점 데이터는 고스란히 카카오페이로 흘러 넘어간다.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라는 제로페이 당초 취지도 무너질 수 있다. 당장은 상품권 구매에 따른 수수료나 가맹점 수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거대 플랫폼 기업이 흔히 하듯 데이터를 확보하고 독점적 시장 지배자로 올라서면 당연한 수순으로 수수료를 매길 수 있다.

서울시는 "서울사랑상품권 망과 제로페이 망은 일부 중복되지만 별도로 운영된다"며 "수수료 부분도 협약에 따라 일괄 서울시가 선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맹점에 부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상품권 판매대행 계약도 2년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제로페이망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 설명했다.

소상공인들은 카카오페이의 진입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카카오가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상품권 판매대행이라는 우회적 방식으로 발을 들여 놓은 뒤 점차 장악력을 확대, 결국 대리운전, 택시, 꽃배달 등과 같이 폭리를 취하는 과정을 밟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재광 전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대표는 "카카오는 제로페이를 자신들의 플랫폼에 포함된 결제 방식 중 하나로 두고 싶어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로페이가 카카오페이에 종속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수료가 빠져 나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들이 거대 기업 횡포에 또 내몰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소상공인 협회 관계자는 "상품권 활성화를 명분으로 사업자를 선정했지만 자칫하면 소상공인 전체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는 결정"이라며 "서울시와 카카오페이의 이후 행보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수수료 부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카카오 측은 정확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수수료 관련해서는 아직 정책을 정하지 않았다"며 "추후 논의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고성수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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