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독일 톺아보기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독일의 '시대전환'

2022-03-17 11:32:26 게재
김택환 언론인 경기대 교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주 유럽 미군 육군대장을 지낸 벤 호저스(Ben Hodges) 등 유럽전문가들이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한 말이다.

2015년부터 두곳의 전쟁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 시진핑의 대만 침공이다. 유럽 땅에서 먼저 전쟁이 발발했다. 냉전 초기에도 두곳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제기됐다. 독일 베를린과 한반도였으나 불행히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

독일 숄츠 총리가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시대전환'(Zeitenwende)을 선언했다. 완전히 새 국면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1990년 독일통일과 소련·사회주의 붕괴에도 냉전은 종식되지 않았고 푸틴의 야욕은 불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독일과 유럽의 안이한 군사적 태도에 비판이 쏟아진다.

전후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냉전 당시 독일은 나토(NATO)에 의존했다.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초대 나토 사무총장이 말한 대로 소련의 팽창을 막고 독일 재무장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독일은 나토의 비호 하에 경제강국이 될 수 있었다. 자국의 군사력을 강화하지 않았고,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지정학적 구조를 만들었다. 스위스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ZZ) 등 유럽 언론들은 "독일의 군사적 무능력과 대 러시아 에너지 의존으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환경을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EU와 독일이 긴장하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가 독재자에 의해 위협받고, 고유가 등 시장경제 질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의문시되면 극우·극좌가 준동할 수 있다. 유럽은 히틀러 나치와 스탈린 악몽을 겪었다.

EU, 군사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

푸틴 침공 이후 세계적으로 네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 시민들의 반전평화 시위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모스크바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미국 워싱턴까지 전세계가 시민들의 반전물결로 뒤덮였다. 러시아에서만 1만2000명이 체포됐다.

둘째, 서방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넘어 터키 등 세계가 연합해 푸틴 제재에 나섰다. 경제를 옥죄는 국제결제시스템 스위프트(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했고 러시아 가스 수입을 중단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EU가 연합하는 국면이다. 푸틴은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셋째,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조롱받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도피하지 않고 최전선에 서서 푸틴과의 전쟁을 지휘하면서 영웅이 되었다. 윤영관 전 외교장관은 "젤렌스키는 나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독일 한국을 포함해 세계 52개국 2만명이 참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제 지구'에 몰려들 정도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이 '핵 위협'까지 거론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군사 참전에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미군과 러시아군의 전쟁은 곧 3차세계대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경제 지원에 나섰다.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및 장비를 위해 5억유로 추가지원을 결정했다. 미국 의회는 5억50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스포츠 및 문화예술인들도 나섰다. 러시아의 테니스 스타 샤라포바가 우크라이나 어린이 구호기금을 기부했다.

넷째, EU가 경제공동체에서 군사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덴마크 스웨덴 등이 군비증강에 나선 것이다. 중립국인 스위스 스웨덴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독일 군사강국화' 판도라상자 열려

푸틴의 침공으로 독일에서도 크게 세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러시아와 우호적이었던 사민당 출신 숄츠정부가 유럽에서 가장 먼저 반푸틴 전선에 나섰다. 초기 우크라이나에 헬멧 500개 지원으로 국제적인 조롱을 받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탱크 1000대, 미사일 500기를 지원했다. 베어복 외교장관은 "모든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약 12만명의 난민을 받았다.

또한 국가 GDP 예산 2%를 국방예산으로 편성하고, 의회에서 자국 군 증강에 135조원을 투입하는 예산을 통과시켰다. 우선 핵을 탑재할 수 있는 미국 록히드 마틴의 F35 전투기 35대를 구입하고 유로파이터 등 전투기 고도화와 국방 R&D에 투자하기로 했다. 전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유럽전문가들은 "푸틴이 독일 군사강국의 판도라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독일의 군비 증강은 양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의 군사력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외교안보 노선의 큰 변화 계기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인 2월 25일 독일 시민들의 반전시위 때문이었다. 당시 경찰은 수만명이 반푸틴 시위에 참여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만 수십만명이 참여했고 함부르크 뮌헨 등 전국 도시들에서 수백만명이 나섰다. 깜짝 놀란 숄츠정부는 곧 바로 방향을 수정해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에 나선 것이다.

또 숄츠 총리는 총리청에 요르그 쿠키스(Jorg Kukies) 사무총장을 팀장으로 외교부 경제부 재무부 내무부 국정원 검찰 관세청 중앙은행 등이 참여한 러시아 경제제재 특별 TF팀을 구성했다. 러시아 기업과 올리가르히들을 물샐틈없이 완벽하게 제재하기 위해서다. 미국 프랑스 등과도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정책의 변화다. 숄츠 총리는 미국 등이 반대한 러시아 가스 송유관인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을 중단했다. 탄소제로를 위해 추진했던 탈원전에 대한 검토가 시작됐다. 야당인 기민당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는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 러시아 에너지 의존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셋째, 진보적인 새 정치 세력의 변화다. 녹색당 출신 정치인들의 변화를 말한다. 당 대표를 지낸 연방정부 베어복 외교장관과 경제에너지부를 맡고 있는 로버트 하벡 장관 등은 독일과 녹색당의 '터부'인 군비증강에 찬성하고 나섰다. 하벡 장관은 "푸틴이 하는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했다.

또한 사민당 슈뢰더 전 총리나 기민당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추구한 경제이익 중심에서 가치 중심의 외교안보 정책으로의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이미 신호등 연정 출범, 즉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정 때부터 예고된 일이다. MZ세대로 녹색당 총리 후보로 나선 베어복 대표는 "메르켈식의 경제이익 추구보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 중심의 외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푸틴의 친구로 알려진 사민당 출신 슈뢰더 전 총리가 곤경에 빠졌다. 직원들이 반기를 들고 퇴사할 정도다. 독일 중도좌파 고급지 쥐트도이체 차이퉁(SZ)의 안드레안 크라에 편집국장은 "푸틴의 러시아와 좋은 이웃이 될 것이라는 환상이 종말을 맞았다"고 평가한다.

폴란드 안제이 두자 대통령, 미국 뉴욕타임스 등 세계 여론은 푸틴의 패배를 전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과 시민의 저항, 그리고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뭉치기 때문이다. UN에서 141개국이 '즉각 철수'에 표를 던졌다. 러시아·북한 등 5개국만 반대했고, 중국 등은 기권했다.

국민통합 중요성 일깨운 사태

EU와 나토에 가입해 자국 안전과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려는 우크라이나와 이를 막으려는 푸틴의 침공은 '세계관'(Weltanschauung)과 국제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부국강병과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와 동맹의 중요성을 새삼 상기시킨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민통합이 더욱 중요해졌다.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