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올인이냐, 선택적 전환이냐 고심

2021-12-31 10:48:00 게재

BMW·도요타·스텔란티스, 배터리전기차 러시에 신중 … "녹색혁명은 점진적"

지난해부터 전세계 주요 자동차제조사들은 전기차에 '올인'(All-in, 다걸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은 내연기관엔진차의 판매 기한을 설정했다. 폭스바겐은 다른 옵션을 거의 배제한 채 배터리 구동 전기차에 520억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전기차 올인을 선언한 이유는 두가지다. 각국의 환경규제가 점차 강화되는 데다 전기차 신생업체였던 테슬라가 드라마 같은 성공스토리를 일구면서다. 주요 자동차제조사들은 전기차로의 신속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수소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매진한 일본 도요타도 이달 초 일본에서 열린 투자자 설명회에서 전기차사업에 3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대 출시할 새로운 전기차모델도 소개했다. 하지만 도요타의 전략은 올인이 아니다. 도요타는 "모두에게 맞춘 단일 옵션으로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다"며 "우리는 전세계 고객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옵션을 준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도요타뿐 아니다. 독일 BMW와 스텔란티스(이탈리아계 미국 기업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프랑스 기업 PSA 그룹의 합병법인)도 배터리전기차에 대한 올인 전략은 아직 성급하다고 보고 있다. 물론 세 기업 모두 향후 10년 동안 전기차 판매량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기차 전환의 속도,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광범위한 여파를 우려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 "비공개석상에선 많은 자동차기업 경영자들이 그같은 우려에 공감한다"며 "각국 정부가 배터리전기차를 과도하게 밀어붙이는 상황에 저항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BMW와 도요타, 스텔란티스도 유럽이나 중국이 향후 10년 동안 주요 전기차 시장이 될 것이라는 데엔 동의한다. 하지만 소득이 낮은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서 전기차 수요가 충분히 받쳐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투자회사 '번스타인'에 따르면 유럽과 중국,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전기차 점유율은 1% 정도에 불과하다. 안정적인 전력망을 확보하지 못한 나라들에선 전기차 확대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도요타 수석과학자 길 프랫은 "전기차 충전인프라가 없다면, 전기차의 탄소배출 저감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사지 않을 것이다. 내연기관엔진차가 여전히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MW도 이에 동의한다. BMW 세일즈 총괄대표인 피터 노타는 "전세계 전기차 고객들이 2030년 충전인프라를 넉넉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절대적으로 비현실적"이라며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선 미래 특정 시기까지는 내연기관엔진차를 공급하는 게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각국정부가 배터리전기차를 유일한 녹색교통수단 기술인 것처럼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을 갖고 있다. 스텔란티스 대표인 카를로스 타바레스는 자동차업계를 전구업계에 비유하며 주의를 촉구했다. 그는 "백열전구는 과도기 동안 미래의 전구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낮고 가격이 비싼 데다 밝기능력도 떨어졌다"며 "만약 전세계 각국이 수준 이하의 백열전구를 업체들에 강제했다면, 대다수 기업들은 LED조명 신기술 앞에 다같이 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의 프랫도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미래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옵션이 필요하다"

각국의 규제당국들은 어떤 기술이 내연기관엔진을 대체할 것인지에 대해 중립을 지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설정한 시간표는 자동차제조사들에게 별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사실상 배터리전기차 시장에 진입하도록 강제한다.

BMW는 "지속가능성은 전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내연기관엔진 모델에 재생가능한 재료를 사용하고 원자재 공급에 윤리성을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공급망 관련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을 약 60% 줄이고, 생산공장에서 나오는 탄소를 제거하며, 자동차 폐기 단계에서 대부분의 부품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왜 배터리전기차에 올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도요타 유럽 대표인 맷 해리슨은 "올인의 의미가 어떤지에 달렸다. 탄소를 줄이는 의미라면 도요타는 올인하고 있다"며 "지난 20년 동안 수소차 개발에 매진했다. 경쟁기업들보다 앞서 유럽연합(EU) 이산화탄소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도요타는 이달 초 30종의 새로운 배터리전기차 모델을 공개했다. 하지만 수소차를 비롯한 다른 기술에도 여전히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양한 옵션이 기업의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자동차업계가 전기차 시스템에 거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때에 경쟁관계에 있는 많은 기술을 동시에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앨릭스 파트너스'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향후 5년 동안 배터리전기차 기술에만 33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비용통합 필요성으로 프랑스기업 PSA와 이탈리아계 미국기업 피아트 크라이슬러는 500억유로 규모의 합병을 성사시켜 스텔란티스를 만들었다. 또 포드가 폭스바겐과 글로벌 동맹을 맺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기차 개발비용은 소비자가격에 녹아든다. 배터리 가격이 지속 하락하는 데도 전기차는 여전히 내연기관엔진차보다 비싸다. 양측의 간극은 생애첫차를 마련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다.

스텔란티스 타바레스 대표는 "제조사 입장에선 전기차 전환으로 50%의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의 절반을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하기가 어렵다. 중산층 대부분이 이를 부담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의 고비용으로 자동차 자가소유가 어렵게 되면 2018년 프랑스 파리를 휩쓴 반정부시위 '노란조끼운동'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메르세데스도 동의한다. '전기차 전환은 부자들이 이끌 것'이라는 입장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대표 올라 칼레니우스는 FT에 "우리 고객층은 상대적으로 충전인프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류다. 때문에 우리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 전기차 전환에 야심찬 목표를 설정한 이유"라고 말했다.

전기차로의 급작스런 전환에 목청을 가장 높이는 업계는 완성차 협력업체들이다. 완성차업계가 배터리전기차로 전면 전환된다면 멸종 가능성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독일 자동차부품기업 보쉬는 여러 완성차기업의 엔진을 제조한다. 보쉬는 독일 정치권을 상대로 '전기차 일방향 해법을 재고하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보쉬 CEO 폴크마 덴너는 올해 2월 "현대적인 경유차 엔진은 다른 종류의 자동차보다 질소산화물을 더 많이 배출하지 않는다. 휘발유 엔진 역시 미세먼지 배출량이 1/100배 이상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이러한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유럽 환경연구단체인 '트랜스포트&인바이어런먼트'의 국장인 줄리아 폴리스카노바는 "보쉬와 BMW 같은 기업은 '내연기관엔진 자동차의 미래는 없다'는 명확한 상황을 직시하지 않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정연료 기술과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죽어가는 내연기관엔진 업계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시도일 뿐"이라며 "지구 생태계는 그같은 꼼수를 더이상 감당할 수 없다. 각국은 더 강력한 탄소배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전환에 각기 다른 속내

자동차업계가 전기차 전환 속도에 엇갈린 입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기업별 전환 속도의 차이점은 오너십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포드 회장인 빌 포드는 채식주의자로, 환경문제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포드는 2040년 기한으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가족 소유 기업들은 전기차 전환에 보다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BMW의 주요 주주는 콴트&클라텐 가족으로 46% 지분을 갖고 있다. 경쟁기업들에 비해 '전기차로 전환하라'는 투자자들의 압박을 덜 받는다. 창업주의 손자인 도요타 아키오가 이끄는 도요타나 아그넬리와 푸조 가족이 지배하는 스텔란티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는 기업들이 홍보 측면의 이점을 누리고자 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GM과 다임러가 전기차 전환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1조달러 이상으로 급등한 상황, 스타트업 '리비언'과 '루시드'가 시가총액 측면에서 전통의 완성차기업을 앞지르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것.

글로벌 투자은행 '제퍼리스'의 자동차 애널리스트인 필립 후코이는 "메르세데스와 GM의 전기차 전면전환 선언은 디스카운트해야 할 측면이 있다"며 "그들이 필요한 건 주가부양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코이는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인 기업은 오히려 투자자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도요타는 지난 5년 동안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판매하면서 EU 탄소배출 기준과 관련, 그 어느 기업보다 많은 양의 탄소를 감축했다. 하지만 시장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만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전기차에 대해 열광적으로 찬양하는 기업이나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인 기업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며 "찬양론자들은 전기차 전환을 내세워 주가를 단기간 부양하고자 하고, 회의적인 기업은 경쟁자가 사라진 내연기관엔진 시장을 독차지하기 원한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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