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헌법'으로 불리는 '에너지기본계획' 실종

2022-01-20 10:57:07 게재

녹색성장기본법 폐기·탄소중립법 제정되며

에기본 근거조항 누락된 것 뒤늦게 드러나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에너지정책 수립 차질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에너지 헌법'이라 불리는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이 실종됐다.

에기본의 근거조항이 담겨있던 녹색성장기본법이 폐기되고,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관련내용이 빠진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에 따라 연내 수립·확정해야 하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상위 계획 부재로 차질이 우려된다.

에기본은 현재 시점부터 향후 20년 동안의 에너지 수요·공급 전망, 에너지 확보·공급 대책, 에너지 기술개발과 인력 양성 계획 등을 5년마다 수립해 왔다. 어떤 에너지의 비중을 얼마나 가져갈지(에너지믹스)도 결정해 발표한다. 에너지 헌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에너지기본계획의 구속을 받는 하위 계획은 10여개에 이른다. 전력수급기본계획,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 에너지이용합리화계획, 에너지기술개발계획, 석유비축계획 등이다.

에기본은 노무현정부 시절 에너지법에 근거조항을 마련하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으로 명명됐다. 그러다 이명박정부 들어 녹색성장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에기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통령이 위원장이던 국가에너지위원회도 산업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에너지위원회으로 격하됐다.

이후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8월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녹색성장기본법이 폐기됐다. 이 과정에서 탄소중립기본법이 환경부 주관으로 추진되고, 정치권 여야 대립으로 여당이 법안을 단독처리하면서 에기본은 미아신세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장 올해 안에 수립해야 하는 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 추진과정이 애로를 겪고 있다. 전력기본수급계획은 전력수급 전망, 수요관리, 전력설비 계획, 에너지원별 발전비중 등을 담는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상위계획인 에기본의 내용을 따랐느냐 여부가 논란이 돼 감사원 감사까지 진행된 바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새정부가 출범하고, 에기본 근거가 다시 만들어지기까지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재생에너지 비중 60~70%) 흐름에 맞춰 기초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향후에는 에너지정책의 탈정치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생활과 안전에 직결되는 국가 에너지정책이 정권교체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180도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수립한 1차 에기본(2008~2030년)에서는 전체 발전설비 중 원전 비중을 2030년 41%(발전비중 59%)까지 대폭 확대할 구상이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때 수립한 3차 에기본(2019~2040년)에서는 원전 비중을 점진적 감축(신규 원전 금지, 수명연장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수립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원전 설비비중이 2034년 10.1%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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