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아시아는 두마리 호랑이를 용납할 수 있을까

2012-01-11 14:25:48 게재

불과 3년 전 힐러리 미국무장관은 중국과의 관계를 동주공제(同舟共濟)라고 표현했다. 그 말대로라면 미국의 아시아 회귀는 중미가 아시아라는 한 배에서 공제(共濟)를 하게 될 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를 선포하면서 미중 간에는 냉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아시아는 중국과 미국의 협력으로 새로운 질서를 이룰 수 있을까? 북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은 바로 그런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일산불용양호(一山不容兩虎)라는 말이 있다. 아시아라는 산에 두 호랑이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시아 도처에서 중국과 미국의 마찰음이 들리고 있다.

모택동의 모순론에 따르면 이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아시아의 주요 모순으로 부상했다. 다른 부차적인 모순들은 이 주요 모순에 의해 향배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일부 학자들은 이제 중국도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고 미국처럼 다른 나라들과 군사동맹도 맺으면서 미국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가 중국의 군사력을 필요로 하니 주변국에 안전보장도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중국위협론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아시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호랑이가 산을 절반씩 차지하고 대치하는 냉전에 몰입할 가능성이 많다. 세계 어디에서도 평화적으로 굴기한 강대국은 보이지 않는다. 영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모두 그랬다. 중국이 내건 평화굴기에는 미국에 도전하지 않는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패권주의를 용납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도전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없다.

미국이 패권주의 추구한다면 대결 불가피

중국이 바라는 미국은 아시아에서 평화적 역할을 하는 미국이지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이 아니다.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미국과는 상당한 기간 대결을 펼쳐나갈 것이다. 어찌 됐든 중국과 미국은 상당한 기간 양국관계를 새롭게 조절해나가는 진통을 겪어야 한다.

중국과 미국은 국공내전시기부터 한국전쟁, 냉전에 이르기까지 수십년 간 대결을 벌여왔다. 1970년대 관계개선을 이룬 후에도 갈등과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양국은 관계조절을 멈추지 않았고 협력도 계속 강화해왔다.

오늘의 갈등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새로운 갈등이다. 중국의 GDP가 일본을 따라잡을 때 일본이 초조함을 보였던 것처럼 미국도 이러한 초조함을 아시아 회귀로 보여주는 면이 없지 않다. 미국은 자칫하면 중국에 밀려 아시아라는 산을 내놓아야 하는 압박감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중국은 미국이 견제하고 포위하기에는 너무 벅찰만큼 커 버렸다.

미국의 장단에 맞춰 중국과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등을 돌릴 나라도 많지 않다. 미국의 동맹국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이 최근 우왕좌왕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미국이 이루려 하는 대중국 포위권망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내심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과 주변국들도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아시아의 현실이다. 물론 이는 중국과 미국, 중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 모두가 협력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계화와 지역경제공동체라는 추세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중국과 미국은 상당한 기간의 진통과 조절을 경과하면서 협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적어도 갈등과 협력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중 미 양국이 대결로만 나간다면 결국은 쌍방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이 될 수밖에 없고 아시아 다른 나라들도 재앙을 면하기 어렵다.

중국 예치(禮治)로 아시아 질서 주도

미국과 달리 중국은 아시아 질서를 주도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역사의 주류는 문화에 의한 예치(禮治)였지 군사력에 의한 강압이 아니었다.

이는 중국의 현재 문화강국 건설과 평화적 굴기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저력이기도 하다. 미국과 대결이 아닌 협력을 할 수 있는 저력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아시아는 양호를 용납하고 양호협력으로 주도될 수밖에 없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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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베이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