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계기업 정상화를 위한 우선과제

2022-03-02 11:16:32 게재

코로나19 이후 침체됐던 세계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미국은 3월 말까지 '자산매입축소'를 매듭짓고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전쟁 등 변수가 생겼지만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소비자물가를 고려하면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는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

'코로나19 금융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이 2년 동안 코로나19 지원책으로 상환을 미뤄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과 이자의 총액은 139조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에서 '3월 말 지원 종료' 원칙을 제시해 금융지원으로 버티던 기업들이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소기업에 투자하려는 사모펀드 자체가 없어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분기별 재무제표 공시 기업 중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이 40.9%를 차지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미만이면 재무구조가 부실한 한계기업으로 분류된다. 특히 이번조사에서 중소기업 중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 비중은 50%로 넘어섰다. 2017년 처음 40%대를 넘어선 이후 2019년 47%, 2020년 50.9%로 계속 늘어났다.

한계기업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들이 언제까지 버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코로나19 사태로 금융권이 원금 만기연장과 이자 상환유예 조치가 단행되면서 기업의 금융부담은 줄었다. 여기에 정책금융 지원도 이어졌다. 중소기업 대출의 18%가 정책자금지원(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온랜딩, 금융중개지원 대출)과 관련이 있다. 과도한 중소기업 정책금융 규모가 한계기업의 퇴출을 지연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지난해 7월 구조조정 전문기관인 유암코(연합자산관리)는 전략적 투자자(SI)인 KHI인베스트먼트와 손잡고 중견기업인 STX조선해양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부터 인수했다. 유암코는 투자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조선업이 살아나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충격 등으로 조선업 투자기피 분위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구조조정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도 정상적인 투자자를 찾기가 어렵다. 회생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들은 물론이고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중소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에는 중소기업에 투자하려는 사모펀드 시장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금융기관들을 동원해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정책금융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책금융의 경우 책임소재를 따지고 감사원 감사를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 시중은행들도 마찬가지다. 담당자들이 인사고과 때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있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2018년 자본시장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민·관합동 펀드인 '기업구조혁신펀드'가 출범했다. 2020년 4월 말까지 3조2000억원 규모가 조성돼 70%가 집행됐고, 작년 말까지 1조1000억원이 추가 조성됐다. 시장에서는 기업구조혁신펀드가 구조조정 분야에서 일정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모험 투자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독립적인 구조조정 전담기구 설립 필요해

자본시장에서 전문조직을 갖추고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기관은 사실상 유암코가 유일하다. 유암코는 워크아웃에 들어간 중견기업, 잠재부실이 큰 중소기업에 대한 재무구조 개선지원(프리워크아웃), 중견·중소기업의 회생기업 재기지원, 대기업 구조조정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조조정에 참여했다.

유암코 직원들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구조조정 회사의 직원식당 밥이 어떻게 나오는지 또 화장실은 깨끗한지도 남모르게 확인해야 했다. 직장의 분위기와 회사 대표의 신뢰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유암코는 잇따라 구조조정을 성공시켰지만 역설적이게도 제2, 제3의 유암코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암코의 동력은 떨어지고 직원들까지 이탈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윗선의 개입과 성공보수가 없는 것이 핵심 문제다. 시장에서 공공부문이 출자한 독립적인 구조조정 전담기구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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