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연구학교 - 인천 신현고
"교과 중심으로 학교 조직 재구성해야"
선택형교육과정 학년부·담임중심 관리와 상충 … 물리적 투자보다 체계 정비 우선
2008년 개교 당시부터 개방형 자율학교로 운영된 인천 신현고는 고교학점제가 정책화되기 전부터 교육과정에 학생 선택권을 부여했다. 이어 교과교실제와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연이어 지정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운영 기간이 종료돼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역할만 남아있다. 대다수 일반고와 비슷해진 상황에서도 학생 선택 교육과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신현고는 최근 교육과정 밖에서 운영해온 학생 자치 활동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흡수한 '학생 자치와 사회 참여' 인정 교과 신설을 이끌어냈다.
고교학점제에 맞춰 새롭게 발표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은 지역과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신현고의 운영 사례를 통해 고교학점제로 가는 길에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최근 인천시교육청 인정 교과서로 개발된 '학생 자치와 사회 참여'는 올해부터 신현고 정규 교육과정에 생활·교양 교과군 선택과목으로 개설될 예정이다. 그 출발에는 학생자치 문화를 구현하기 위한 신현고 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갖기가 쉽지 않다. 학생들이 성적 위주로 대학에 가 기득권자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맞지 않는다."
교사 초빙으로 신현고에 온 지 4년 차인 박대훈 사회과 담당 교사의 말이다. 그는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학생 자치라고 생각했다"며 "모든 선택은 과거의 경험에 비춰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사결정이 현실화되는 경험을 한 학생들이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비로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학생자치 위한 교사들의 노력 = 학교 현장에서 시도되는 우수한 프로그램들이 많지만 이를 주도한 교사가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되면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학생자치 문화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했다.
학교 운영 예산 등을 결정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회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학생자치 행사를 활성화했다. 특히 시민교육에 주력했다. 1, 2학기에 한 번씩 전일제로 운영한 '시민의 날' 기획과 운영 예산 수립을 학생들에게 맡겼다.
"학생마다 관심사가 다르니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더라. 1학기 때는 공감과 이해를 목표로 '시민'을 대주제로 한 인권, 민주, 환경 등 40여개의 오픈 강좌가 열렸다. 학생들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교사가 되어 체험 활동을 계획하고 수업을 짰다."
박 교사는 "2학기에는 실천 편으로 운영, 관련 주제에 대한 정책 제안을 시도했다"며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미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학생자치 행사들에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한다.
지역 주민을 심층취재해 기사를 작성하고 이들의 삶을 책 '마을과 사람들'로 발간해 북 콘서트를 개최했다. 지역사회의 인프라와 생태계를 참여형 지도(커뮤니티 매핑)로 제작해 배포했다. 나눔과 평등, 소외, 차별을 주제로 한 '마을 인문학 강좌'를 개최한 프로젝트 활동도 있었다. 모두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짧게는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지속된 작업들이다.
◆'학생 자치와 사회 참여' 인정 교과서로 나오기까지 = 학생 자치 활동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교육과정상 학생들의 선택이 꼭 교과여만 하는지 질문이 남았다.
교과서 밖 이야기를 다루는 게 어쩌면 학생들에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마침 지역과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인천시교육청 담당 장학사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인정 교과 개발에 나섰다. 박 교사는 "교과서나 매뉴얼이 없는 상태에서도 신현고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움직였는데 정식 교과서가 발간되면 학생들이 더 날아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한다.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유연하게 적용되고 사회 변화를 담아낼 수 있으려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질문 중심의 워크북 형태로 제작될 필요도 있었다. 교과서를 토대로 활동 중심 수업이 가능해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지역과 학교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를 위해 다양한 지역연계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하도록 선택과목을 개발, 운영하고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 자율권을 확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호진 교육과정 담당 교사는 "실무적으로 인정 교과서를 하나 개발하는 데 주고받아야 하는 공문이 10개가 넘는다"며 "중간 서류작업과 예산작업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의지가 있지 않는 한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인정 교과서를 어렵게 개발해도 과연 다른 학교에서 사용할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교육청의 행정적 지원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말했다. 지역 내 학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출판사 연결과 저작권 문제도 교사나 학교 차원에서 해결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일들이었다.
◆담임제 → 교과 중심 관리 체계로 재구성 필요 = 교과교실제와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를 운영하면서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과제들이 적지 않다고 느꼈다.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이동수업이 늘어난다. 이를 위해선 교과교실제 활성화와 함께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담임제 중심의 학교 조직 구성을 바꾸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성준 사회과 담당 교사의 얘기다.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이 아닌 활동 중심 수업을 5년째 시도해왔다. 이때 전용 교과 교실의 존재는 정말 중요했다. 교실 안에 증강현실(AR)을 활용해 문제를 숨겨놓고, 태블릿으로 비추면 문제가 팝업처럼 튀어나오는 보물찾기 방식의 수업을 시도했는데 이를 각 반에 세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김 교사는 "교과교실제의 성패도 근본적으로는 수업 변화와 맞물려야 하듯 학생이 수시로 이동해야 하는 선택형 교육과정은 학년부, 담임 중심 관리 체계와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며 "고교학점제를 위한 물리적 시설 투자는 지금도 충분하다고 본다. 이미 학교 내 다른 자원을 충분히 가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교과 중심의 관리 체계로 학교조직을 재구성하는 연구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실제 신현고가 일찌감치 선택형 교육과정을 시도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도 교육과정 중심의 부서 개편이었다. 이 같은 시도의 귀결점은 결국 좋은 수업을 위해서라는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양한 학교에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신현고의 교육과정은 이제 특별한 형태는 아니다.
선택과목 간 '칸막이'를 더 줄여나가고, 학기 집중 이수제를 어떻게 구현할지도 남은 과제다. 김 교사는 "신현고 역시 안고 있는 숙제지만 공립학교는 교사 이동이 잦다. 의지를 갖고 추진하던 교사가 학교를 옮기게 되면 동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그런 면에서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는 교육과정 설계 전문가 양성과정이 좀 더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두명의 전문가만 있어도 기틀을 잡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기반이 부족한 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제는 일반적인 학교 환경에서도 학생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가능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들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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