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시장경제

"탄소중립,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생각 버려야"

2022-03-28 11:20:38 게재

전력시장 개편 이번 정부에선 반드시 해야 … 전기요금 자율화가 민영화라는 건 오해, 건축물 탄소감축 시급

인터뷰 - 이창훈 한국환경연구원장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정책화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수용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탄소중립은 이제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를 어떻게 잘 만들어 가야 할지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죠."

지난 17일 이창훈(55) 한국환경연구원장을 세종시에 있는 국책연구단지에서 만났다. 이 원장은 경제학자이자 온실가스 감축 관련 전문가로 2050 탄소중립 목표 수립 시 브레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어떤 정부이든 관계없이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 2050 탄소중립 달성은 이뤄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창훈 한국환경연구원장│△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독일 브레멘대학교 석·박사 △한국환경연구원 부원장(2016~2017), 정책연구본부장(2014~2016) △주요 연구 '화석연료 대체에너지원의 환경경제성 평가 I, II'(2013~2014, 옛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전력거래 상한제약 입찰 도입방안 연구'(2018, 환경부), '지속가능 발전과 에너지 산업전환' (2019,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한국형 그린뉴딜 전략개발 연구'(2020,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후변화영향평가 관련 추진체계 연구' (2021, 환경부) △수상 대통령 표창, 환경보전유공(2018),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연구기관 우수연구상(2016) 사진 이의종

■탈원전 vs 탈탈원전. 최근 에너지 전환 관련 논란이 커지고 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 아닌가.

국민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결론이 나든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원전을 한다 해도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탈원전 논란보다 더 시급한 사항은 전력시장 개편이다. 문재인정부에서도 풀지 못한 이 해묵은 숙제를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한다.

■2050 탄소중립 목표에는 큰 이견이 없지만 방법론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의 의견이 같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관점은 다양하고 각각 존중받아야 한다. 정책가나 연구자가 균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모든 연구에는 가치지향점이 있다. 자신이 배워온 이론 등에 따라 어느 정도는 치우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견해 등에 치우쳐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만 올바르고, 나만 균형 감각이 있다'고 얘기하는 순간 논의 구조가 깨진다.

■전력시장 개편 문제는 무엇인가.

전력시장은 크게 도매와 소매로 나눈다. 소매 시장의 경우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다. 최근 제3자 PPA(1MW를 초과하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가진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한전을 통해 전기소비자에게 팔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지만 한계가 분명 있다.

문제는 한전이 독점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기 요금 체계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다. 한전 적자 규모가 상당한데, 아주 간략하게 얘기해서 한전 예상 적자 규모인 20조원은 그만큼 전기 요금을 깎아줬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구조는 전기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현 전기 요금 체제는 이를 역행하는 구조다. 전기 요금은 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져야 한다.

도매 시장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전력거래소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중심으로 시장 개편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상당 부분 늦었다. 전력은 수요와 공급이 실시간으로 맞아야 한다. 너무 과도하게 전력생산이 되었을 때 이를 줄이는 일들이 시스템 상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전력 부문은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공공재인데, 이를 민영화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기요금 자율화를 민영화와 동일시하는 건 오해다. 한전을 민영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전력 시장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자는, 개방 이슈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영화와 자율화는 다른 얘기다.

경제학적으로 전기는 공공성이 큰 재화인 건 맞지만 엄격히 얘기하면 공공재는 아니다. 공공재는 비경합성(내가 어떤 특정 공공재를 현재 쓰더라도 다른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의 문제가 있고 효율성과는 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전기는 그렇지 않다.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쓰는 현 전력량을 모두 커버하기는 어렵다. 전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일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나서서 전기요금을 묶어 두는 방식을 고수하면 전기 이용 효율화를 달성하기 어렵다. 이는 곧 2050 탄소중립 달성도 힘겨울 수 있다는 얘기다.

■탄소중립 목표만 있고 달성을 위한 세부 방안들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책임이나 비용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비판도 있다.

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국내 온실가스배출량 70%가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TS: 할당 배출권을 매매, 탄소감축 유도)에서 커버가 된다. 그 말은 비용이나 책임 주체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는 뜻도 된다. 또한 온실가스 자체를 줄이려고 하면 ETS 할당량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된다.

그나마 책임이나 비용 주체가 불분명한 부분은 건축물일 수는 있다. 사실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건축물인 '제로에너지 빌딩'(net Zero Energy Building) 확대가 시급하다.

신축 건물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2025년부터 공공 건축물의 제로에너지건축(ZEB) 등급이 5등급에서 4등급으로 오르고, 민간 건물은 1000㎡ 이상부터 5등급 이상을 획득하도록 의무화된다.

문제는 구축 건물이다. 그린리모델링이 필요한데, 공공기관은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민간 건물은 그렇지 않다. 사유 재산인 만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에 한계가 있고 비용 지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어느 정도까지 지원할 수 있을지 등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지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한국환경연구원에서는 어떠한 역할을 할 계획인가.

한국환경연구원은 공공성을 지닌 연구기관이다.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역할을 하려 한다. 우선 온실가스 등 환경 관련 데이터 공유 폭을 확대하고 모델링 연구를 강화하려 한다. 한 예로 온실가스가 중요하다고 얘기해도 정작 통일된 온실가스 발전 부분 배출계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은 당장은 아니라도 10년 뒤에는 글로벌 연구기관이 되어야 한다. 한국 문제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전 지구적인 문제에 기여를 해야 하고 기후 정책 어젠다 세팅을 선도하는 해외 연구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제일 중요하다. 앞서 얘기한 데이터 공개도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행여 틀리다고 지적을 받거나 공개한 원 데이터를 다른 기관이나 전문가가 훨씬 더 훌륭하게 가공해 발전시킬까 봐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는다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걱정할 시간에 실력을 키워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직원들이 한국환경연구원의 구성원인 것을 자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국민과 정부, 다른 전문가 이해관계자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연구 집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 실력을 더 키울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생각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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