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원 노동환경

어선원 매년 산재로 200여명 사망 추정

2021-12-08 11:30:26 게재

제대로 된 통계도 없고 기관마다 제각각 … 어업종사자 고령화↑, 어가인구↓, 외국인↑

우리가 수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은 3면이 바다라는 지형적 특징도 있지만 어선원(어부)들의 고마운 노동에 따른 대가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에서 없어졌던 해양수산부가 2013년 박근혜정부에서 부활한 지 9년이 지났음에도 어선사고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도 마찬가지다. 문 정부는 2018년 산업안전을 교통사고·극단적 선택과 함께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 포함시켰다. 산재사고사망자(2016년 969명) 2022년까지 절반(500명)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매년 140여명의 어선원 노동자가 조업 중 산재로 사망·실종되는 데도 정부정책에 포함되지 않고 방치됐다. 이 수치도 정확하지 않다.

늦었지만 노·사·정이 어선원 산재감소와 근로조건 개선에 대해 합의했다. 합의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이행이 중요하다.


#. 홍게잡이 통발어선 '일진호'(경북 울진 후포선적, 73톤급)가 10월 19일 오후 11시쯤 독도 북동쪽 약 168㎞ 한일 공동수역에서 전복됐다. 일진호에는 선장 박 모(63·포항)씨와 한국인 선원 김 모(55)씨, 안 모(66)씨 등 2명, 외국인 선원 등 9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발생 32시간 21분만인 21일 중국인 선원 2명은 민간어선에 의해 구조됐다. 선장 박씨는 뒤집힌 배 조타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12일 만인 11월 1일 사고가 난 곳 인근 해상에서 숨진 김씨의 시신이 수습됐다. 해경은 다음날인 2일을 집중수색을 중단했다. 나머지 5명은 실종상태이다.

#. 지난해 9월 20일 오전 10시 39분쯤 전남 신안 만재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연안자망 어선A호(9.77톤, 목포선적, 승선원 5명)의 인도네시아 선원 B씨(32)가 양망기(그물을 걷어 올리는 기계) 작업 중 양망기에 팔이 말려들어갔다가 다행히 빠져나와 다치기만 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거친 바다에서 국민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어선원의 안전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오랫동안 소외돼 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어선원의 사고사망만인율(1만명 당 산재로 인한 사고사망자)는 평균은 19.74로 육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고사망만인율(1.09)과 비교해 18배가 넘는다.

지난해 4월 수협이 국회에 제출한 어선원보험 현황을 봐도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392명의 어선원이 재해로 사망했다. 매년 140여명의 어선원이 사고 등으로 죽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 연간 사망자 200~300명 추산 = 문제는 이 수치들도 최소치라는 점이다. 현재 어선원보험은 3톤 이상 어선은 당연가입 대상이고 3톤 미만 어선은 임의가입이다. 국내 등록어선 6만5835척(2019년 기준) 중 가입의무가 없는 3톤 미만은 4만2397척으로 64.4%에 이른다. 3톤 미만 어선 중 어선원보험 가입률(2020년 기준)은 8%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어선원들까지 합치면 전문가들은 연간 사망자수가 200~3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양식·맨손어업 등 다른 분야까지 범위를 넓히면 이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박상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촌어항연구실장은 "현재 어업재해 통계는 수협 어선원보험, 해양경찰청, 해수부 등으로 나눠져 있고 서로 맞지도 않아 신뢰성이 떨어진다"면서 "어업재해 통계 자료를 통합하고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며 어업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정확한 어선원 산업재해 통계 조사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60세 이상 어가인구 68.4% = 어선원 산재 발생 요인으로 먼저 어촌 고령화를 꼽는다. 2019년 농림어림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어가인구 비율이 68.4%에 달한다. 고령 어선원은 젊은 사람에 비해 신체적 능력이 떨어져 고된 어업 현장에서 산재의 원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청년들과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고 있는 외국인 어선원들의 저숙련도 원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2019년 발간한 동향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어선원의 재해율은 5.56%였으나 청년어선원의 재해율은 16.0%로 2.9배 수준이고 외국인 어선원은 7.54%였다. 청년들은 훈련 없이 배를 타고, 다치니 어선원이 되기를 기피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외국인 고용허가제(E-9 비자)로 배를 타는 선원들도 어선원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무리한 조업, 장시간 노동에 노출 = 어선원들의 높은 노동강도도 문제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어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평균 조업일수는 212일로 높지 않았다.(2015년 통계청 사업체 노동력조사) 하지만 어선별 편차가 커서 노동일수가 많은 어선은 274일로 무리한 조업을 했다. 근해어업의 경우에는 평균 연속노동시간이 10시간이 넘게 나타나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다.

흔들리고 미끄러운 배 위에서 반복작업, 비좁은 휴식 공간, 복잡한 설비 등 열악한 작업환경은 산재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적절한 예방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규범은 없거나 실제 규제가 어려운 현실이다.

재해 대응에 대한 어업인의 인식수준도 매우 낮다. 어업작업 안전재해 인식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78,4% 어업인은 산업재해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 또는 '불가피한 사고'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 어선원법 안전조업 교육은 선주 선장 기관장 통신장 등 간부선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 및 안전보건 법 제도 미비와 이원화 체제 = 현재 20톤 이상 어선의 노동자는 '선원법'을 적용해 해양수산부가 관할하고 20톤 미만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 고용노동부가 관리·감독하는 이원화된 산업안전보건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어선원의 근로기준 관련해서는 선원법과 근로기준법 모두 어업에 대해서는 근로시간·휴게·휴일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어 무제한 근로가 가능한 상태다.

이 같은 행정체계 및 법규정의 이원화 속에서 특히 20톤 미만 어선원의 산업안전보건은 사회적 사각지대에 있어왔다.

◆뒤늦게 노사정, 어선원 노동환경 개선 나서 =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이 어선원 노동환경 개선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경사노위 산하 어선원고용노동환경개선위원회(어선원위)를 발족하고 1년간의 논의 끝에 지난달 24일 '어선원 안전·보건 보장 및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합의문'을 선언했다. '20톤 미만 어선원의 근로기준에 대한 선원법 적용' '어선원 안전보건 및 복지 개선' 등은 향후 노사정협의체에서 정하기로 했다.

합의는 했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한 어선원 안전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박희성 전국해상산업노련 위원장은 "어선원의 열악한 산업안전 및 노동환경의 개선을 위해 상선원과 차별 없이 보호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경 인천자망협의회 회장은 "경영환경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산업안전 규제 도입에 대한 비용부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2014년부터 '안전복지형 연근해어선 기반구축' 사업을 하고 있다. 선박 총톤수에서 선원들이 사용하는 선실이나 화장실 식당 등은 제외해 주는 '안전복지형 어선'을 건조하면 정부가 선가의 90%를 선주에게 대출해 준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이용해 안전복지형 어선으로 바꾼 선박은 올해까지 24척에 불과하다. 전체 어선의 0.00036%에 수준이다.

◆노사 정부 재정지원 촉구 = 경기도 작은 포구에서 25년 어업을 한 선주는 "기존 대부분의 배들은 20년이 넘었고 작아서 복지공간 등을 설치할 공간도 없지만 대출은 빚이 아니냐"면서 "선주 자식들이 어업을 물려받겠다면 투자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선주들은 기존 배로 어업을 마무리 하려고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노사는 일관성 있고 제대로 된 정부의 재정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안전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선 법·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노사정의 참여와 의지가 중요하다"며 "합의를 통해 노사정이 뜻을 모은 만큼 노사의 적극적인 역할과 정부의 지속적인 이행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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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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