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평가 단계별로 주민의견 낼 수 있어야"

2022-02-07 11:25:08 게재

미국 등 평가서 본안 의무 공개

"환경파괴는 물론 예산낭비 논란 등이 끊이지 않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보지도 못했어요. 개발사업으로 밀접한 영향을 받는 주민들이 협의가 끝난 다음에 결과를 통보받는 식의 평가 진행은 말이 안되죠."

노현기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 중단을 촉구해온 파주지역 시민단체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문재인정부가 남북연결 도로사업 중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문산-개성 간 고속도로' 남측 구간이다. 환경단체들은 임진강 하구의 대표 습지인 장단반도 일대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4일 문산행복센터에서 열린 문산 - 도라산 고속도로 주민공청회에서 주민들이 사업 중단을 외치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이날 공청회는 무산됐다. 사진 파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제때 평가서 볼 수 없다면 의미 없어 =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하고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제도다. 개발사업의 규모 등에 따라 절차가 다르지만 이번 사업의 경우 간략히 요약하면 전략환경영향평가 - 협의 기관인 환경부 협의 -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 주민설명회 및 공청회 - 환경영향평가서 본안-환경부 협의 등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사업자는 한국도로공사, 승인기관은 국토교통부다. 지난달 한국도로공사는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환경영향평가법 등에 따라 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단계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한 뒤 본안을 만들어 협의기관과 관련 내용을 협의하게 된다. 주민 의견을 수렴했고 협의기관과 협의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추가로 들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서다.

노 집행위원장은 "한국도로공사에 환경영향평가서 본안 내용 공개를 요청했지만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제76조 1항을 근거로 공유하지 않고 있다"며 "30일이 지나서 주겠다고 하고 생태 부문만 보여달라고 해도 미루고 있는데 이러면 주민들이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에 대해 제대로 된 검토를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민참여는 절차적 조건 아냐" = 환경영향평가에서 주민참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해묵은 과제다. 과거에 비해 주민참여 시기가 빨라지고 기회나 절차가 더 많이 보장되는 등 주민참여 제도가 강화되고는 있지만 절차만이 아니라 실질적 참여 측면에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 사회환경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환경영향평가를 환경부의 협의를 얻기 위한 제도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아직도 환경영향평가법이 생긴 1993년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환경부와의 협의가 목적이고 주민참여는 평가서 초안 단계에서만 하면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환경영향평가서 초안만 의무적으로 공개하지만 미국 일본은 물론 세계은행(World Bank)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국제기구는 스코핑(평가해야 할 항목과 범위) 초안 본안 모두를 알려야 한다"며 "개발사업으로 인한 갈등을 예방하려면 협의기관에 제출하는 자료와 동일한 자료를 지역주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환경연구원의 '개발기본계획의 전략환경영향평가 운영의 성과 분석 및 발전 방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주민참여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주민참여가 절차적 조건이 아니라 환경평가 각 단계별로 주민들이 참여하고 평가 결과를 제공받는 순환형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주민 의견수렴을 위한 방법론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 본안 단계에서 평가서 공개는 여러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있어서 아직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환경영향평가 내용은 최대한 공개하는 게 제도 취지에 맞고 이런 방향으로 정책이 가야 하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 주민참여를 높이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평가 과정의 투명성 제고와 알권리 보장 등의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4월 30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영향평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환경영향평가 항목이나 범위 등 중요사항을 결정하기 전에 주민 등에게 평가준비서를 공개해 의견을 듣고 결정된 평가 항목이나 범위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환경영향평가 협의 절차 시작 단계에서부터 주민참여 기회를 제공해 주민 등의 의견 수용성을 높이고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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