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은 반도체, 인도는 원자재 좋았다
닛케이, 올해 아시아증시 베스트-워스트기업 분석 … 중국 교육·부동산기업은 최대 피해자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치솟으면서 그동안 덜 알려진 기업들의 주가는 급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 실물경제가 점차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회복하면서 물류와 금융기업들 역시 성장세를 이어갔다.
닛케이아시아가 1년 전인 2020년 말 기준 100억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록한 약 600개의 아시아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시총 변화를 따진 결과 기업 절반 정도의 시가총액이 늘었고, 나머지 절반의 기업 시가총액은 줄었다.
닛케이에 따르면 최고의 시총 성장세를 누린 기업 중 하나는 일본의 '레이저텍'이다. 레이저텍의 시가총액은 1년 간 162% 상승한 260억달러였다. 레이저텍은 반도체업계 틈새기업으로 포토마스크 검사 장비를 만든다. 포토마스크란 유리기판 위에 반도체 미세회로를 형상화하는 장비다. 닛케이는 "극자외선(EUV) 포토마스크용 장비를 거의 독점하면서 올 한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고 전했다.
중국 최대 반도체장비 제조사인 '베이팡화창그룹'도 비상했다. 이 기업의 시가총액은 지난 1년 간 103% 올라 1820억위안(286억달러)에 달했다. 올해 1~9월 베이팡화창의 순이익은 2배 이상 올라 6억5800만위안(1억322만달러)을 기록했다.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일본 도쿄 일렉트론과 경쟁하는 베이팡화창은 지난달 사모를 통해 85억위안을 확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경제가 회복하면서 제조업 수요가 꾸준이 늘면서 원자재 관련 주식이 상승했다. 시총 상승 10대 아시아 기업 중 중국 '코스코해운'의 시가총액이 110%, 인도 철강기업 '타타스틸'의 시가총액이 83% 상승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올해 아시아 기업의 증시성적은 글로벌 기업에 못미쳤다. 이달 21일 기준 MSCI의 '올컨트리 아시아인덱스'는 1% 하락한 반면 '올컨트리 월드인덱스'는 17% 상승했다.
노무라증권의 수석 주식전략가인 체탄 세트는 "올 한해 아시아 주식을 들었다놓았다 한 주요 요소는 중국이었다"며 "중국당국이 부동산과 교육,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의 부문을 겨냥해 거시·미시적 규제를 강화하면서 주식투자자들의 투심을 흔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교육기업들은 올해 최대 패자였다. 사교육기업 '가오투 테크에듀', 'TAL에듀케이션'의 시가총액은 각각 96%, 94% 급락했다. 이들 기업은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비영리단체로 전환됐다. 이 때문에 수만명의 교사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중국정부의 조치는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량, 부모들의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원이었다.
중국의 글로벌 스타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주가도 고꾸라지면서 글로벌 10대 시가총액 기업에서 탈락했다. 올해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은 51%,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22% 하락했다.
투자자문사 '게이브칼 리서치'의 댄 왕은 "중국정부의 규제강화는 소비자인터넷 기업들보다 반도체 분야와 같은 하드테크놀로지에 국가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2021년 시가총액 최대 상승 기업은 차이나텔레콤이었다. 상승률이 162%에 달했다. 하지만 따져봐야 할 대목이 있다는 지적이다. 차이나텔레콤의 시가총액이 급증한 건 올해 8월로, 중국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상하이증시에 상장한 덕분이었다. 미정부가 차이나텔레콤과 군부의 유착을 의심해 뉴욕증시에서 퇴출시킨 이후다.
닛케이는 "중국 본토증시 상장과 다른 국가 증시 상장은 다르다. 주식투자의 자유가 제한되기 때문"이라며 "동일한 기업이라고 해도 본토증시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책정 메커니즘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항셍지수 '스톡커넥트 차이나 AH 프리미엄 인덱스'는 본토증시와 홍콩증시에 동시상장된 기업주식의 가격 차이를 추적한다. 이에 따르면 지난주 금요일 기준 중국 본토에 상장된 주식엔 47.1%의 주가 프리미엄이 붙는 것으로 나타났다. 닛케이는 "차이나텔레콤의 시가총액이 급격히 불어난 것을 두고, 기업가치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를 파악하기란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아시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많이 올랐던 싱가포르 전자상거래·온라인게임기업 씨(Sea)의 올해 성적은 다소 부진했다. 올해 시가총액은 24%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국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48% 상승했다. 닛케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서, 투자자들은 디지털서비스 기업들이 여전히 성장세를 구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실물경제가 점진적으로 회복하면서 금융주의 주가가 상승했다. 대표적으로 인도 최대 상업은행인 '인디아스테이트은행'의 시가총액은 62% 상승했다. 예금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인도 증권사 'ICICI 디렉트'는 11월 리서치노트에서 "인도 경제회복의 모멘텀이 강화되면서 인디아스테이트은행의 예금이 늘었다. 향후 손실에 대한 충당액도 상당하다. 지속적으로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인도 삼륜차 제조사인 '바자즈그룹'의 금융자회사인 '바자즈 핀서브'는 78%의 시총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기업은 소매금융과 생명보험, 일반보험 등에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올해 8월엔 인도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뮤추얼펀드 취급 승인도 받았다.
반면 코로나 상황 호전으로 울상 짓는 기업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개인보호장구 제조사들이다. 세계 최대 의료장갑 제조사인 말레이시아의 '탑글로브'와 같은 나라 경쟁업체 '하탈레가'의 시총은 올해 각각 66%, 56% 줄었다.
향후 아시아 증시와 관련해 주요 애널리스트들은 반도체 제조사와 관련 장비 제조사들의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규모 서버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가 지속적으로 커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JP모간체이스의 애널리스트 모리야마 히사시는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고성능 프로세서는 향후에도 강력한 수요를 유지할 것"이라며 '최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 등은 내년에도 분주한 한해를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TSMC는 올해 8월 중국 텐센트를 제치고 아시아 시가총액 1위 기업에 등극했다.
노무라증권 세트 전략가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긴축 전환 등으로 내년 1분기 아시아 증시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면서도 "내년 한해 전체로 보면 아시아 주식에 상당히 건설적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정부의 재정·통화정책이 경제성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며 "덕분에 중국 주식은 물론 아시아 주요 기업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