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성범죄 규제 입법 필요"
디지털 표현물 보호 대상서 제외
"수사기관 포렌식 역량 강화 필요"
확장가상세계인 메타버스 이용자가 늘면서 관련 범죄도 증가해 아바타(가상 분신)에 가해지는 성범죄 행위를 규제할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경기북부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8일 사이버범죄수사대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초중고 청소년 11명에게 신체 부위를 촬영해 달라고 요구한 뒤 성착취물을 제작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련 법률 위반)로 30대 남성 A씨를 구속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제페토 상의 가상 캐릭터를 아이돌처럼 화려하게 꾸미고 여기에 관심을 보인 여자 아동·청소년에게 아이템과 기프티콘 등을 선물하며 호의를 보인 뒤 피해자들에게 신체 사진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5월에는 제페토에서 한 10대 학생이 남성 아바타에게 성희롱당했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남성 아바타는 여성 아바타에게 "가슴 만질래"라고 하거나 성행위를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현행법은 다양한 성범죄 중에서 상대방에 대한 스토킹·성희롱으로 직접적인 불안과 성적 수치심을 주는 경우 처벌하게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스토킹범죄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범죄)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불법정보 유통 금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등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따라서 메타버스 내에 성범죄는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죄에 해당해 처벌할 수 있지만 가상의 아바타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 등에 대해서는 법 적용이 어려운 현실이다.
정준화 국회 입법조사관은 지난달 29일 '4차 산업혁명 시대, 이상의 디지털 전환이 초래한 사회갈등의 현황과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현재 대부분 법률은 사람을 직접 만지고 추행하는 것만 제재하고 있어 아바타는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며 "메타버스 주 이용자인 10대에 대한 아동성범죄(아바타 스토킹·몰카·성희롱 등)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정 조사관에 이에 "아바타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성범죄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입법 조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메타버스 이용 과반 이상 청소년 =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제트는 지난달 4일 제페토의 누적 가입자가 3억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는 월간 사용자가 1억9000만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서치 기업 닐슨코리아는 지난해 1월 제페토 이용자가 7~12세 50.4% 13~18세 20.6%를 차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로블록스는 7~12세 49.4% 13~18세 12.9%로 이들 이용자 과반 이상이 청소년들이었다. 성별로는 제페토의 77% 로블록스의 55%가 여성이었다. 특히 콘텐츠 제작 플랫폼 '제페토 스튜디오'는 13~18세 비중이 80%가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는 '치안전망 2022'에서 "메타버스 내에서 현재 주 이용층인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메타버스 상의 관련 주체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적인 행위의 기준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법제도 마련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두원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햅틱 조끼를 착용한 여성이 다른 플레이어로부터 성추행당했는데 접촉이 진동으로 이어져 현실 세계의 성추행과 같은 피해를 봤다는 가상현실(VR) 게임 사례가 있다"며 "메타버스 특성상 사건 발생 시점에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흔적이 남지 않아 범죄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정부와 산업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모여 가능한 범죄들과 사후 조사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때가 됐다"며 "수사기관도 메타버스 포렌식 역량 강화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