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수요예측 제도 이대론 안된다

2022-02-22 11:33:12 게재
무려 1경5203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모은 LG에너지솔루션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대부분이 '허수 청약'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공모주 시장의 불공정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은 IPO 시장 전체의 55% 물량을 배정받으며 증거금 납부 의무도 면제받는다. 그런데 이들은 이 제도를 물량을 많이 받아 고유재산을 늘리는 데 악용하면서 공모주 시장은 과열로 이어졌고, 높은 공모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 몫이 됐다. 기관투자자들의 '뻥튀기 청약' 관행에 눈감았던 금융투자협회와 금융당국은 뒤늦게 부랴부랴 제도개선에 나섰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또 다른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수요예측 참여기관의 기준을 △투자일임업 등록 후 2년 경과 △투자일임 규모 50억원 이상으로 제시해 신생회사들의 시장진입만 차단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일방의 희생으로 진행하는 '면피성 행정'이라고 반발한다. 'IPO 시장의 허수청약'을 잠재울 근본적인 제도개선보다 기존 대형 기관투자자들에게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새로운 불공정이라는 비판이다. 현재 투자일임회사들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행정소송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IPO 시장은 직접금융시장과 모험자본을 육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기관투자자의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왔다. 2015년 투자일임회사와 부동산신탁회사의 수요예측 참여를 허용했고, 2019년부터는 소규모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들도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반면 공모주 시장이 활성화될 때마다 불거졌던 '허수 청약'에 대해서는 어떤 제재조치가 없다. 미납입·미청약에 대해서만 수요예측 참여제한, 미미한 벌과금 수준의 패널티가 주어졌을 뿐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기관투자자들의 참여가 급증하면서 경쟁률 심화, 오버베팅 현상이 일반화됐고 공모가 과열로 이어졌다. 적정가격을 찾기 위한 수요예측의 의미는 퇴색됐다. 기관투자자들이 공모주 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시장만 교란시킨다면 더 이상 특혜를 줄 이유가 없다. 업력과 규모로 참여를 제한하는 것도 문제다. 작은 회사가 문제를 일으키고 큰 회사는 내부감시체계가 잘 돼있단 말인가.

그것보다 참여통로는 열어두되 불성실 수요예측이 적발됐을 경우 엄벌에 처하는 조치가 더 낫지 않을까? 과징금 규모를 키우고 반복되는 불성실 수요예측의 경우 가중처벌 조항을 만들어 엄단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금융기관의 솜방망이 처벌은 이제 그만하고 강력한 제재조치, 제대로 된 개선안이 나오길 바란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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