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패 위기의 민주당 … "5.18·노무현 정신, 진보 전유물 아냐"

2022-05-24 10:53:19 게재

5.18 기념식·노무현 추도식, 첫 보수진영 참여

'정신' 사라진 '진보' 비판 … "지역-이념 극복" 주문

"실질적인 민중의 삶 개선과 결합해야"

거대한 촛불의 힘으로 얻은 정권을 잃고 '5월'을 맞은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5.18'이 광주에 머물러 있고 지역·이념의 전유물로 남아있는 게 아니냐, 노무현정신을 너도 나도 불러냈지만 정작 민주당엔 노무현정신이 없다는 지적이다. 4.7 재보궐과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이후 6.1 지방선거마저 패배가 유력시되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와 외부의 비판은 더욱 강도를 높이는 분위기다.

고 노무현대통령 추도식에서 참배하는 여야 지도부│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여야 지도부가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는 "민주당에게 5.18정신, 노무현 정신이 이제 화석화된 그들만의 이야기로 전락해 버렸다"면서 "5.18 민주화 운동이 추구했던 정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정신으로 새로운 시대의 아젠다를 실현하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억압으로부터의 저항, 포용, 참여 등 5.18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여준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게 민주당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과거'에 묻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고 그게 현재의 허물어진 정체성, 강성 지지층에 흔들리는 모습 등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5.18 정신과 노무현 정신 =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민주당 의원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42년 전의 '그날'과 '님들의 행진'에 대한 감회를 풀어냈다. 그러고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저항의식과 다짐으로 가득 채웠다. 조정식 의원은 "아직도 님들의 행진은 우리 가슴에 울림을 주고 나아갈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며 "소수를 위한 정권, 검찰권력을 사유화하는 정권, 범죄 피의자를 옹호하는 정권에 국회가 침묵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인영 의원은 "가짜 민주주의와의 투쟁, 냉정수구의 배격, 신자유주의 극복을 다짐한다"며 "민주주의, 평화통일, 민생복지, 공정경제 그리고 기후대응, 젠더평등, 디지털 혁신에서 미래를 선점하겠다"고 했다. 무소속인 광주 지역구의 민형배 의원은 "기념식에 국힘 소속 의원 전원에게 소집령이 내렸으니 정치쇼를 한판 크게 벌일 모양"이라며 "겉으로는 협치를 강조하지만 속내는 시커멓다"고 했다. "내각에서 광주·전남 출신은 완전히 배제됐다"며 "정부여당의 무도한 전횡,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켜낸 오월 희생자, 피해자, 유가족께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 다하겠다"고도 했다.

전날, 13년 전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노무현정신을 윤석열정부를 견제할 근거와 등치시켰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은 강물처럼,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처럼, 국민과 역사를 믿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겠다"며 "아마추어 정권의 난폭, 위험 운전을 잘 견제하고 견인하겠다"고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엄정한 자기성찰과 담대한 실천이 절실한 오늘, 국민과 시대를 온몸으로 받들었던 '바보 노무현'이 더욱 그립다"면서도 "한덕수 총리의 추도식 참석은 환영할 일"이라면서 "다만 알맹이 없는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전해철 의원은 "반칙과 특권없는 세상, 지역주의와 권위주의 극복,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 정착 등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이 더욱 절실한 때"라며 "특히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하나로 모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님께서는 역사와 진보의 발전에 있어 꼭 필요한 일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하셨다"고도 했다.

◆보수진영의 태도 변화 = 올해 '5월'은 예년과 같은 진보진영만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기가 아니었다.

보수진영의 '태도'가 달라졌다. 처음으로 보수진영 지도자들이 5.18민주화기념식과 5.23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겠다고 했고 실제 실행했다. 이준석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 100명(109명중)도 같이 했다. 5.23 노무현대통령 추도식에 윤 대통령은 한덕수 총리, 이상민 행안부 장관, 김대기 비서실장, 이진복 정무수석을 보냈다. 국민의힘 이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진정성'에 의구심을 표하면서 다소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과 광주만의 '5.18'과 '노무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롯해 앞에 나서려는 사람들은 저마다 김대중정신, 노무현정신을 이어받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활용했을 뿐 '정신'은 외면했다는 평가와 맞물리는 얘기다.

호남지역 모 다선의원은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호남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게 아니라 이제는 전국 행사로 그 정신을 확산시키고 그렇게 하기 위한 제도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지금과 같이 5.18을 '호남'으로 제한하면 민주당이 고립된다"고 했다.

1984년생 김태진 비대위원은 '5.18'을 생각하며 "상대편이라도 잘한 건 잘했다고, 우리편이라도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우리사회가 좀 그랬으면 좋겠다"며 "정치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봉하에서는 "지금의 세상, 지금의 정치가 노무현 대통령님이 꿈꾸던 모습이 맞을지 질문해본다"며 "어쩌면 좀더 큰 용기가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강물은 바라를 포기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깨어있는 강물"이라고도 했다.

◆"내빈석에 앉은 586" = 김 교수는 5.18민주화운동으로 나온 변혁운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이들이 정치엘리트가 되었는데도 민중의 삶의 질 개선과 같은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5.18 민주화 운동의 기념식 내빈석에 앉은 고관대작이 된 586 변혁운동가'라는 이미지와 담론이 형성됐고 주류가 된 이들에 대한 비난과 공격의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과 왜곡마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조의 해체와 재구성이 필요하다"며 "과거화-형식화-지역화-고립화-추상화-정파화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5.18민주화운동의 경험과 의미를 민중의 삶의 질 개선에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이념과 정책의 투입과 산출로 이어가야 한다"며 "5.18 민주화운동의 적극적, 발전적 계승자라면 분권 자치를 위한 제도와 공동체적 실천,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결합시키는 다양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진보진영이 5.18민주화운동 정신이나 김대중·노무현·노회찬을 호명하면서 이를 활용하는 데 주력한다"며 "새로운 도전세력들이 점점 공룡같이 화석화되는 과거의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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