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에 위장수사 도입 그 이후

온라인으로 성착취물 판매하다 신분 속인 경찰에 덜미

2021-11-29 12:11:30 게재

아동·청소년에 영상 제작 지시, 첫 구속 … 대상·기법 확대 목소리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위장수사가 잇달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대를 비롯해 다른 연령대에서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어 위장수사 대상과 기법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계는 최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성 착취물 제작·배포 혐의로 20대 남성 A씨를 위장수사를 통해 검거, 구속했다. 또 성 착취물 배포 혐의로 B군 등 10대 남녀 5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온라인 성착취 "반드시 처벌된다"│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제작해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대화방인 박사방을 통해 유포한 조주빈 등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열린 10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가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범죄단체조직, 살인예비, 유사강간, 강제추행, 사기,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42년을 선고받은 조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또 이와 함께 박사방 핵심 연루자 4명의 처벌도 확정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A씨는 올해 1∼11월 이른바 'n번방'과 '박사방' 등을 통해 유포됐던 7만5000여건의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등을 텔레그램을 통해 판매하고, 아동·청소년 5∼6명에게 새로운 성 착취물 제작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B군 등은 올해 7∼9월 SNS 등을 통해 각각 3∼15명에게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9월 24일부터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본격화된 위장수사는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로 나눠진다. 신분비공개수사란 아동·청소년 대상 불법촬영물 등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신분을 비공개하고 범죄현장 또는 범인에게 접근해 범죄 관련 증거와 자료 등을 수집하는 방법이다. 신분비공개수사는 상급 관서의 수사 부서장으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아 진행한다.

반면 신분위장수사란 디지털 성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신분을 위장한 수사를 말한다. 특히 법원 허가를 받아 신분위장을 위한 문서와 도화, 전자기록 등을 작성, 변경 또는 행사할 수 있다. 위장신분을 이용한 계약이나 거래와 함께 성착취물의 소지, 판매, 광고까지 할 수 있다.

위장수사 시 경찰관은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않은 자에게 범의를 유발하지 않아야 하고 피해 아동이나 청소년에 대한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천경찰청이 신분비공개수사로 붙잡은 A씨는 신분비공개수사로 피의자를 구속한 첫 사례다.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신분 위장 수사와는 차이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분 비공개 수사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종료 즉시 경찰위원회에 보고하게 돼 있다"며 "종료된 수사 관련 사항이 경찰위원회에 즉시 보고될 수 있도록 국가수사본부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위장수사를 통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적발 실적은 상당하다. 시행 후 1개월간 신분비공개수사는 32건, 신분위장수사는 3건으로 총 35건이 승인되어 58명의 피의자를 검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경찰이 위장 수사를 진행한 사건은 성 착취물 판매·배포 26건, 성 착취물 제작 6건, 성 착취 목적 대화 2건, 성 착취물 소지·시청 1건 등이다.

◆경찰, 전문수사관 양성 공들여 = 위장수사는 박사방·n번방 등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지난해부터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시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하려던 수사관이 운영자들로부터 경찰이나 기자가 있을 수 있다며 불법 촬영물을 다른 대화방에 공유한 뒤 이를 인증해야 입장할 수 있다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범행 입증을 위해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상황이라 자칫 수사관 자신이 처벌을 받을 수 있어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피해자는 급속도로 늘었다. 결국 수사관들이 지인의 신분증과 사진을 빌려 인증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한 뒤에야 수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사회단체와 국회를 중심으로 위장수사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입법이 가능했다.

경찰청은 40명의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수사관을 9월 24일부터 위장수사에 투입했다. 경찰청은 전국 시도 경찰청에서 추천받은 수사관 40명을 대상으로 위장수사 개념·절차, 온라인 그루밍 등에 관한 교육을 진행했다. 위장수사가 활성화된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의 수사담당관이 화상으로 교육에 참여해 수사관들에게 미국 사례와 절차상 유의사항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들은 전국 사이버·여청수사관과 함께 본격적으로 위장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외에도 소속 부서장의 요청에 따라 추가로 수사관을 지정해 위장수사에 투입하는 등 급증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할 예정이다.

◆20대 피해자가 더 많아 = 하지만 위장수사가 청소년성보호법에 규정된 것이라 성인 대상 디지털성범죄의 경우 위장수사가 불가능하다는 한계도 있다. 또 현행 주민등록법상 제약 때문에 가상 인물의 주민등록증은 발급받을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향후 수사 범위와 기법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재 국회에는 홍정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고양시 병)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개정안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 도입한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를 디지털 성범죄 전체에 확대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홍 의원은 "디지털상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익명성에 기반한 특성상 수사가 쉽지 않아 위장수사 적용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개정안 통과로 아동·청소년 뿐만 아니라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포착과 증거 확보가 가능해져 피의자 검거가 더욱 신속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구독형 범죄까지 등장 = 피해자가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도 위장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문을 연 2018년 4월 30일부터 올 9월까지 접수된 피해자는 1만4070명으로 집계됐다. 지원센터 첫해인 2018년에는 피해자 수가 1315명에 불과했지만, 2019년 2087명, 2020년 4973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는 9월까지 5695명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피해자 수를 넘어섰다.

피해자 연령별로는 연령 미상이 46.7%를 차지했으며, 20대(21.3%), 10대(20.6%), 30대(7.0%) 순이었다. 20대 피해자가 10대보다도 많았다. 이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구출하고 보호하려면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도 위장수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분석해보면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20대 여성들의 피해가 상당히 많다"면서 "일단 아동청소년 대상 위장수사의 성과를 지켜본 후 성인 대상 위장수사 확대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익명성 등으로 단속이 어렵고. 범죄 수법도 빠르게 진화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수사국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간 '사이버성폭력 불법유통망·유통사범 집중단속'을 벌인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경찰은 이번 단속에서 성착취물 제작·유포·구매·시청 등 혐의를 받는 사이버성폭력 피의자 1600여명을 붙잡았다. 성착취물 공급 혐의로 검거된 인원 4명 중 1명 이상은 온라인 공간에 익숙한 10대로 나타나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구독형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불법 영상 판매 통로로 활용하는 등 수법이 다양화되고 은밀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집중단속에서는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공급자 919명뿐만 아니라 구매하고 시청한 수요자 706명도 적발됐다. 수요자가 절반 가까이(43.4%) 차지한 셈이다.

연령대로 분류하면 20대가 33.3%(541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10대(474명·29.2%) 30대(395명·24.3%) 40대(160명·9.8%) 50대 이상(55명·3.4%) 순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디지털 매체 사용에 익숙한 10~30대가 전체의 86.8%를 차지했다. 10~30대는 성착취물 공급자 중에서 81.9%(919명 중 753명)를 차지했다. 20대가 29%(267명)로 최다였고 30대(246명·26.8%)가 뒤를 이었다. 특히 10대도 240명으로 26.1%나 됐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증거재판주의라 증거가 명백하게 나와야 하는데 경찰 수사는 대개 첩보를 가지고 시작한다"며 "사이버 범죄도 실질적인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직접 확인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위장수사가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단속에서는 9월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으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그루밍'(성착취를 목적으로 한 대화)도 적발됐다.

경찰은 또 최근 해외 구독형 SNS 등을 악용해 불법 영상을 판매하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를 확인했다.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해외 구독형 SNS에 자신들이 직접 출연·제작한 불법성영상물을 게시하고 구독료 수입 등 부당이득을 취한 운영자 등 3명을 검거(1명 구속)했다. 또 경기남부경찰청도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해외 구독형 SNS에 자체 제작한 성착취물·불법성영상물을 게시하고 구독료 수입 등 부당이득을 취한 운영자 등 11명(1명 구속)을 적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아동성착취물·불법촬영물 등에 대한 수요·공급요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상시단속 체계를 유지하고, 기관 간 협업을 더욱 강화해 피해확산 방지에도 주력하겠다"면서 "새롭게 도입된 위장수사 제도의 적극적인 활용과 지속적인 수사기법 개발 및 국제공조 강화 등을 통해 범죄자는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급증하는 사이버 범죄 대책 필요 = 한편 경찰 안팎에서는 성범죄 외에도 급증하는 사이버 범죄 수사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이버 범죄 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면서 검거율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완주 의원(더불어민주당, 천안을)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시도청별 사이버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3만676건에 달하던 사이버범죄가 2020년에는 23만4042건으로 약 78% 증가했다. 하지만 검거율은 평균 14%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이버범죄를 유형별로 구분하면 사이버금융 관련 범죄는 2017년 3212건에서 지난해 6011건으로 87% 급증했다.

사이버성폭력 관련 범죄는 2349건에서 4328건으로 84%, 사이버사기는 2만7818건에서 4만1436건으로 49% 증가했다.

특히 최근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이용한 범죄사례가 늘었으며, SNS 발달로 보이스피싱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생겼다. 진화하는 범죄 수법으로 인해 검거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형선 · 박광철 ·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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