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문화 과제│인터뷰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예술인 권리보장법, 차기정부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2022-04-14 11:05:27 게재

"메타버스·NFT 관련 디지털 저작권법 제정 시급" … "콘텐츠산업은 문체부에 있어야 예술·관광 분야와 동반상승"

■코로나19 상황에서 문화예술계 상황은 어떠한가.

분야별로 편차가 있다. 오프라인을 중시하는 공연산업은 많은 타격을 입었다. 다만 만화 웹툰 게임 등 콘텐츠산업은 생각보다 상황이 좋다. 영화산업의 경우 제작편수가 줄고 영화관 관람수익이 크게 줄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OTT 시장의 활성화로 그나마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정부는 긴급구제책을 써서 문화 관련 기업들을 어느 정도 지원하고 예술인들을 긴급 지원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정부의 노력에 비해 불만이 많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경기아트센터 이사 △예술세상마을프로젝트 총감독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지속가능사회 분과 위원 사진 이의종

이는 2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상실감이다. 문화예술인들이 꼭 돈을 벌기 위해서만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지 못해도 관객을 만나면서 만족감을 얻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무력감이 있다.

또 한국 사회에서 아직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낮다. 팬데믹에도 극장은 지켜야 한다, 예술은 계속돼야 한다는 인식이 별로 없었다.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 유지하는데도 공연장은 방역 혐오 공간인 것처럼 불안감이 조성됐다. 방역이 중요하지만 좀 더 문화예술 공간들을 열었다면 어땠을까. 창의적으로 사는 삶,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쉽다.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비대면으로 문화예술을 즐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와 관련해 문화예술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문화예술의 디지털화, 메타버스 플랫폼 활용은 이제 피할 수 없다. 미술계의 경우 디지털 저작권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으로,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다. NFT의 경우, 미술 작품 원본을 없앤 후 디지털로만 원본을 유지해서 판매를 한다. 원본이 없으면 남는 건 디지털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NFT를 구매한다. 특정 그림을 보려면 예전에는 그림이 있는 곳에 가야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이 누구나 다 디지털 그림에 접근할 수 있다.

다만 만나서 공연을 해야 하는 공연예술계는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아직 방향이 정립되지 않고 있다. 공연의 경우 온라인으로 공연을 하면 그건 공연이 아닌 별개의 장르라고 본다. 온라인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이 가운데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케이팝 등 주류 공연이다. 케이팝의 경우, 전세계에 팬들이 많다. 공연은 시간의 예술이며 그 시간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온라인 라이브가 의미 있다.

공연예술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기술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공연예술이 영상으로도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중계를 해야 한다. 1960년대 축구 경기를 TV로 중계한다고 했을 때 모두 반대했다. 그러면 축구장에 누가 오겠느냐는 논리였다.

그런데 지금 영국 프리미어리그 중계 수익은 한해 6조~7조원에 이른다. 이를 공연에 적용해 공연에 특화한 중계를 할 수 있다. 드론을 띄우고 와이어캠을 써서 중계에 필요한 영상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공연장에 수백대의 카메라들을 내장할 수 있다. 내가 BTS 지민의 팬이라면 수백대의 카메라들 중 지민을 찍는 카메라를 선택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공연은 1개지만 온라인으로 수백개, 수천개의 버전이 생길 수 있다. 공연장에 오는 관객 5만명에게 10만원씩 받으면 50억원이지만 200만명한테 3만원씩만 받아도 600억원이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K-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유는 무엇이며 정부는 어떤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할까.

한국은 문화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는 최적의 나라다. 첫째, 엘리트 인재들이 콘텐츠산업에 들어오고 있다. 둘째, 노동집약적이다. 제작자 유통업자 아티스트 모두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한다. 노동집약적이면서도 굉장히 창의적이다. 셋째, 한국이 갖고 있는 독특한 민주화의 역사가 있다. 파란만장한 스토리텔링이 이어질 수 있다. 넷째, 정부가 직·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보다 더 콘텐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SM 등 대형 기획사들은 대부분 문어발식으로 외식 패션 등에 진출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형 OTT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형 OTT가 없으면 우리는 넷플릭스의 외주 제작사에 그치고 만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단 회사가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동남아로 넘어가 글로벌 기업이 돼야 한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정부는 종 다양성에 기반을 둔 콘텐츠 생태계 구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플랫폼 방송사 출판사의 권한이 크고 제작사 창작자의 권리는 보장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창작자 제작자 유통사 모두 평등한 이익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메타버스 NFT까지 생각하면 디지털 저작권 관련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법 안에 디지털 관련 조항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디지털 저작권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 또 1명의 아티스트를 넘어 그 아티스트를 위해 일하는 많은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단락됐지만 차기 정부에서 디지털미디어부를 신설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국을 통합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K-콘텐츠가 경쟁력을 잃는 길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콘텐츠 없는 플랫폼은 의미가 없다.

홍콩을 떠올려보면 된다. 기본적으로 중화권의 경우 홍콩이 콘텐츠를, 대만이 배급을, 제작은 싱가포르가 맡았다. 이렇게 완성된 콘텐츠를 중국 시장과 아시아 전체가 소비했다. 그런데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영화를 만들었던 영화감독과 스타들이 상당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면서 홍콩시장이 사라졌다.

정통부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이다. 문체부에 콘텐츠국이 있으면 문화예술, 관광과 만나면서 동반상승 효과가 난다. 콘텐츠가 예술의 창의성과 완전히 분리돼 기술로 가면 기술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오히려 플랫폼·디지털 서비스를 문체부로 가져와 콘텐츠와 함께 강화시켜야 한다.

■표현의 자유, 직업적 권리 보장, 성폭력 등을 다루는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지난해 제정돼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다. 또 예술인 복지 관련해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가.

예술인 권리보장법 시행령 초안이 완성됐고 관련 협의체와 논의 중이다. 여성예술계, 노동예술계, 일반 문화예술단체들이 협의체에서 함께 논의하고 있다. 대상이 되는 예술인들이 많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단체들과 소통을 긴밀히 할 필요가 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시행령을 지키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문화예술인의 권리와 예술인의 노동권을 지키고 성희롱·성폭력, 검열이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중요한 문화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 박근혜정부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예술인 복지의 경우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특혜라기보다는 예술인의 기본권으로 접근해야 한다. 노동에 대한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가 대표적 기본권이며 창작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아 창작 활동을 하기 어려운 것도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창작 환경에는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권한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예술인 복지를 기본권으로 본다면 예술가들에게 4대 보험이 적용돼야 한다. 또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주거 환경이다. 예술인들이 제대로 창작 활동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월세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등 생활지원이 필요하다. 이 외에 무용수 음악인들이 예술교육 치유교육 등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예술인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도 기본권과 관련된다.

■문화예술계 불공정 계약 관행은 여전히 문제다.

국가와 하는 계약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게 돼 있다. 다만, 국가와 A가 계약을 하고 A가 다시 B와 계약을 하는, 2차, 3차 용역 계약과 관련해 강제하는 법은 없다. 이 부분까지 포괄해 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100명 가까이 참여하는 대형 공연의 경우, 계약을 안하고 나중에 입금만 받는 경우도 아직 많다. 소극장 공연의 경우엔 단역으로 출연하면 약 5만원 받는데 20회 출연하면 100만원이라고 할 때 "나중에 한번에 줄게" 하다가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선후배나 스승-제자 사이인 경우 후배나 학생들이 계약서를 요구하기 힘들다. 계약서는 사후적으로 계약 당사자들을 보호하는 것이고 위반을 했을 경우 법적 근거가 되기 때문에 계약을 반드시 해야 한다. 또 계약서에서 갑과 을 중 을이 계약을 위반했을 경우 받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너무 큰 것도 문제다.

문학과 관련해서는 창작자의 권리가 너무 보장이 안 된다. 2차적 저작물로 성공했지만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 대표적 경우다. 당시에는 창작자들이 신인이기 때문에 계약을 받아들이게 된다.

■차기 정부에서 문화 분야의 위상이 더 강화돼야 할 텐데.

문화는 국가의 국격이고 국민국가의 힘이다. 또 미래의 경제이며 삶 그 자체다. 문화의 위상과 가치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 정책이 좁은 의미의 문화 정책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사회 정책과 함께해야 한다. 여기서 사회 정책은 환경 노동 교육 여성 등을 포괄한다.

사회 정책과 함께하는 문화 정책을 통해 국민들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콘텐츠의 경쟁력을 통해 경제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팬덤들은 한국을 정치로 아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로 먼저 알게 된다. 문화에 집중해 지원하고 관련 예산과 제도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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