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읽는책 │인터뷰- 고혜련 독일 뷔르츠부르그대 한국학 교수

독일 사학자 "일본문화 뿌리는 한국"

2022-03-17 11:18:55 게재
우아한 루저의 나라/고혜련/정은문고/2만2000원

"1913년 예술사학자 예쎈이 한국에 들어와 '우아한 게으름뱅이의 원형'를 만나게 됩니다. 1913년이면 이미 일본 식민지가 됐을 시기죠. 조선인들이 곰방대를 물고 길거리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어요. 이들이 남루하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의해 손을 놓고 있는 형상을 보게 된 거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는 조선에서 일본에 저항을 하는 이들, 고문당하는 이들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됩니다."

"저는 예쎈이 말하고자 한 '게으름뱅이의 원형'의 독일어가 한국어로 번역할 때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래어를 포함한 '루저의 원형'으로 대체합니다. 여기서 '루저'는 실패자의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국민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책의 제목도 여기서 따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조선인들은 조선에서 쫓겨나 만주 벌판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웁니다. 이들은 끝까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죠. 저 역시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여건 때문에 역사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너무 고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국가를 지켰던 조상님들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16일 용인 한 카페에서 만난 '우아한 루저의 나라'의 작가 고혜련 교수는 대한제국의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국제교류재단이 파견한 독일 뷔르츠부르그대학 한국학과 교수로, 지난해 말 펴낸 '우아한 루저의 나라'는 최근 3쇄를 찍으며 대중 역사서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총서 '독일어 신문 한국관계기사집'을 펴내기 위해 연구하면서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 독일인의 한국 답사기 3편을 발굴, 설명과 함께 책으로 묶었다.

사진 이의종


■고종은 어떤 인물이었나.

일반적으로 고종은 무기력하고 나라가 망하는 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왕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연구를 하면서 고종에 의한 13년 간의 대한제국을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공무원이었던 크노헨하우어는 1899년 대한제국을 떠나기 전에 고종을 알현했고 고종에 대해 매우 지적이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답사기에서 크노헨하우어는 광산 채굴 이익 중 25%를 고종의 내탕금으로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고종의 내탕금은 헤이그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고 을미사변 때 전국적 의병 활동을 지원하는 등 조선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쓰였다.

헤이그 특사 이위종 열사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으로 떠나기 이전 영국 사우샘프턴 로이타통신과 인터뷰를 하는데 여기서 고종의 결연한 심경을 밝힌다. "나는 너희를 파견한 일 때문에 죽음을 당할 것이다. 너희들은 내 특명을 수행하고 500년 대한제국 독립권을 되찾아야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독일어 신문 한국관계기사집'을 통해 알려지기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헤이그 회의에서 특사들은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책에는 그들의 활약이 잘 나타나 있다.

1907년 6월 29일 이 준, 이상설, 이위종 특사 3인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았기 때문에 헤이그 평화회의 본회의장에 입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회의장 건물 앞에서 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해 일본의 부당한 조선침략 야욕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위종 열사는 평화회의 위원들이 머물렀던 프린세쓰그라흐트 6a번지 집에서 조선의 현재를 알리는 강연을 했다. 그곳의 1층은 언론인들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한 작업을 하는 곳으로 조선의 상황을 알리는 데 그 보다 적합한 곳은 없었다.

이위종 열사가 강연하는 자리에 있던 베르타 폰 주트너 여사는 지구 반바퀴를 돌아 조선의 독립권을 찾고자 하는 특사 3인의 용기를 치하했다. 이후 그는 '프리덴스 바르테' 저널을 통해 일본의 야만적인 탄압을 언급할 때마다 특사 3인의 노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1905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예술사학자 예쎈은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당시 유럽은 일본 문화 즉, '자포니즘'이 굉장히 유행을 할 때였다. 서양 상류 사회에서는 화려하게 채색을 한 도자기를 거실에 두고 기모노 1벌쯤은 갖고 있었다. 예쎈은 이런 문화를 기대하며 일본을 방문했는데 당시 일본은 이미 서양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화가 문명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다. 예쎈은 서양이 돼버린 일본을 보고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는 국가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안타까움과 우려가 섞인 말을 한다.

그런 그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을 때 일본의 고대 문화가 있던 나라 등 아스카 지역의 문화의 원류가 조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또 예쎈은 이왕직박물관에 가서 조선왕조의 서가를 본다. 고문서와 한글 식자, 조선의 백자 청자 등 도자기를 보면서 감동을 하고 미학적으로 훨씬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유럽에서 유행한 자포니즘의 역사적 원류는 과연 어디일까 스스로 의문을 던졌다.

■독일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독일 청년들은 한국의 어떤 점에 관심이 있나.

2019년부터 한국학을 공부하는 4학기 과정의 '코레아니쿰'을 시작했다. 올해 10월부터 이 과정은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6학기 과정으로 격상된다. 지금 4학기 과정을 진행 중인 1기 대학생들은 약 43명이다. 지난 2월 18일 이중 3명의 학생이 한국학 4학기 수료증을 받았다. 이 책은 학생들에게 한국 근대사를 가르치기 위해 책으로 정리되지 않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BTS 등 한류가 성과를 내면서 이들이 한류 콘텐츠에 관심을 두는 것 같지만 의외로 학생들은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관계의 쟁점에 대해 관심이 있다. 이유는 독일이 아픈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독일은 자신들이 씻을 수 없는 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역사 교육을 굉장히 철저히 한다. 그렇게 배운 학생들이 한일 관계를 보면 독일은 모든 것을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하는 데 비해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 중에는 고등학생 때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학생도 있다. 쉽지 않겠지만 이들과 함께 독일인의 눈으로 한일 관계를 다룬 연구집을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갖고 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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