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업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자본조달·운용자산 역대 최고치 … 기준금리 인상에 지속될지 관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에 따르면 사모펀드기업들은 호주 시드니공항이나 이탈리아 스마트폰기업, 프랑스 축구클럽,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수송관 등을 사들였거나 사들이려 준비중이다. 사모투자기업들은 올해 1월부터 이달초까지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1조1000억달러 자금을 모았다. 역대 최고치 등극은 시간문제다.
사모시장 호황에 관련 기업 경영진 보수는 이례적인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달 10일 미국계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2명의 공동 CEO 각자에 10억달러 이상의 보수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모펀드는 한때 불투명한 특성 때문에 '대체투자'로 분류됐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사모투자기업들의 운용자산은 10조달러에 달한다. 이는 전세계 총자산의 10%에 해당한다. 여기엔 다양한 형태의 투자활동이 포함된다. 대출을 이용해 기업을 인수한 뒤 이익을 뽑아내고, 다시 프리미엄을 붙여 재매각하는 사모펀드들은 빠른 이익환원을 약속한다. 인프라와 부동산 분야도 사모펀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사모신용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디폴트 리스크를 가진 소규모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매력적인 수익을 올린다.
올해 사모시장 호황의 배경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동성이 풍부해졌다는 사실, 금융계가 구조적인 전환기의 절정기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전세계 연기금과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미래 의무를 맞추기 위해선 연간 6~7%의 수익률을 달성해야 한다. 기준금리가 바닥인 상황에서 연기금, 보험사들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좋은 사모펀드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사모펀드 조사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연기금과 보험사, 국부펀드 등 운용자산 기준 전세계 25대 투자자들은 자산 9%를 사모시장에서 굴리고 있다. 2011년보다 2배 늘었다. 이들의 운용자산은 도합 22조달러에 달한다. 1420억달러를 굴리는 호주 국부펀드 '퓨처펀드'는 운용자산의 35%를, 캐나다 퀘벡주 연금인 'CDPQ'는 55%를 사모시장에 투자중이다.
자본시장에서 활발한 기업공개(IPO)가 이뤄지면서 사모투자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사모투자기업들은 보유자산을 더 많이 매각하거나 상장시킬 수 있고 투자자들은 더 많은 수익금을 되돌려받고 있다. 이들 투자자는 사모시장에 등장하는 새로운 투자기회에 더 열렬히 참여한다.
세계최대 사모펀드기업인 블랙스톤은 올해 자산매각과 현금환원, 자금모금 모두 2020년의 2배 수준에 육박했다. 사모펀드를 투자자들에게 소개하는 '프로비타스'의 켈리 드퐁은 "더 많은 거래가 더 빨리 이뤄지면서 사모펀드기업들이 투자대상에 자본을 더 빨리 배정하고 더 자주 투자금을 모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수익률은 월등히 높다'는 세간의 인식이 있다. 이는 다양한 논쟁적 주장을 반영한다. 자유롭게 거래되지 않는 자산에 돈을 묶어두기에 투자자들은 불투명성에 따른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모시장은 공개시장보다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숙련된 운용사들이 지속적으로 월등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이를 반박하는 측에선 '사모펀드시장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운용사들은 높은 레버리지와 변동성을 감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사모업계의 비법은 현재까진 적중하고 있다. 거대 투자자 상당수는 올해 10% 중반대의 연 수익을 기록중이다. 이들은 사모펀드 투자에 적극적이다. 사모펀드와 관련된 투자수익률은 50%를 넘는다. 반면 미국 주가지수인 S&P500 수익률은 24%에 그친다.
고수익을 노리는 일부 투자자들은 사모펀드의 패시브 투자자로 남기보다 사모투자 대상에 직접 투자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7030억달러를 운용하는 네덜란드의 최대 연기금 운용기관 'APG'는 "사모펀드가 투자하는 모든 기업들의 지분 10~15%를 확보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전략적 사안에 비토권을 갖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의 주요 유한책임 파트너들 역시 포트폴리오에 속한 기업들에 직접 공동투자하고 있다. 보다 많은 재량권을 가질 수 있는 데다 전반적인 수수료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는 아예 사모펀드를 거치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올해 사모펀드와의 공동투자나 사모펀드를 배제한 직접투자는 265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역대 최고치다. 인프라와 부동산 등 실질자산에 투자하는 주요 투자자들은 아예 개발 시행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기숙사나 병원 등에 대한 인수거래를 중개하며 두둑한 마진을 챙긴다.
사모펀드시장의 역대급 호황은 동시에 불안의 원천이기도 하다.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액)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프로비타스가 올 가을 71곳의 글로벌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인수거래 과열경쟁'을 최대 리스크로 꼽았다. 같은 질문에 대한 지난해 응답은 55%였다. 인수기업에 대한 과열경쟁은 '상당의 주의 의무'(due diligence)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APFC의 스티브 모슬리는 "기업인수 결정에 더 많은 돈이 투입되고 있지만, 심사숙고하는 시간은 더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사모펀드에 투자하기로 약정했지만 실제 이뤄지지 않은 비할당 자본은 역대 최고치인 3조3000억달러에 달한다. 자본을 시급히 할당하라는 압력이 거세지면서 사모펀드기업들은 잠재적 인수대상 기업들을 엄격하게 평가하거나 거래를 중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사모펀드시장에 다가올 또 다른 리스크는 주요국의 기준금리다. 현재까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의 경제회복은 활발한 상황이다. 사모펀드들이 인수한 기업과 자산의 실적이 상당히 괜찮다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어 블랙스톤은 지난달 투자자들에게 "사상 처음으로 우리가 소유한 모든 기업들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통화긴축정책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현재까지 신용시장에 별다른 타격은 없다. 정크본드 수익률은 9월 4%에서 현재 4.5%로 올랐다. 하지만 향후 상황을 장담하긴 어렵다.
사모펀드의 기업인수 거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금고는 현금으로 가득찼다. 사모펀드업계의 향후 행보는 어떤 것일까. 한가지 옵션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청산하는 것이다. 즉 자산 매입보다 매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별다른 변동이 없다. 3대 사모펀드기업인 블랙스톤과 칼라일, KKR의 경우 올해 들어 현재까지 1달러 자산을 팔았다면 1.30달러 자산을 사들였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수치는 사모펀드업계 전반적으로 향후에도 좋은 시절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반면 투자자 일부는 조심스런 행보를 걷고 있다. 호주 퓨처펀드는 실질자산 포트폴리오를 방어적 자산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 펀드 투자 부대표인 웬디 노리스는 "다양한 세입자가 살고 있는 주택단지 등으로 투자대상을 바꾸고 있다. 한번 짓고 나서 계속 보유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체투자로 불리는 사모펀드시장보다 나은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은 거의 없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조사한 투자자들 대부분은 '앞으로도 사모펀드에 대한 자본할당액을 지속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답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일부 투자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기억이 있다. 당시 이들은 헐값에 나온 자산을 사들이기보다 손실을 감수하면서 보유중인 사모자산을 앞다퉈 내던졌다"며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계속 사모펀드 시장에 발을 들일 생각"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