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심각한 식량위기로 치닫는다

2022-05-23 10:34:34 게재

만 석달 된 우크라이나 사태 … "러시아 항구봉쇄 풀고, 우크라이나는 지뢰 제거해야"

올해 2월 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가 정확히 석달 지났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삶마저 파괴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 에너지 충격 등으로 가뜩이나 약화된 글로벌 식량체계를 타격하면서다. 우크라이나의 곡물과 기름, 종자 수출은 대부분 끊겼다. 러시아의 곡물 수출도 위협받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는 전세계가 필요로 하는 칼로리의 12%를 공급한다. 밀 가격은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53% 상승했다. 지난 2월 강력한 돌풍과 우박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인도는 최근 기록적인 혹서기를 겪고 있다. 때문에 밀 수출을 보류한다고 선언했다.

곡물가격이 치솟다가 다소 완화됐지만 현재 다시 상승중이다. 이달 16일(현지시각) 인도가 밀 수출 규제를 발표한 날 글로벌 벤치마크인 시카고상품거래소의 밀 가격은 6% 올랐다. 우크라이나 사태 시작 이후 39% 상승했다.


미국 농무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기상악화로 전세계 밀 생산량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설상가상으로 밀은 수요 공급이 원활한 글로벌 교역품과는 거리가 멀다. 수입국들은 수출국들과 오래된 양자관계를 맺고 있다. 때문에 공급국을 신속히 변경하는 게 어렵다. UN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약 50개국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또는 두 나라 모두에 식량을 의존한다. 이들 국가의 밀 수입 중 30% 이상이 두 나라에서 온다. 그중 26개국은 의존도가 50%를 넘는다.

인도네시아처럼 흑해지방의 밀을 많이 수입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밀 대신 쌀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주요 수입국들 대부분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전망이다. 식습관의 급격한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페르시아만과 북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의 경우 1인당 빵 소비량은 '글루텐(밀 등의 곡류에 존재하는 불용성 단백질) 중독 국가'라는 미국인들의 1인당 빵 소비량보다 최소 2배 높다.

'생계비 위기'라는 두려움이 널리 퍼지고 있다.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18일(현지시각) "향후 수개월 내 글로벌 식량부족의 유령이 출몰할 것이며 이 위기가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주식의 비용이 크게 오르면서 충분히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가 4억4000만명에서 16억명으로 껑충 뛰었다. 약 2억5000만명의 사람들이 기근 위기에 놓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만약 우크라이나 사태가 계속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제한된다면, 수억명의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가난에 빠질 수 있다"며 "이는 각국 내 정정 불안 확산과 아이들의 성장발달 저해, 아사자의 증가 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세계 인구의 약 4/5가 곡물 순수입 국가에 산다. 전세계 칼로리의 20% 이상, 전세계 곡물의 18% 이상이 논밭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최소 1곳 이상 국경을 넘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전세계 1위(3900만톤), 5위(1700만톤) 밀수출국이다. 전세계 밀 시장의 28%를 담당한다. 옥수수와 보리 등 가축을 먹이는 데 쓰이는 식량도 재배한다. 보리는 29%, 옥수수는 15%, 해바라기기름의 75%를 공급한다. 해바라기기름 생산에서 우크라이나가 1위, 러시아가 2위다. 식물성기름 시장의 11.5%를 차지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레바논과 튀니지가 수입하는 곡물의 절반을 공급한다. 리비아와 이집트의 경우 두 나라 비중이 2/3에 달한다. 우크라이나는 4억명의 사람들을 먹일 칼로리의 식량을 수출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이같은 공급망이 교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곳곳의 저수지에 지뢰를 설치했다.

러시아는 식량수출 집산지인 오데사항을 봉쇄중이다. 우크라이나 곡물의 98%가 오데사항에서 수출된다. 우크라이나 농산부는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한달에 약 500만톤의 곡물을 수출했다. 하지만 지난달 110만톤을 수출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에도 식량위기 경고음이 울렸다. UN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해 말 "2022년은 곡물시장에 충격적인 한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전세계 최대 밀 생산국가인 중국은 지난해 폭우로 밀 파종을 연기하면서 "올해 밀 작황이 역대 최악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세계 2위 밀 생산국가인 인도가 극심한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곡창지대들의 작황도 강수량이 줄어들면서 악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밀산출 지대와 프랑스의 보스지역이 대표적이다.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 국가들은 40년 만의 최악 가뭄으로 황폐화되고 있다.

전세계 1억1500만명 인구에 식량을 제공하는 WFP는 지난해 50% 밀을 우크라이나에서 공급받았다. WFP는 "이번 위기로 4700만명 이상의 사람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식량위기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신흥국 가계들은 식량 구입에 소득의 25%를 쓴다.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 가계의 엥겔지수는 40%에 달한다. 이집트의 경우 빵이 모든 칼로리 공급의 30%를 차지한다.

많은 식량 수입국가들은 식량난에 놓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할 여력이 안된다. 특히 식량과 비슷하게 가격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에너지까지 수입하는 국가들은 더욱 그렇다. WFP에 따르면 식량에 대한 접근이 열악해 생활이 즉각적인 위기에 놓인 사람수는 지난 5년 동안 1억800만명에서 1억9300만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위기는 더 악화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여름 밀 작황 대부분을 전쟁 전에 이미 수출했다. 러시아는 아직까지는 곡물을 수출하고 있지만 비용상승과 수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곡물창고는 이미 옥수수와 보리로 가득찼다. 6월 말부터 올해 수확을 거둬야 하는데 보관할 곳이 없다. 창고를 찾지 못하면 결국 곡물은 썩는다. 게다가 추수 이후 밀을 심을 노동력과 연료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러시아의 경우 종자와 농약이 부족할 수 있다. 대개는 유럽연합(EU)에서 사오던 것들인데 수입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곡물가격이 상승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부족분을 메우지 못할 수 있다. 가격이 워낙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익마진도 줄어들고 있다. 농가의 주요 비용인 비료와 에너지 가격이 급증한 탓이다. 비료와 에너지 시장은 제재와 천연가스 확보전으로 교란되고 있다. 농가에서 비료 사용량을 줄이면 글로벌 식량 산출량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식량위기에 대한 각국의 대응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시작된 이후 카자흐스탄과 쿠웨이트 등 23개국이 식량수출을 크게 제한했다. 이들은 전세계 칼로리 교역의 10%를 담당한다. 또 비료 수출의 1/5 이상이 제한되고 있다. 교역이 멈추면 기근이 뒤따른다.

상황은 비난전으로 치닫고 있다. 서구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식량위기가 닥쳤다고 비난한다. 러시아는 서구의 제재 때문에 위기가 촉발됐다고 응수한다. 사실 식량체계 교란은 기본적으로 푸틴의 침공 때문이지만 상황을 악화시킨 건 서구의 제재다. 이코노미스트는 "비난전 대신 국가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일단 시장부터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세계 팜유의 69%를 공급하는 인도네시아는 최근 수출 금지조치를 풀었다. 우크라이나가 철도와 도로를 통해 루마니아나 발트해 국가 항구로 곡물을 선적하도록 유럽이 나서야 한다. 예년 수출량의 약 20%가 이같은 방법으로 대체될 수 있다.

가장 효과가 큰 해소책은 흑해 봉쇄를 푸는 것이다. 대략 2500만톤의 옥수수와 밀이 우크라이나에 갇혀 있는 상태다. 전세계 저개발국가의 연간 소비량과 맞먹는 분량이다. 이를 위해선 3개국이 뜻을 모아야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선적을 허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오데사항에 접근하는 길에 설치한 지뢰를 제거해야 한다. 터키는 우크라이나 곡물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해군의 호위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전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경제를 억죄려 노력중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뢰 제거에 주저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국가를 설득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한발 빼고 있는 인도와 중국 등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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