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로펌, 2020년대 들어 몸집 커져

2022-01-03 11:34:06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역대 최고 매출 … 경영 혁신으로 성장 지속 가능성"

세상이 혼란할수록, 이를 정리하는 사업은 활기를 띤다. 특히 로펌업계는 최근 들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매출 기준 세계 4위 로펌인 '덴튼스'의 CEO 엘리엇 포트노이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법무시장의 수요가 매우 강력하다"고 말했다. 올해 덴튼스의 총매출은 30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덴튼스는 6년 전 중국 거대 로펌 '다청'과 합친 것을 비롯, 여러 차례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 지난 1년 간 1000명 안팎의 변호사를 영입했다. 전체 변호사는 1만2000명을 넘는다. 전세계 주요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력이 부족해 사업기회를 놓칠 지경이라고 한다.

덴튼스뿐 아니다. 주요 거대 로펌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글로벌 100대 로펌의 올해 총매출액은 2020년 기록했던 역대 최고 기록(1280억달러)을 쉽사리 넘길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로펌인 미국의 '커클랜드&엘리스'는 올해 50억달러 이상의 연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2015년 매출액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로펌 컨설턴트인 피터 조이크호이저 추산에 따르면 300대 글로벌 로펌 절반 이상에서 법무법인 수익의 일정지분을 수당으로 받는 지분변호사의 수익이 6% 이상 올랐다. 성장세가 빠른 75개 로펌의 경우 지분변호사들의 수익이 두자릿수 퍼센트로 늘었다. 미국 100대 로펌의 지분변호사들은 평균 250만달러를 가져간다. 하버드 로스쿨의 데이비드 윌킨스 교수는 "내가 아는 모든 로펌의 모든 변호사가 역대 최고의 수당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버드 로스쿨의 법무 관련 세미나는 거대 로펌 CEO들에게 인기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로펌업계의 급속한 성장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며 "우선 법률 서비스 수요는 늘었는데, 비용은 하락했다"고 짚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에, 출장업무와 고객접대가 급감했다. 재택근무는 24시간 내내 법률 자문료를 청구할 수 있는 편리한 방편이 됐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로펌업계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파산 자문만 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로펌업계의 가장 수지맞는 영역은 인수합병(M&A)이다. 올해 M&A 금액은 5조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역대 최고치였던 2015년 4조20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사모인수거래의 경우 자금조달에서 투자회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활황세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S)를 통한 우회상장 등 증시상장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미중 갈등으로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시에서 퇴출되고 홍콩이나 상하이 증시에 재상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로펌업계가 반색하고 있다.

역대로 잠잠한 편이었던 비거래 사업 부문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전세계 주요국 정부가 데이터안보와 기후다양성 등을 적극 규제하려 준비중이다. 유럽연합(EU)은 곧 디지털시장과 서비스를 규제하는 관련법률을 통과시킬 전망이다. 이는 애플과 알파벳(구글 모기업), 메타(전 페이스북) 등 글로벌 초거대 기업 고객들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다. 또 미국 반독점당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지배적 기업들에 대한 활동 강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정부는 민간기업 전반을 대상으로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에게 보다 많은 세금을 걷어 관련 국가들에게 보다 공평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글로벌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을 준수하라는 투자자들의 압력도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사내에 관련 기구를 새롭게 설치하느라 부산하다. 이 모든 상황에 로펌들이 적극 개입할 수밖에 없다.

덴튼스는 여기에 더해 올해 특정 재판 결과가 기업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미국 혈액검사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대표 엘리자베스 홈즈의 재판이다. 홈즈는 사기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불완전한 상품을 과장 홍보했다는 혐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홈즈가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비슷한 종류의 법률자문을 구하는 기업들의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전했다.

세계 10위 로펌인 영국 '클리포트 챈스'의 글로벌 파트너변호사인 저로언 오위핸드는 "이 모든 상황이 기업에겐 도전과제이지만 로펌에겐 노다지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다지를 최대한 캐내기 위해 로펌들은 사업경영모델을 개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로펌들은 이제 고객인 글로벌 기업들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보상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형 로펌들은 그간 연공서열에 기반해 파트너변호사들에게 이익을 배분했다. 이 방법은 동료 간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M&A처럼 수익성 좋은 사업분야가 필요하다. 수익성이 저조한 영역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줄 보상을 보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실적이 좋은 변호사들에겐 점차 연공서열 보수제가 통하지 않고 있다. 주요 로펌의 최고 실력자들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언제든 이직할 마음을 품는다. 글로벌 로펌의 한 파트너변호사는 매주 헤드헌터들로부터 2~3통의 이직 관련 제안서를 받는다고 말했다.

글로벌 1, 2위 로펌인 커클랜드&엘리스와 레이텀&왓킨스가 미국 법률시장의 정상에 오른 이유는 승소율 높은 변호사들에게 '벌어들이는 수익에 기반해 보수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적극적인 영입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기업세계에선 일반적인 '실적기반 접근법'(eat what you kill)은 로펌업계로 속속 확산되고 있다. 뉴욕 소재 로펌인 '크라뱃, 스웨인&무어'와 런던 소재 로펌 '링크레이터스'는 이달 연공서열 기반 보수제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로펌이 기업을 닮아가는 모습은 또 있다. 클리포드 챈스는 사내에 연구개발(R&D) 부서를 운영중이다. 본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소송을 어떻게 하면 최적 최선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영-호주 로펌인 '애쉬허스트'는 사내 컨설팅부서를 만들었다. 10명의 파트너변호사를 포함해 60명으로 구성됐다. 기업을 대상으로 사기방지와 규정준수, 위기관리 등을 조언하는 부서다. 과거 회계법인과 컨설팅기업의 업무영역으로 여겨지던 일이다. 덴튼스는 지난해 미국 전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만든 전략자문사 '올브라이트 스톤브릿지' 그룹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컨설팅 자회사를 설립하기 위해서다. 덴튼스는 이를 위해 15~20명의 사람들을 고용했다.

기업과 로펌이 비슷해지는 세번째는 선제적인 사업확장이다. 많은 로펌들이 과거 법률서비스의 후미나 벽지로 여겨진 곳에 속속 법인을 개설하고 있다. 고객을 발굴하는 한편 비용을 줄이기 위한 양수겸장이다. 클리포드 챈스는 런던과 뉴욕 등 법률적 허브의 일부 사업을 인도 델리나 영국 뉴캐슬 등 물가가 저렴한 곳으로 이전했다. 애쉬허스트의 경우 영국에서 활동하는 수만큼 많은 변호사들을 호주에서 고용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초기에 주도한 로펌은 '베이커 맥켄지'다. 시카고 소재 글로벌 5위 로펌인 베이커 맥켄지는 현재 46개국에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덴튼스는 82개국에서 200곳 넘는 법인을 보유중이다.

베이커 맥켄지나 덴튼스는 '스위스 베레인'(Swiss verein)이라는 조직구조를 활용하고 있다. 각국 지사는 동일하거나 비슷한 이름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운영방식이나 회계 자율성이 크다. 강력한 문화를 갖춘 일원화된 조직이 아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 더 가깝다. 이에 비판적인 측에선 베이커 맥켄지를 '베이커 맥도날드'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지는 "중앙집중적인 경쟁 로펌들과 달리 글로벌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평했다.

덴튼스는 지난 1년 간 북미와 중남미, 아프리카 지역의 로펌들과 협력관계를 맺었다. 곧 베트남의 대형 로펌과 거래를 완료할 예정이다. 볼리비아와 그레나다, 우르과이 등에도 새로운 지사를 개설할 방침이다. 포트노이 CEO는 "우리는 다중심주의다. 단일한 사내 문화가 없고, 표준 보수 체계가 없고, 누구를 고용할지에 대한 지시와 명령이 없다. 무엇보다 위계에 따른 식민지화가 없다"며 "사업을 글로벌화할수록, 법률서비스 수요는 더 커진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거대 로펌인 '잉커'나 '킹&우드', 그리고 중국에서 대부분 활동하는 덴튼스의 성장세가 빠르긴 하지만, 미국의 로펌 지배력은 여전하다. 글로벌 100대 로펌 중 4/5가 미국에 있다. 또 로펌 시장 역시 대형 로펌 위주로 집중되고 있다. 2020년 매출 기준 100대 로펌 중 1~3위 로펌의 비중은 10%였다. 5년 전 8%에서 늘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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