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특성화고 현장실습 개선안 발표①
학생·교사·교육청 '실효성 의문' 한목소리
사고 원인 해소 역부족 지적 … 운영 능력 없는 기업 참여 우려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현장실습생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가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안을 내놨다. 하지만 정책 파트너인 시도교육청은 물론 이해당사자인 학생, 교사까지 교육현장 곳곳에서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실효성 없는 방안'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고 원인을 제공하는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3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가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을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24일 직업계고 현장실습 피해자 가족모임과 현장실습 폐지·직업계고 교육정상화 추진위원회 소속 단체 90곳이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현장실습 도중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숱하게 반복되고 그때마다 정부가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사고 발생→제도 강화→제도 완화→사고 발생'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은 하지만 노동자는 아냐 = 같은 날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와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도 전태일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의 홍정운을 막기에는 교육부 현장실습 개선방안이 부족해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이번 교육부의 발표에서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이 여전히 인정되지 않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다는 점, 실습 기업의 책무를 낮춰 여건이 안 되는 기업의 참여를 확대했다는 점 등을 주요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사장은 "개선안에서는 여전히 실습생을 학생만으로 규정하며,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면 직장 내 괴롭힘·유급휴가 규정 미적용·직장 내 성희롱 등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추가적 법 개정이 필요 없어 현실적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단체는 실습 기업의 실습수당 비용 부담을 낮추는 것에 대해서도 "현재도 최저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거나 지급할 의사가 없는 기업들이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문제가 있는데, 기업부담을 더 낮춘다면 제대로 된 실습을 운영할 능력이 없는 기업들의 참여가 확대될 것"이라며 "양질의 실습처를 확대하자는 것이지,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실습처를 무분별하게 늘리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포기" = 또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교육부개선방안에 대해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실효성 없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교육부는 참여기업 현장실습 폐지라는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기업의 현장실습 참여 조건이 낮은데, 고용부의 감독 기능을 추가한들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은 선도기업과 참여기업으로 나뉜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이 심사하는 선도기업과 달리 참여기업은 각 학교의 현장실습운영위원회가 심사해 상대적으로 낮은 심사 기준이 적용된다.
전교조는 "정부가 진정 직업계고 교육을 정상화하고자 한다면,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 말고는 답이 있을 수 없다"며 "현장실습을 폐지할 대안으로 3학년 2학기 11월까지 수업권을 보장하고 12월부터 취업 준비기간을 정하는 '전국 동시 취업기간 설정을 통한 직업계고 교육 정상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기업 책무성마저 후퇴 = 이번 개선방안의 계기가 된 전남 여수 특성화고생 사망 사건을 조사한 전남교육청도 장석웅 교육감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전국 직업계고 공통으로 채용약정형 현장실습 시기 조정을 포함한 직업계고 교육과정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남교육청은 또 현장실습 기업에 대한 안전점검과 관리·감독이 실효적으로 추진되도록 고용노동부의 역할과 책임을 명시하고, 현장실습학생 수당의 기업부담 감소(70%→40%)에 따른 기업의 책무성 강화 방안 마련도 요구했다.
전남교육청은 지난 10월 6일 여수에서 발생한 고 홍정운군 현장실습 사고 이후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직업계고 교육과정 정상화와 안전한 현장실습 운영을 위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 교육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전남교육청은 교육부의 개선방안이 현장실습 참여학생의 수업결손 대책 미비, 현장실습기업의 관리·감독강화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개선안은 무슨 내용 담았나 = 한편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안전·권익 확보를 위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육부와 고용부는 현장실습 선도·참여기업 모두에 대해 사전 현장실사를 실시한다. 현장실습 선도기업은 실습생의 실무능력이나 현장 적응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자격조건을 갖췄다고 시도교육청이 승인한 기업이다. 반면 참여기업은 각 학교 현장실습운영위원회가 심사해 지정한다. 기존 실사는 선도기업의 경우 교사와 노무사, 참여기업은 교사만 참여했지만, 앞으로는 모두 산업안전보건공단과 노무사가 참여한 실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건설·기계·화공·전기 등 유해·위험 업종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이나 안전협회, 재해예방전문기관 등의 참여를 확대한다.
현장실습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늘어난다. 현재 기업이 70%, 정부가 30% 부담하던 현장실습 비용 분담을 기업 40%, 정부 30%, 교육청 30%로 변경한다. 이에 따라 관련 예산은 240억원에서 480억원으로 증가한다.
또한 교육부는 고용부와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사망재해 발생 사업장의 사업자등록번호를 공유하기로 했다. 문제가 있는 기업을 학교에서 사전에 확인해 현장실습 참여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현장실습 기업 중 교육청이 근로감독을 요청하거나 유해·위험사업장,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등의 노무관리 취약사업장에 대해서는 지방 노동관서의 근로감독관이 지도·감독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장실습생의 권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개정해 현장 실습생 부당대우 금지 관련 조항을 신설하고 시도별로도 현장실습 관련 조례 개정을 추진하도록 지원한다. 또 현장실습 관련 전담 노무사를 현재 549명에서 올해는 700명, 2023년에는 800명으로 확대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안전한 환경에서 현장실습을 하면서도 실습 기회가 더 늘어나도록 추가 개선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