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사태 '유사수신 법규' 폰지사기에 허점
'금전'에 대해서만 처벌 규정 … "가상자산에도 적용해야"
행정규제 강화해야 신속 제재 가능 … 여당, 긴급세미나
"제게 1비트코인을 맡기면 1년 내 200% 수익을 보장해드립니다", "제게 1억원을 맡기면 가상자산을 잘 굴려서 1년 내 2억원으로 돌려드립니다"
두 사례는 동일하게 2배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내용으로,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자금을 모으는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한다. 다만 현행 유산수신행위규제 법률은 '금전'을 받는 행위만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에 대한 수익보장은 유사수신행위로 규제하기 어렵다.
정재욱 변호사는 23일 '루나·테라 사태, 원인과 대책'을 주제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의장 성일종)와 가상자산특별위원회(위원장 윤창현)가 공동주최한 긴급세미나에 참석해 "유사수신행위규제법을 개정해 가상자산을 수취하는 경우에도 제한적 범위 내에서 유산수산행위규제법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산 가상자산인 루나와 테라USD(UST)는 발행사인 테라폼랩스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앵커 프로토콜'에 힘입어 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UST의 수요를 늘리고 루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UST를 앵커 프로토콜 전용지갑으로 전송한 뒤 예치를 하면, 연 20%의 이자가 UST로 지급되도록 했다. 신규 투자금을 유치해 이를 실제로 투자대상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투자자들의 수익금으로 지급하는 일종의 폰지사기 유형과 비슷하다.
◆루나·테라, 사기혐의만 적용 가능? = 정 변호사는 "UST의 경우 UST의 가치가 1달러로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20%의 이자를 약정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원금 또는 원금초과금액(이자)를 약정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금전을 받는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가상자산이 금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처벌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손실보전 등을 금지하고 있는 자본시장법 역시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
대법원은 금전의 의미를 '우리나라에서의 통화(유통화폐)'라고 밝혔으며,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이라고 판시했다. 재산적 가치만 인정한 것이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판단을 고려하면 가상자산을 금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정 변호사의 설명이다.
따라서 현행 유사수신행위규제법으로는 △원금 또는 고수익이 보장된다고 약속하며 가상자산을 받는 경우 △가상자산 개수 보장 또는 증가를 약속하며 가상자산을 받는 경우 △자상자산 개수 보장 또는 증가를 약속하며 금전을 받는 경우 등은 모두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
다만 테라·루나와 관련해서는 사기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테라·루나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분류된다. 통상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화를 담보로 하지만 테라·루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이라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코인의 가격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다른 코인과 연동시킨 '이중 토큰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루나는 테라의 가격안정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테라의 가격이 하락할 때는 루나를 추가발생하고, 그 추가 발생한 루나로 테라의 유통량을 흡수해 다시 테라의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반대로 테라의 가격이 상승할 때는 테라를 추가 발행해 가격을 맞춘다. 즉 '1 테라USD(UST) = 1달러 가치의 루나'라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결국 UST는 루나의 시가총액만큼 담보된다고 볼 수 있다"며 "문제는 루나의 시가총액이 UST의 시가총액을 하회할 경우 제3의 담보수단 없이는 UST 가치가 유지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이중 토큰 시스템을 통한 고정된 가치 유지가 애초부터 실현 가능한 것이었는지, 실현 불가능을 기초로 비트코인 지급담보조치가 나온 것이 아닌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사전 고지를 했는지, 고지 의무가 있는지 여부 등이 다퉈질 것"이라며 사기죄 적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루나·테라는 중앙집권식 구조를 탈피한 코인들의 기술적 기반인 블록체인마저 사실상 부정했다. 블록체인은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사실상 멈출 수 없는 탈중앙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기술이지만 루나·테라를 발행한 테라폼랩스는 해당 코인의 블록체인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중단시키거나 동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평가회사 설립, 상장·공시 강화" = 가상자산을 이용한 위법행위는 혐의 입증이 쉽지 않고 처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형사규제 보다는 행정규제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오늘 발생해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 대한 처벌은 2~3년 후에 나오는 것이 오늘 우리가 가진 형사규제의 한계"라며 "미국 독일 일본에서의 증권규제는 과징금규제를 위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상자산범죄에 대해서도 행정규제 중심으로 규제체계를 정립해야 가상자산 시장의 불공정행위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주제발표자로 나온 전인태 가톨릭대 수학과 교수는 "공인된 복수의 가상자산 평가회사를 설립하고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의 상장 및 공시를 위해 2~3개의 평가회사에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가상자산거래소의 운영리스크 및 신용리스크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거래소는 상장심사 관련해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고 상장과 상장폐지시 명확한 근거와 사유를 공시해야 하며 투명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상장된 코인이 문제가 발생한다면 가상자산거래소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