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동조하는 나라가 왜 많은가

2022-04-18 11:19:32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식량의존도 크고 서구의 위선과 이기심에 질려"

이달 11일(현지시각)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화상대화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우려한다며 공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 원인을 러시아의 침공으로 돌렸지만 모디 총리는 "부차에서 벌어진 참상에 대해 독립적 조사가 필요하다"며 러시아 비난을 삼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이런 중립적 태도는 인도뿐 아니라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의 많은 나라들에서 볼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의 오래된 동맹국들도 러시아를 제재하거나 비판하자는 서구의 간청을 묵살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이 가장 과감하다. 지난 3월 2일 UN에서 러시아 침공을 비난하는 결의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된 직후 파키스탄은 러시아와의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데 주저하는 이유는 경제적 동기나 이념, 전략적 야심 또는 단순한 두려움 등 다양하다"고 전했다. 터키의 경우 천연가스의 45%를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인도의 경우 국제분쟁에 중립을 지키는 전통을 갖고 있다. 중국을 봉쇄하려는 전략적 우선과제가 있다. 게다가 러시아 국방물자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는 첫번째 UN 결의안에 193개국 중 141개국이 지지했다. 두번째 결의안은 140개국의 찬성표를 받았다. 하지만 러시아를 UN인권위원회에서 퇴출시키는 내용의 투표에선 찬성 93개국 반대 24개국 기권 58개국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대러 제재가 식량과 에너지 가격 급등을 불렀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유럽의 한 외교관은 이코노미스트에 "두마리 코끼리가 싸우는 상황에서 다치는 건 작은 동물들이라는 인식이 있다. 전쟁을 일으킨 침략국이 아니라 서구의 제재 자체가 문제라는 식의 공격도 있다"고 말했다.

서구가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집착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 글로벌 사안이 아니라는 점도 반대 이유다. 지구상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인권침해는 무시하거나 낮잡아보고 있다는 인식의 발로다.

또 지난 수년 동안 부유한 국가들은 기후변화 대처에 따른 투자를 주저했다. 코로나 백신의 배분은 느리고 불균형했다. 이는 냉전 기간 중립을 선언했던 국가들의 비동맹운동과 비슷한 흐름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리처드 고완은 "지난 2년여 동안 UN을 지켜보면서 근원적인 흐름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저개발국)에 속하는 수많은 나라들이 점차 서구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연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서구의 우려는 특히 중동 전역과 터키에서 '자기 잇속만 차리는 위선'으로 간주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나 201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 TO)가 주도한 리비아 폭격에 빗대서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따뜻하게 반기는 모습도 과거 시리아 난민에 대한 유럽의 냉대와 비교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연대

러시아와 유대감이 약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도 서구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 득보다 실이 크다고 여긴다. 유가를 부양하는 데 공동노력하는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려봤자 이득이 없다는 것. 또 사우디와 UAE는 예멘이나 이란이 지원하는 군벌들이 자신의 영토에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하는데도 미국이나 서구가 방치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아랍세계 한 외교관은 "당신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우리도 당신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국가 중 UN인권위의 러시아 배제에 찬성한 국가는 이스라엘과 리비아뿐이다.

중동에서 RT네트워크나 스푸트니크와 같은 러시아 국영매체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 또 러시아 외교부는 서구 국가들과 달리 아랍어에 능통한 핵심 외교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요르단 주재 서구의 한 대사는 "TV를 켤 때마다 전쟁의 당위성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들이 보도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 기자들을 파견한 주요 아랍 TV채널들은 전쟁의 참상을 전하지만, 보도의 상당량이 친러시아 또는 반서방 논리를 담고 있다. 지난달 UAE의 '스카이뉴스 아라비아'는 푸틴을 악마화하기 위해 서구 국가들이 얼마나 많이 말을 바꾸는지에 대한 비판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쿠바와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친한 국가들을 제외하면, 중남미 국가 대부분은 러시아 침공을 비난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UN 결의안을 지지했다. 하지만 브라질과 멕시코를 포함한 여러 국가가 러시아를 인권위원회에서 배제하는 안에는 기권했다. 또 대러제재에 동참하려는 국가도 적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집결하던 2월 초 아르헨티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 이를 멈춰야 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러시아는 그 길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3월 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멕시코를 언급하면서 "이 나라들은 엉클샘(미국)이 무언가를 지시하면 '예 보안관님' 하고 따르는 국가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달 5일 러시아는 아르헨티나를 직항로를 다시 여는 52개 친선국가 목록에 올렸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남성적 면모를 존경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2월 러시아 방문에서 "양국의 관계는 완벽한 결혼 그 이상"이라고 표현했다. 브라질이 수입하는 비료의 1/5 이상이 러시아산이다. 브라질정부는 우크라이나전쟁에 중립을 지킨다는 입장이다. 브라질 정치권이나 국민들도 중립 찬성도가 높다. 멕시코 역시 타국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러시아 동정 강한 아프리카

러시아에 대한 동정이 가장 많은 곳은 아프리카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25개국이 첫번째 UN결의안에 기권하거나 투표에 불참했다. 식민주의의 비통한 역사를 갖고 있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은 서구가 대의라며 내세우는 것의 이면에 다른 속셈이 있다고 본다. 러시아와 관계가 친밀해 서구의 요청을 거부하는 나라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남아공은 러시아를 비난하는 모든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남아프리카 지역의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를 소련의 계승자로 본다. 소련은 식민 정권이나 차별주의적 정권과 맞서 싸우는 게릴라 부대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같은 과거의 향수가 러시아에 대한 남아공의 태도 변화를 설명해준다. 2009~2018년 재임한 남아공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러시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리비아 폭격으로 남아공과 서구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도자들은 2015년 소련의 붕괴를 애석해 하는 외교백서를 발간했다. 백서에 따르면 소련은 제국주의(미국과 서방세계)와 그 제국주의에 맞서는 세력 간의 균형관계를 완전히 바꿨다.

주마 대통령이 퇴임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ANC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책임은 동진 확장을 지속하는 NATO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서구의 대러 제재를 비판했다. 남아공의 친러 행보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러시아는 남아공이 사과와 배를 수출하는 2대 시장이자 감귤류의 4대 시장이다. 러시아 국적 선박이 유럽과 미국의 항구들에서 외면 당하지만, 러시아 화물선사 바실리 골로브닌은 이달 4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정박할 수 있었다. 남아공은 러시아 국영에너지기업 가스프롬에서 연간 20억달러에 달하는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무기를 판매하거나 용병을 공급하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첫번째 UN결의안에 기권한 17개 아프리카 국가들 중 5개 국가에서 러시아 용병이 활약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마다가스카르, 말리, 모잠비크, 수단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알제리와 앙골라, 수단, 우간다 등 러시아산 무기 구매국들이 결의안에 기권하거나 투표에 불참했다. 에리트레아는 첫번째와 두번째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5개국 중 하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서 서방세계는 방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특히 인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제 S-400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2018년 중국을, 2020년 터키를 제재했다. 인도 역시 동일 시스템을 구매했지만 바이든행정부는 인도에 대한 제재 결정을 미루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달 11일 미국과 인도의 각료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도 제재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도는 러시아 비난을 삼가는 것을 넘어 러시아산 원유 구매량을 늘리고 있다.

바이든정부 전략은 인도를 압박하기보다 살살 구슬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실익은 없다. 인도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은 '인도는 왜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지 않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같은 조언과 제안에 감사하다"고 냉소적으로 말한 뒤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이익인지 적절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이익을 어떻게 보호하고 발전시킬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못박았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