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탈달러 연대, 미국 금융패권 흔들까

2022-03-16 11:25:18 게재

포린어페어스 "양국 협력 못 막으면 미국 리더십 위태 … 중국과는 긴장 풀어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미국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가 포괄적인 대러제재로 응수하고 있다. 특히 달러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러시아를 국제금융 시스템에서 배제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 3주째에 들어선 현재 러시아는 휴전이나 철군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브릭스는 달러 기반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탈피할 수 있을까'(Can BRICS De-Dollarize the Global Financial System?, 케임브리지대 출판부)라는 공동저서를 낸 리우종위엔(미 외교협회 국제정치경제 연구원)과 미하엘라 파파(터프츠대 플레처스쿨 조교수)가 이달 7일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미국의 경제적 파워를 기반으로 한 대러제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시작된 지난달 4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사진 왼쪽)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환담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저자들은 '반달러의 축'(The Anti-Dollar Axis)이라는 기고에서 "러시아와 중국 등 미국의 경쟁국들은 달러패권을 허물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며 "일치된 조치가 없다면 미국은 탈달러 흐름을 막는 데 고전하는 한편 글로벌 입지가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탈달러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푸틴

저자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소 10년 전부터 달러패권 저항을 시작했다. 러시아 외무차관 세르게이 랴브코프는 2012년 달러의 국제무역 지배력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대러 경제제재를 확대했다. 러시아 은행과 에너지기업, 방산기업, 푸틴을 지지하는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 등을 대거 겨냥했다.

러시아정부는 미국이 '국제은행간통신협정'(SWIFT)에서 자국을 배제할 경우를 상정해 두개의 주요 금융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비자나 마스터카드에 대응하는 독립적인 지급결제 플랫폼, 또 다른 하나는 러시아판 SWIFT인 '금융메시지전송시스템'(SPFS)이었다.

SPFS는 2017년 전면 가동됐다. 그 어떤 통화로도 거래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2021년 12월 기준 9개국 38개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SPFS를 이용했다. 이달 초 기준으로는 벨라루스 은행들과 아르메니아 아르시드은행, 키르기스아시아은행 등 20여개국 399곳의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이를 이용중이다.

유럽의 금융중심지 독일과 스위스에서 영업하는 러시아 은행 자회사들도 SPFS를 이용하고 있다. SPFS를 통해 러시아 기업들과 개인들은 대러 제재를 피해 제한적이나마 글로벌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러시아는 현재 중국과 SPFS 공동이용을 놓고 협상중이다.

러시아중앙은행은 2018년부터 외환보유고 내 달러 비중을 크게 줄였다. 대신 금과 유로화, 위안화를 대거 사들였다. 러시아중앙은행은 또 2018년 3~5월 961억달러에 달하던 미국채를 149억달러로 대폭 줄였다. 2019년 초엔 1010억달러에 달하는 달러자산을 매각했다. 이는 외환보유고의 절반이 넘는 가치였다. 바이든정부가 2021년 새로운 대러제재를 부과하자 러시아는 "1860억달러 규모 국부펀드에 포함된 달러자산을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4번째 임기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 제재에 맞서 러시아의 경제주권을 보호하겠다"며 탈달러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해 10월 러시아정부는 주요 국제거래에서 달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최대 석유·가스 기업인 로스네프트는 2019년 모든 수출품목 결제통화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전환했다. 러시아 3대 석유생산기업인 가즈프롬네프트는 이미 2015년부터 대중국 원유수출 전부를 위안화로 거래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기본 무역결제 통화는 이미 달러가 아닌 유로화다. 러시아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 러시아의 대중국 수출 83% 이상이 유로화 결제였다. 지난달 러시아와 중국은 30년 만기 계약에 서명했다. 2~3년 내 완공되는 중러 관통 가스관을 통해 거래되는 가스를 유로화로 결제한다는 내용이었다.

러시아는 달러를 우회하기 위해 국가주도 암호화폐를 출시할 계획을 짜고 있다. 제재를 받는 러시아 기업들은 달러시스템을 거칠 필요가 없는 디지털루블화를 통해 상대방과 직접 거래할 수 있다. 2020년 디지털루블화에 대한 러시아중앙은행의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정부는 증권거래, 신용보증 기관 등 비은행 금융권을 대상으로 디지털루블화 네트워크에 참여시킬 방침이다.

강화되는 반달러 연대

달러 의존도를 줄인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양국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로 러시아는 2014년 미국의 제재로 인한 피해를 완화할 수 있었다. 또 양국의 무역과 투자가 크게 늘었다.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2016년 양국의 지급결제시스템을 연동하자고 요청했다. 위안화와 루블화로 직접 청산하는 새로운 결제시스템을 만들자는 것. 푸틴 대통령은 2018년 "러시아와 중국은 상호 지급결제에서 양국 통화의 사용을 늘리는 것에 대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2019년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로운 시대를 위한 포괄적인 전략 파트너십'으로 격상했다. 중국의 외교관계에서 최고 단계다. 그 이후 러시아중앙은행은 440억달러 규모의 위안화를 외환에 편입했다. 2019년 초 러시아 외환보유고 중 위안화 비중은 5%에서 15%로 껑충 뛰었다. 러시아의 위안화 보유액은 글로벌 평균치 대비 약 10배 많다. 그리고 전세계 중앙은행이 보유중인 위안화 총액의 약 25%를 갖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9년 양국 교역의 50%를 각각의 통화로 결제할 때까지 지속 협력한다는 협정에 서명했다.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지난해 중국에 "달러와 서구 결제시스템 의존도를 줄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정부는 자국 국부펀드가 위안화자산과 중국국채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정부는 러시아와의 파트너십이 위안화 기반 금융인프라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러시아의 연대 대상은 중국에 그치지 않는다. 이란과 러시아는 2019년부터 금융메시징 시스템을 연동해 SWIFT를 우회하고 있다. 러시아와 터키는 양자무역에서 루블화와 리라화를 사용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러시아는 또 '유라시아경제연합'(EEU) 회원국 은행들을 대상으로 SPFS를 도입했다. 아랍세계, 유럽 국가들과도 SPFS 활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브라질과 중국 인도 러시아 남아공으로 구성된 '브릭스'의 신개발은행(NDB)은 각국 통화로 투자금을 모아 개발사업 지원에 나섰다. 중국과 러시아 등 6개국이 참여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역시 2020년 정상회의에서 '상호 무역에서 각국 통화로 결제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또 각국 통화를 기반으로 한 개발은행과 개발펀드 설립을 논의했다.

미국, 탈달러에 맞서려면

리우종위엔과 미하엘라 파파 두 저자들은 "바이든정부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엄격한 제재는 단기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광범위한 탈달러 흐름을 가속할 리스크가 있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근본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바이든정부는 중국과의 긴장을 줄이면서 달러의 글로벌 패권을 지켜야 한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갈라칠 것을 주문했다. 그 방법으로 △보다 많은 중국 기업들이 미 증시에 상장될 수 있도록 하고 △시장의 규제를 강화하자는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고 △중국과 금융 디커플링에 이르게 될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등을 들었다. 저자들은 "그래야 중국이 달러 기반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지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러시아에 대해선 핵심 강점을 약화시킬 것을 주문했다. 저자들은 "러시아가 원유와 가스 수출에서 얻는 매출을 막아야 한다. 바이든정부는 단기적으로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에게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탈달러 연대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는 사실상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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