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 뒤통수 맞는 IPO시장

2022-02-17 11:22:59 게재

시장 활성화 명목하에 특혜 집중되는 구조 악용

공모가 산정 영향 주는 수요예측 신뢰성 높여야

자본동원계획서 제출 등 제도개선 목소리 커져

1경50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몰린 LG에너지솔루션 IPO(기업공개) 수요예측 이후 기관투자자의 허수 청약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는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관련 논란은 이번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실제 자금력이 약한 중소형 기관투자자들이 수요예측에 참여했다가 막판 청약 과정에서 발을 빼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등 불성실한 수요예측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공모주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명목하에 기관투자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구조를 지속해 왔고 기관은 이를 악용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말로 공모주 시장을 활성화 시키기 원한다면 공모가격 산정에 영향을 주는 수요예측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며 기관투자자들도 증거금을 내게 하거나 신청한도를 정하는 방법, 또는 자본동원계획서 제출 등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LG엔솔 공모주 청약│1월 18일 국내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IPO(기업공개)로 꼽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 현장 모습.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자본금 10억원 미만 기관에서 10조원 신청 =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LG엔솔의 대표 주관사였던 KB증권을 통해 공모주 청약을 신청한 기관(680곳) 중 회사 자본금이 10억원 미만인 곳은 120곳(17.64%)으로 나타났다. 회사 자본금이 10억원도 안되는 곳에서 10조원에 육박하는 공모주를 신청한 것이다.

IPO시장 호황기에 기관투자자들이 최고한도로 풀베팅하는 사례는 매번 나타났다. 그때마다 뻥튀기 청약 문제가 논란으로 대두됐지만 업계 관계자들과 금융당국은 IPO시장의 위축을 우려해 '쉬쉬'해 왔다. 시장 침체기를 우려해서다.

하지만 이런 관행으로 인해 수요예측의 가격 결정 기능이 훼손되면서 정당한 주문을 넣는 기관투자자는 물론 일반 투자자에게 왜곡된 신호를 주고 공모주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허수 주문 때문에 IPO기업의 밸류에이션 자체가 잘못 책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물량만 얻어가려는 기관 때문에 오히려 공모가격의 왜곡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한 손실은 개인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높아진 공모가로 상장 이후 주가는 급락하는 등의 악순환이 발생하면서 공모주 투자에 나선 일반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될 수 있다.

◆침체기엔 미청약·미납입 하기도 = 불과 몇년 전 시장 침체기에는 자금력이 약한 기관투자자들이 수요예측에 참여했다가 막판에 청약을 하지 않거나 청약금을 납입하지 않는 사례가 나타나 공모시장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당시 금융투자협회는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자에 최대 1년 동안의 수요예측 참여 제한 조치를 내리는 등의 제재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이때에도 미청약·미납입 부분에만 제재가 주어졌고 허수청약은 거론되지도 않았다. 참여제한 조치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에도 "수요예측 참여 제한은 일종의 업무정지인 만큼 가벼운 제재가 아니다"며 "지금보다 제재를 더 강화하는 것은 신중히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강력한 제재 필요 = 최근에는 증권가에서도 뻥튀기 청약, 불성실 수요예측에 제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투협과 금융당국은 현재 무분별한 허수주문을 개선하기 위해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을 검토하는 중이다. 일정 기준을 충족한 투자일임사만 수요 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투자일임업을 등록한 후 2년이 지나거나 투자일임 규모가 50억원 이상일 때만 회사의 고유 재산으로 수요 예측에 참여할 수 있다는 내용과 자본동원계획서를 제출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계획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업력이 짧은 신설사들의 경우 반발이 심하다며 완화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투협 관계자는 "시장 침체기에는 진입장벽이 있을 경우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일임사들이나 규모가 작은 운용사의 경우 불만이 많아 그대로 밀고 갈 건지 완화할 것인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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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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