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 본딴 '생태모방기술'이 뜬다

2021-12-08 11:58:32 게재

식물 광합성 원리 이용 공기질 개선 … 혈액 속 산소전달체서 영감, 유해물질 제거도

필(必)환경 시대를 맞이해 생태모방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생태모방이란 진화를 통해 환경에 적응한 생물체의 구조와 기능뿐만 아니라 시스템, 메커니즘까지 모방·응용하는 것을 말한다.

생태모방기술의 대표적인 예로는 이른바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를 들 수 있다. 열매에 갈고리 모양의 가시와 짧은 털이 있어 다른 곳에 잘 붙는 도꼬마리를 모방해 만들었다. 태양열 전지판은 식물의 광합성 기능을 모방했다.
최근 생태모방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식물의 광합성 기작을 모방해 새로운 공기정화기술을 개발한 김우열 숙명여대 화공생명공학부 조교수(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학생들과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 사진 이의종


국회입법조사처의 '생태모방기술의 동향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생태모방기술은 미래 산업 기술로 각광받고 있으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관-학-연이 협력한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FBEI(Fermanian Business & Economic Institute)는 2030년까지 생태모방 관련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가 약 1조6000억달러에 달한다고 전망한바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양한 생태모방기술 개발에 매진 중이다.

◆광촉매로 가스상오염물질까지 제거, 비용저감도 = "헤파필터(미세한 입자를 걸러내는 고성능 필터) 사용 공기청정기들은 입자상 오염물질(에어로솔 먼지 등 고체 혹은 액체 상태의 미세한 오염물질) 처리에 특화되어 있어요. 그런데 대기 중에는 가스상 오염물질(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등 기체 상태의 오염물질)도 있죠. 가스상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 광촉매 사용 공기청정기가 역할을 해요. 문제는 반도체 기반의 광촉매를 사용하면 비싸다는 점이죠.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식물의 광합성 기작을 모방해서 전이금속 등을 적용한 광촉매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11월 19일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우열 숙대 화공생명공학부 조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과 '공기정화 식물의 구조 및 광합성 대사 시스템을 모방한 실내공기오염 저감 장치 기술 개발' 작업 중이다. 2019년 4월부터 개발을 시작해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상용 가능한 기술 실증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연구 완료 목표는 2023년 12월 31일까지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김 조교수 연구팀 등이 개발한 기술은 공기청정기의 해파필터 자리에 광촉매가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광촉매에 빛을 비출 수 있는 램프가 함께 탑재해야 하는 데 유기발광다이오드(LED) 광원을 적용해 가격 부담을 줄인 게 특징이다. 광촉매란 자외선 등 빛을 받으면 화학반응을 통해 유해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산화력이 강한 화학물질을 생성하는 촉매를 말한다.

김 조교수는 "기존 광촉매는 자외선 대역의 빛에서만 반응한다"며 "하지만 '공기정화 식물의 구조 및 광합성 대사 시스템을 모방한 실내공기오염 저감 장치 기술'의 경우 가시광선 영역의 빛에서도 반응할 수 있어 효율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식물은 말 그대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빛을 이용한 합성)을 하면서 물을 산화시켜 산소를 방출하고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 커다란 탄소화합물(주로 설탕)을 만든다. 여러 태양광 부위 중에서도 식물의 엽록소는 가시광선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파장(400~700nm)을 대부분 흡수한다.

◆스마트물질 개발로 고부가 환경소재 신시장 개척 = 항생제 성분 등 의약물질이나 유기인산화합물 계열의 농약, 산업염료 등 현 수처리 기술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유해물질들을 없애는 생태모방 기술도 개발됐다. 혈액 속 산소전달체의 특성에서 영감을 얻은, 수중 환경오염물질들을 흡착해 없애는 기술이다.

최근 울산과학기술원은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함께 '환경오염 처리를 위한 자연생태 모방 혁신형 다공성 물질'을 개발했다. 우리 신체에는 혈액 속 산소 전달체 등의 역할을 하는 포피린이 있다. 포피린이란 아주 간단히 얘기하면 탄소 원자 4개와 질소 원자 1개가 오각형을 이루는 화합물인 피롤 4개가 사각형 모습을 띈 구조를 말한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과 헴(heme) 금속효소 등에서 발견된다.

울산과학기술원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이 포피린을 모방해 만든 '금속-유기 골격체(PCN-224, 특허 출원)'를 이용해 수중에 있는 의약품 성분, 농약 등을 흡착해 제거·분해할 수 있는 신기술을 4년 만에 개발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포피린을 모방해 만든 금속-유기 골격체의 흡착률은 70% 이상(30분, 실험실 조건)으로 성능이 뛰어나다.

최원영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금속-유기 골격체는 스마트 물질로 생각해도 무방하다"며 "유해물질들을 가둬 악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잘라 없애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기술 개발이 됐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상용화를 위해 여러 과제들이 남아있다. 최 교수가 지난해 스타트업인 '엑스모프'를 설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속-유기 골격체 대량 생산 등 고부가 환경소재 분야의 신시장 개척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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