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농토 곳곳에 한국 농업기술 뿌리 내린다
중남미·아시아에서 토양정보 시스템 구축, 농업기술 지원 성과
해외 유전자정보 등은 국내에서 활용, 해외협력 네트워크 강화
24일 농촌진흥청(농진청)에 따르면 한국의 디지털 토양환경정보시스템 '흙토람'이 콜롬비아에 전수되면서 중남미 지역 토양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콜롬비아는 농진청 시스템을 이용해 쿤디야보센세 고원지대 토양 1432점의 12가지 특성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콜롬비아는 지리정보 편람, 농장 토질 평가, 토양 이·화학성 등에 대해 농업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이런 성과는 국제학술지(CATENA)에 게재되면서 과학적 성과가 입증됐다.
해외 농업기술 지원은 콜롬비아 토질이나 농작물 환경 등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기후변화에 따라 농작물의 환경이 바뀌면서 우리가 중남미 농작물을 도입할 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의 경우 강낭콩을 많이 재배하며 유전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토양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자료가 없어 흉작이 들 경우에 대비하지 못했다. 특히 소농들은 토양정보도 없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토양분석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토양분석 데이터를 통해 농업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한국은 중남미 품종과 유전자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한국은 중남미 강낭콩 품종 30종을 들여왔다.
중남미 토양자원 중 커피 재배는 국내에서도 유의미한 데이터다. 한국인들의 커피 소비량이 세계 6위까지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내 커피 재배기술이 속도를 내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기술과 커피 종자, 토양에 대한 자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최근들어 공급망 문제가 세계적 화두가 되면서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커피의 품종과 재배기술 도입도 시급하다. 한국이 농업기술을 전수해주고 커피에 대한 유전자 정보를 얻어오는 선순환 체계를 농진청이 만들어 냈다.
최선태 농진청 국제기술협력과장은 "농진청 해외농업 기술사업은 양자와 다자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중남미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기술지원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유전자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농업기술 지원 대표작 아프리카 벼 개발 = 농진청은 국제농업기술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현재 52개국과 협력하고 있다. 대표적 사업인 통일벼 계통을 활용해 수량성 높은 벼 품종 개발을 지원한 '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이다. 이 사업은 농진청 '한-아프리카 농식품 기술협력 협의체'(KAFACI)와 3개 국제기구가 2016∼2025년까지 10년간 협력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19개 참여국에 나라별로 2품종 이상 모두 55품종 이상의 밥맛 좋고 수량성 높은 벼 품종 개발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벼 생산성을 25%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2017년 12월 세네갈에서 등록된 '이스리(ISRIZ)-6'과 '이스리(ISRIZ)-7' 품종은 수량성이 우수하고 밥맛이 좋아 현재 빠른 속도로 농업인들에게 보급되고 있다. 이 두 품종은 우리나라 통일벼 계통인 '밀양23호'와 '태백'을 세네갈로 가져가 현지 적응시험을 거쳐 등록된 것이다. 수량성이 ㏊당 7.2∼7.5톤으로, 세네갈 대표 품종인 사헬보다 2배 정도 많다.
한-아프리카 협의체는 2010년 출범해 20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7가지 사업을 추진하며 아프리카 농업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시아에서는 토양에서 탄소지도 = 국제농업기술협력 사업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아시아다. 아시아 지역은 K-농업이 실정에 맞게 가장 잘 정착된 곳으로 꼽힌다. 특히 국제농업기구(FAO)와 공동으로 아시아 토양유기탄소지도를 구축한 것은 대표적 성과로 지목된다.
농진청과 FAO는 아시아 토양유기탄소지도를 공동으로 제작·지원하고 있다. 토양유기탄소지도는 지역별 토양의 탄소 보유량을 표시한 지도다.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시점에서 아시아 국가의 고민 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토양전문 과학자 이이 슐레만 박사가 탄소중립 선언과 관련 인도네시아 토양유기탄소지도 제작에 나섰다. 지도를 통해 인도네시아는 어떤 작물을 심고 어떻게 재배하면 탄소를 덜 배출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토양유기탄소지도는 토양의 탄소저장능력을 알기 위한 선결 과제다. 토양형에 따라 탄소흡수와 배출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유기탄소량을 나타내는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지도에 따라 지속가능한 토양관리방법으로 탄소저장능력을 높일 수 있다. 농진청은 토양유기탄소지도의 중요성에 대해 "토양유기탄소지도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증거기반 의사결정에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토양의 유기탄소보유량을 늘리면 기후변화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 옥수수 종자 자립화 = 농진청의 K-농업 해외 전수는 캄보디아 옥수수 종자 자립화에도 기여했다. 캄보디아는 비싼 외국 옥수수 종자를 구입하기 어려워 값싼 재래종 종자를 재배하는 농업인이 많아 생산량이 매우 낮은 상태였다. 농진청은 코피아(KOPIA) 협력사업을 통해 한국 품종 선발과 육종 기술을 캄보디아에 전수했다. 지난해 생산성 높고 질병에 강한 신품종을 개발해 캄보디아 현장 실증을 통해 우수성을 입증했다. 캄보디아 옥수수 생산 농부 리 렌은 이 품종을 재배해 주변 농가 옥수수 생산량보다 2배 이상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고 전했다. 옥수수를 판매한 금액 3230달러에서 농약과 비료, 농기계 임차비 등을 제외하고 순소득 1702달러를 벌었다. 리 렌은 "옥수수 농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의 소득"이라며 신품종을 홍보하고 있다.
농진청은 코피아 시범사업을 통해 신품종 재배면적을 2023년까지 60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