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뜨는 재활용 과제

태양광패널 재활용, 생산자는 물론 판매처 관리해야

2022-03-14 11:28:44 게재

제조업체 통한 유통은 2% 불과, 시장 특성 맞는 회수체계 필요 … 재사용, 제3국 수출 아닌 국내 중심으로

"태양광 폐패널에는 유리 플라스틱 알루미늄 구리 등 훌륭한 자원들이 많이 숨어있어요. 재활용이 용이한 상태로 폐패널이 회수만 되면 사업성에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태양광 폐패널을 싸고 있는 알루미늄 프레임이 떼어진 채로 들어오게 되면 장판 말리듯이 패널이 말립니다. 이런 상태의 패널을 재활용기계에 투입하면 안전사고 위험이 있죠."


8일 한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 업체 대표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08년부터 텔레비전 모니터 등 폐전기·전자제품 재활용 사업을 해왔다. 최근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국내 태양광 보급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덩달아 폐기되는 태양광 패널 수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국적으로 설치되어 온 태양광 패널 사용기한(20~25년)이 끝나가면서 폐기물 처리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태양광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폐패널 발생량(추정치)은 2023년 988톤, 2025년 1223톤, 2027년 2645톤, 2030년 6094톤, 2033년 2만8153톤 정도로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환경연구원(KEI) 역시 2023년부터 태양광 폐패널이 급격히 증가해 2030년에는 약 8만톤 이상 발생한다고 예측했다.

게다가 2023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 품목에 태양광 패널이 포함되면서 관련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EPR이란 폐기물의 일정량 이상을 재활용하도록 생산자(제조·수입자)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생산자는 수거, 운송 등의 재활용 체계를 구축해 정부가 부여하는 재활용 의무율에 해당하는 양의 폐패널을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EPR 품목이 된 제품들은 생산자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해 재활용업체에 지원금을 내려주는 형식으로 운영한다.

◆"태양광 패널 유통 구조 고려한 EPR설계해야" =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EPR제도 적용시 태양광 패널 유통 구조 특성에 맞도록 시스템을 잘 설계해야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제도가 안착될 수 있다"며 "태양광 패널의 경우 생산업체들이 직접 시장에 제품을 유통시키는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회수의무자가 되는 판매업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태양광 패널 생산업체는 한화큐셀 현대에너지솔루션 신성이엔지 등이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이들 기업이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경우는 약 2%밖에 되지 않는다. 태양광 패널은 전기공사를 통한 판매 및 설치가 필수이기 때문에 설치사업자인 판매사가 설치하는 비율이 높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청소기나 식기세척기 등을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생산하지만 롯데하이마트나 전자랜드 등에서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업계는 태양광패널 설치사업자 수가 약 2000여곳이 되는 걸로 추산 중이다. 제조업체보다 그 수가 월등히 많다.

장 교수는 "재활용을 독려하기 위한 EPR제도 취지에 맞춰 생산자들이 분담금을 내도록 하고 일정 부분을 회수의무자들에게 지원을 하는 식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대형 설치 업체들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데 연간 매출이 얼마 되지 않는 기업의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까운 자원이 그냥 버려지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EPR제도 취지상 분담금 등은 정부 예산이 아니라 기업들이 내는 돈"이라며 "우선 조합 등이 설립되어 관련 논의가 이뤄져야 하므로 2023년 제도 실시에 차질이 없도록 조합 인가 등 여러 절차를 올해 상반기 안에 끝내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구리 은 실리콘 등 버릴 재활용 자원이 거의 없어 = 제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태양광 패널은 백시트(Back sheet) 위에 태양광 모듈을 보호하는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 시트가 깔리고 그 위에 태양광전지 패널인 솔라셀(solar cell)이 장착되는 구조다. 솔라셀 위에 다시 EVA를 덮어 보호하고 강화유리와 알루미늄 프레임 등이 추가되는 식이다.

백시트는 2~5cm로 잘게 자른 뒤 시멘트, 제지사 조연제로 공급된다. 유리는 자동차용 유리 원료 등으로 활용된다. 실리콘 구리 은 등으로 구성된 셀은 분쇄해 제련소(은 구리 주석 제련)에 공급한다. 사실상 버릴게 거의 없는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태양광 폐패널은 제3국으로 재사용을 위해 수출되거나 수출되지 않은 패널은 알루미늄 등만 해체 분리되고 나머지는 그냥 버려지는 상황이었다.

장 교수는 "바젤협약에 따라 재사용을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국외가 아니라 국내에서 활용하도록 하는 게 적합하다"며 "게다가 희토류 등 국가전략자원들이 해외 유출되는 걸 막는 흐름이 커지는 만큼 최대한 자원을 아껴 쓰고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물론 태양광 폐패널을 재사용을 위해 수출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간 유해폐기물의 불법이동을 막는 바젤협약에 올해부터 전자폐기물도 들어갔다.

폐전기·전자기기 등을 재사용하기 위해 중고품으로 수출할 때 바젤협약상 승인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만일 재사용에 부적합한 전기·전자기기가 나가게 되면 바젤협약 적용을 받는다. 그만큼 국제적으로 관리가 강화되는 추세라는 얘기다.

이미 유럽연합(EU)은 '전기 및 전자장비 폐기물 처리지침'(WEEE)을 통해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을 의무화했다.

△3년 평균 시장 보급량의 65% 수거 △수거된 폐모듈의 80%를 재활용 △처리된 폐모듈에서 자원회수율 85%(에너지 회수 포함) 등의 목표를 내세웠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이를 기반으로 각자의 상황에 맞는 개별법을 만들어 이행 중이다.

미국 역시 각 주별로 태양광 패널 재활용 관련 법안을 수립하고 있다. 워싱턴주는 태양광 모듈 관리 및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회수된 태양광 폐패널의 재활용 비율은 85% 이상(중량 기준)이 돼야 한다.

또한 이러한 관리 계획에 참여하지 않는 업체는 태양광 패널을 워싱턴주에서 판매할 수 없다.

◆미니태양광 등 세밀한 고민 필요 = 최근 재생에너지 확대 움직임에 힘입어 태양광이 곳곳에 설치됨에 따라 재활용 회수체계 구축도 세밀해질 필요가 있다.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 업체 관계자는 "아파트 베란다 등에 설치된 미니 태양광 폐패널을 가져가면 안되냐는 연락을 받곤 하는데 발전소 등 다량으로 물량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거절한다"며 "아까운 자원인데 가정집에서 배출되는 폐패널도 한꺼번에 모아서 회수해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관련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며 "내년 제도 시행 전까지 구체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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