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눕기에 퇴사행렬 … 글로벌 번아웃
BBW "중국 미국 일본 독일 등 젊은 노동자세대, 기존 부의 추구 방식에 회의감"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미국 노동자 2400만명 이상이 일을 그만뒀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실직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 등 부유한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촌에 큰 타격을 줬다. 많은 나라의 조사에 따르면 번아웃(탈진증후군)과 정신건강 악화를 느끼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이런 문제는 수십년 동안 쌓인 요인 때문이다. 임금상승은 정체됐고 고용보장은 위태로워졌으며 주거·교육 비용은 치솟았다. 젊은 세대가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꾸릴 가능성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대규모 퇴사 현상은 40세 이하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그 파문 효과는 경제 전반에서 일어나는 중이며 일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을 촉발시킨다. 1980~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 그 뒤를 이은 Z세대는 결혼과 주택구입, 자녀갖기 시기 등에서 앞선 세대보다 훨씬 늦어졌다.
중국에서는 '탕핑'(Lying flat)이 유행하고 있다. '평평하게 눕는다'는 말로,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탕핑은 소셜미디어에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매우 혹독한 '996 근무시스템'에 저항하는 차원이다. 996은 아침 9시 출근 저녁 9시 퇴근 주 6일 근무제로, 중국 기술업계에선 일반적인 근무형태다. 부의 사다리를 올라가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가족과 사회, 정부의 암묵적인 압박감도 이유 중 하나다. 중국경제 규모는 지난 10년 간 2배 커졌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 과실을 따먹은 건 아니었다. 대도시 생계비 상승 폭은 임금상승폭을 훨씬 초과한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탕핑 현상을 일본식 스태그네이션의 전조라고 보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1960년대 미국과 서유럽 일부 국가에서 발생한 반체제 운동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 연구소 샹 뱌오 소장은 "두가지 분석이 동시에 나오게 된 건 우연의 일치다. 하지만 중국경제가 과열됐고, 환경적 측면에서나 정신적 측면에서 현재의 상황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과 연계돼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한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약 절반의 노동자들이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또 소프트웨어 기업 '퀄트릭스 인터내셔널'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 10명 중 4명은 재택근무 중 직장에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는다면 퇴사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는 다른 세대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었다.
나이든 세대 일부는 이런 태도를 두고 '등 따시고 배부르니 게을러졌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부유한 서구 국가들의 경우 세대와 무관하게 지난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 등 존재론적 위협이 닥친 상황에서, 대규모 퇴사 현상과 탕핑 현상은 개인이나 국가 가릴 것 없이 부의 축적을 선으로 강제하는 현실에 대한 반발일 수 있다. 퀄트릭스 노동경험 자문서비스 대표인 벤자민 그레인저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직시하면, 사람들은 단호하게 다른 행동을 보인다"며 "사람들은 매우 다른 렌즈를 통해 노동을 직시하고 있다. 그 렌즈는 바로 '월급봉투를 받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을 원한 게 아니다' '나는 충족감이 필요하다' 등"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탕핑
탕핑 현상의 근원지는 선전시일 가능성이 높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중국 동남부 기술허브 도시는 화웨이 테크놀로지와 텐센트 홀딩스 등 주요 기업을 품고 있다. 인구는 1800만명으로, 상당수가 부자가 되려는 꿈을 안고 이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현재 중국 경제가 둔화되면서, 일부 시민들은 그같은 꿈에 인생을 걸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감을 갖고 있다.
선전시 한 이동통신기업에서 일하는 32살 잭은 5년 전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이곳으로 이주했다. 가혹할 정도로 많은 시간 노동을 해도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잭은 현재도 일을 하고 있지만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그는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더 이상 폭발적 성장을 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하지만 작업량은 그대로이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희망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선전시는 전세계 가장 살기 힘든 도시 중 하나다. 잭은 "나와 여자친구처럼 고소득 전문직들도 선전시는 살기 힘든 도시"라며 "아파트 매입 계약금만 200만~300만위안(3억7000만~5억6000만원)이다. 나와 여친의 저축을 모두 쏟아부은 것으로도 모자라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알리바바그룹과 틱톡 모기업 바이트댄스에서 일하는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삶은 중요하다'는 문패를 내건 온라인 시위에 참여했다. 이 사건 직후 바이트댄스는 노동시간 감축을 지시했다.
중국의 젊은 노동자들은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스스로를 '소금에 절인 생선'으로 칭한다. 광둥어로 '시체' 또는 '야심이 부족한 사람'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2020년 중국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로 낮아졌다. 중국 노동력 규모가 이미 줄어드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전시 북쪽 싼허직업소개소엔 중국 각지에서 모인 수십명의 구직자가 있다. 중국 노동자들은 한때 근면함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온라인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며 느긋하게 지내다가 돈이 필요할 때만 일자리를 찾으러 나온다. 장기간 일하는 공장 일자리보다는 작업강도가 약한 서비스직을 선호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하루 일하고 사흘 즐긴다'고 표현한다.
나라가 부유해지면 노동자들은 보다 까다롭게 직업을 선택할 여유를 갖는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 대규모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반체제 운동이 등장했고, 이후 90년대엔 '농땡이세대'(slacker generation)로 불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서구 흐름을 따르듯, 중산층가정 출신의 젊은 중국인들은 중국사회가 너무 물질주의적이라고 말한다. 선전시에 살면서 시카고대 온라인 석사과정을 이수중인 25세 첸지양씨는 "요즘 들어 성공의 정의가 너무 협소해졌다"며 "우리 모두 마윈을 비롯한 성공한 CEO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추구한다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그에 따라 절망감도 커진다. 때문에 사람들은 중도 포기하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린다"고 말했다.
미국의 퇴사 현상
미국 밀레니얼세대의 재정적 곤궁은 코로나19가 닥치기 훨씬 전부터 문제였다. 학자금 대출 규모가 치솟은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회복이 더뎌지면서 조기상환 또는 적시상환이 어려워진 탓이었다. 밀레니얼세대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런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마인스셰어파트너스' 조사에 따르면 올해 퇴사를 선택한 밀레니얼세대의 2/3는 정신건강 악화를 그 이유로 꼽았다. Z세대 퇴사자들의 동일 문항 응답은 81%로 더 높았다. BBW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적, 경제적 참상을 목도한 많은 젊은이들이 기존에 설정한 우선순위를 회의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워싱턴D.C.의 한 연방정부 산하기관에서 일하던 29세 벤 앤더슨은 2020년 7월 재택근무 중 갑자기 회사복귀를 지시받았다. 하지만 안전장구 지급이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시설 배치는 없었다. 결국 동료 한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장기간 후유증을 앓게 됐다. 앤더슨은 안정적인 직장이 좋은 삶의 핵심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는 "세상이 무너지고 있을 때, 직장은 직원의 안위에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퇴사 고민은 수년 전부터 했다. 그는 대학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고, 덕분에 대도시 근무를 발령 받았다. 7년 동안 전일제 사무직으로 일했다. 그러나 집을 살 정도로 급여가 넉넉한 건 아니었다. 그는 "업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가족과도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다"며 "어느 순간 '무엇 때문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털끝만큼의 변화도 일으킬 수 없는 거대한 관료사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쳤다"고 말했다.
퇴사한 그는 그는 현재 로스엔젤레스로 옮겨 TV쇼나 상업광고에 단역으로 등장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대규모 퇴사 현상이 젊은이들의 트렌드로 여겨지지만, 인간행태분석 기업 '비지어' 조사에 따르면 30~45세 직장인들의 퇴사 비율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중이다.
네이트 만은 밀레니얼세대 맏형 뻘인 40세다. 인생 절반을 워싱턴D.C. 펍의 바텐더로 일했다. 새벽까지 일하며 한해 8만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해 3월 일터가 폐쇄됐을 때, 부업으로 하던 그림그리기를 생업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는 "갑자기 온전한 시간이 생겼다.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 미술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들 상당수도 저연봉 또는 성취감이 없던 일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만은 자기계발을 위해 그동안 저축했던 돈을 쓰고 있다. 미국 개인저축액은 팬데믹 동안 크게 늘었다. 정부의 실업보조금과 지원금 액수가 커진 덕분이다.
글로벌 탈진 현상
1990년대 일본 언론들은 자국 젊은이들을 '프리터족'(freeters)이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성인이지만 정규 직장에 취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일본의 직장문화는 다소 억압적이었다. 위계도 엄격하고 하루 15시간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이들은 이런 문화를 거부하고 차라리 잡일을 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프리터족들은 2010년대 들어 '사토리세대'로 불렸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라는 뜻의 일본어로, 돈벌이는 물론 출세에도 관심 없는 젊은이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22세 타이라 카이루는 일반기업에서 일하면서 사토리세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프리터가 아닌, 미니멀리스트로 여긴다. 갖고 있는 옷이라곤 티셔츠 네장과 셔츠 네장뿐이다.
사토리세대는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는다. 지출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카이루는 "하지만 우리 각각은 인생에서 무엇이 보다 중요한지 더 잘 알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그같은 의미에서 나는 사토리세대라는 말이 좋다"고 말했다.
사토리세대가 점차 늘어나는 이유는 성장률 저하와 고용 불안이 지속되기 때문일 수 있다. 일본 신생아 수는 이미 수십년째 감소중이다. 2020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청년문화를 연구하는 미국 노스조지아대 로빈 오데이 교수는 "프리터의 경우 수치심과 두려움, 분노를 많이 표출했다"며 "반면 사토리세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상황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대만의 경제성장이 급격히 둔화되면서 대만의 젊은이들도 일본과 비슷한 타격을 받았다. 당시 아구이는 비디오 편집자로 일했다. 한개의 프로젝트를 끝내려면 3일 연속 밤을 새야 하는 직업이었다. 때문에 몸과 맘은 탈진증세를 보였다.
아구이는 2006년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됐다. 그는 "먹고살 만큼만 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며 "돈이 떨어지는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항상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결혼했고 2016년 전일제 일자리에 복귀했다. 요즘 그는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과거의 자신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는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사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자가주택의 문턱은 계속 높아진다. 도대체 이유가 뭔가"라고 반문했다.
유럽은 복지체제가 단단하다. 미국과 달리 유럽 주요국들은 고용유지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팬데믹에 따른 대량해고를 막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직업을 유지할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유로존 전역에서 약 200만명의 사람들이 일터를 떠났다.
26세 밀레나 쿨라는 베를린 소재 비영리 정치단체에서 일하다 2020년 5월 고용계약이 만료됐다. 그는 "당시 안도감을 느꼈다"며 "책상업무가 싫었다.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은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가던 45분 동안이었다"고 말했다.
쿨라는 이제 브란덴부르크시 외곽에서 산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 공간을 꾸밀 계획이다. 사회에서 이탈하겠다는 게 아니라, 신념을 가진 이들과 함께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것. 그는 "일을 하는 방식과 관련해 다른 접근법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삶을 꾸리기 위해선 조작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킹스칼리지런던 정책연구소장 바비 더피는 "일에 대한 젊은이들의 태도 변화가 장기적 트렌드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퀄트릭스의 그레인저 대표는 "미국과 유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는 현상은 구조적, 심리적 변화를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며 "사람들은 목적의식을 갖고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에 대한 사례는 많다"고 말했다.
중국에서의 변화는 더 근본적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탕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누구나 부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게 하겠다고, 중산층 규모를 2035년까지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 둔화 시기를 맞아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의 결실이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게 됐다. 최근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하는 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날로 늘어나는 주거와 교육 비용을 낮추기 위해 각종 정책을 마련중이다.
일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고민이 지속된다면, 경제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샹 뱌오 소장은 "탕핑 현상과 대규모 퇴사 현상은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고 있다"며 "이는 좋은 모멘텀으로 기능할 수 있다. 경제성장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규정하는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