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표소송,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에 꼭 필요"

2022-01-12 11:17:23 게재

투자자·시민단체 "주주 친화적 환경 조성 … 적극 환영"

주주권 행사, 오너리스크·기업 불법행위 최소 견제장치

재계·경제단체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 재검토 요구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대표소송을 예고하면서 투자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에 꼭 필요한 조치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주주권 행사는 남양유업이나 오스템임플란트 등 오너리스크와 기업 불법행위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견제장치라는 주장이다. 다만 재계와 경제단체들은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이라며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20~30개사에 서한 발송 =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현대자동차·GS건설·롯데하이마트 등 20~30개 기업에 기업가치 훼손을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경영과 관련해 형사 기소됐거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 중 상위 20~30여 곳이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갖고 있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넘기는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상정한 바 있다. 주주 대표소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가 직접 대표소송을 수행하기 부담스러운 점을 고려해 외부 전문가 집단인 수탁위를 통해 대표소송을 일원화할 방침이다. 명칭도 주주대표소송과 다중대표소송이 모두 포함될 수 있도록 대표소송으로 변경한다. 그동안 주주대표소송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고 예외적으로 수책위가 결정하도록 규정해 이원화된 구조를 갖고 있었으나 앞으로 대표소송 제기 결정 주체를 일원화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오는 2월 기금운용위 회의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부는 수책위로 소송 주체를 바꾼 후 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본격적인 주주대표소송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대표소송 본격화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전체 상장사들 가운데 회사에 미친 손해액이 크고 승소 가능성이 있는 상장사를 추려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소송 제기 대상 사건 후보 선정은 올해 수책위에서 손해액 크기, 소멸 시효 등을 고려해 결정할 방침이다. 횡령, 배임 등이 발생해 회사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이 큰 기업들을 중심으로 소송에 나설 전망이다. 지배구조 등 ESG 문제로 지적이 제기됐던 기업들이 국민연금 대표소송의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7개 경제단체는 지난 10일 공동성명을 내고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에 몰두하는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주주대표소송이 결과에 무관하게 기업의 신뢰도와 평판에 타격을 주고, 이는 결국 기금 수익률 하락으로 연결되어 가입자인 국민과 주주 모두에 불이익을 초래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또한 기금운용본부가 아닌 수책위가 소송 여부를 결정할 경우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와 여론에 따라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고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재계 근거 없는 여론전, 스튜어드십 코드 왜곡 말라" = 하지만 상법 제403조에 명시된 주주대표소송은 선관의무를 가진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주주들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오너리스크와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에 불과하고 '기업 벌주기'와는 무관한 정상적인 주주활동의 하나일 뿐이다.

개인투자자들과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재계의 최근 여론전을 '억지주장'이라 꼬집으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을 왜곡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 자금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기에 주식을 투자한 기업의 부당한 행위가 있으면 견제와 관리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이제부터라도 공정이 숨쉬게 체질개선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소액주주운동 활성화와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재계의 악의적인 공격과 근거없는 여론전이 그동안 국민연금의 제대로 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사실상 좌초시켜 왔다며 더 이상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활동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은 재계 반발을 이유로 주주대표소송을 흐지부지해선 안된다며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향후 대표소송 추진 등 국민 노후자금의 충실한 수탁자로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3년 간 주주대표소송에 관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세부 원칙을 정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해 왔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작년 하반기엔 대표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기업 경영진의 기업가치 훼손 행위 유인을 실효적으로 억제하고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빈말이 아님을 이번 기회에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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