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으로 새길 여는 중소·벤처기업 | ⑦ 스피폭스
"콘덴서 없으면 반도체 무용지물" … SMD(표면실장)형 용기 세계 1위
2022-06-08 00:00:01 게재
37년간 한우물 경영, 세계시장 51% 점유
자체 기술로 스마트공장 고도화 구축 추진
"직원만족과 안전이 기업 지속가능 담보"
특정 원재료나 제품, 기술이 무기화되고 있다. 평소 볼품없던 소재가 산업을 멈추게 한다. 긴밀히 연결된 부품소재 공급망이 무너지면 완제품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도 콘덴서(condenser)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콘덴서는 전자제품 회로에 전류가 일정하게 흐를 수 있도록 제어하는 부품이다. 과전류를 제어하지 못하면 반도체는 파괴된다. 반도체는 콘덴서와 결합돼야 비로소 기능을 발휘하는 셈이다.
세계 콘덴서기업들과 반도체시장이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중소기업을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가 문을 닫으면 콘덴서 공급망이 큰 위기에 봉착해서다.
초격차기술로 글로벌 콘덴서 공급의 큰손으로 부상한 강소기업은 스피폭스(speefox)다. 스피폭스는 표면실장(SMD)형 알루미늄 전해 콘덴서 케이스(용기) 부문 세계 1위 기업이다. 세계시장 55%를 점유하고 있다. 있다.
글로벌기업 가운데 경쟁사를 꼽으라면 일본의 미쓰비시 정도다.
"불량제품 발생을 방지하는 전수검사기술이 완료되면 시장점유율은 75%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쯤되면 세계반도체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지난달 26일 이천시 본사에서 만난 김용래 대표의 자신감이다.
◆PET필름 부착기술 세계 최초 = SMD형 콘덴서는 자동차 전장용 제어기판,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술(ICT) 제품,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 산업용 기기 등에 두루 쓰인다. 스피폭스가 만들고 있는 콘덴서 용기는 손톱보다 작은 3㎜부터 손목보다 굵은 89㎜까지 다양하다. 이 용기에 절연체를 담으면 콘덴서가 된다.
1985년 설립된 스피폭스는 콘덴서 용기재료인 알루미늄의 생산효율을 극대화해 강자였던 일본을 따돌렸다. 바로 알루미늄을 고르고 길게 만드는 '알루미늄 딥 드로잉 기술'이다. 이 기술로 다양한 크기의 콘덴서 용기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원가절감 효과도 컸다. 6파이짜리 용기 기준으로 약 30%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뒀다
1999년 콘덴서 용기에 폴리에스테르(PET)필름을 입히는 기술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콘덴서의 절연성과 내열성을 높이고, 제품 사양을 표면에 인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일본기업이 개발하려다 포기했었다. 김 대표는 일본제품을 뜯어보며 연구해 PET필름 부착기술을 개발했다.
150도에서 5000여시간 가열하는 변색시험에서 나일론은 변색됐지만 PET용기는 변화가 없었다. PET는 매립할 경우 생분해돼 나일론보다 훨씬 환경친화적인 소재다.
PET필름 용기는 2002년부터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 회사 매출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표면을 코팅처리한 알루미늄을 직접 생산하는 능력도 갖춰 경쟁력은 더 강화됐다.
◆전 공정자동화율이 85% = 스마트공장은 스피폭스의 미래다. 전 공정자동화율이 85%에 이른다. 원자재 반제품 생산부터 열처리 세척 검수 등 모든 공정이 자동화로 이뤄진다. 현재 스마트팩토리는 고도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현재 이천공장에 구축된 스마트공장은 모두 3곳으로 100가지 제품생산이 중앙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김 대표는 "내년 1월에는 자체 기술로 개발한 20대의 로봇이 투입돼 작업시스템 자동화를 한층 높일 것"이라고 전했다.
스피폭스는 이후 스마트공정을 꾸준히 도입해 월 생산량만 21억개 이상 가능하다. 2019년 153억원이던 매출도 지난해 220억원으로 뛰었다. 올해는 260억원, 내년은 300억원 돌파가 목표다.
최근에는 '카메라 전수검사'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전수검사 자동화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으로 납기일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대기업도 도입하기 꺼려하는 기술이지만 세계시장 재패를 위해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실제 카메라 제품 전수검사 시 알루미늄에 빛이 반사돼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다. 현재 완성한 3세대는 외부 벽면과 바닥면을 검사하는 카메라가 분당 450개까지 전수검사를 할 수 있다, 하루 7000만개 전수검사 능력을 갖추는 게 목표다.
김 대표는 "현재 기술개발이 90% 완료된 상태"라며 "이 기술이 완성되면 세계시장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법정관리에도 로봇개발 투자 = 스피폭스는 스마트공장을 자체 능력으로 구축했다. 생존을 위해서였다.
스피폭스는 주거래은행 권유로 환변동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100억원 가량의 큰 피해를 입었다. 부채 증가와 신용하락으로 현금유동성이 악화됐다. 이 영향으로 35억원을 투자했던 중국공장을 매각해야 했다. 2014년 법정관리를 선택했고 3년후 졸업했다.
김 대표는 인건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로봇도입을 결정했다. 당시 법정관리 상태에서 판사를 설득했다. 이렇게 스마트공장은 시작됐다. 하지만 자금이 없어 외부에 개발을 맡길 수 없었다. 대기업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퇴직한 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지인은 지금 기술담당 부사장이다. 부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밤을 세워가며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6년간 스마트공장 구축에 약 150억원을 투입했다.
스마트공장 구축 후 직원이 12% 늘었다. 연구와 스마트공장 관리 인력이다. 반면 단순 반복작업을 맡던 외국인 고용은 30% 정도 줄었다.
김 대표는 "스마트공장 초기 3개월가량은 생산성이 오히려 줄었다. 안정화 기간을 지나자 급격히 올라갔다"고 회상했다.
37년간 한우물을 파면서 달려온 스피폭스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온돌용 열전도판으로 친환경 건축자재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온돌용 열전도판은 콘덴서 용기 생산공정에서 나오는 월 60톤 가량의 알루미늄 스크랩을 활용한다. 구멍뚫린 알루미늄판 양쪽에 특허받은 기술로 특수 동도금과 부식방지 코팅 처리를 해 구리보다 열전도가 뛰어나고 부식에도 강한 건축자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제품 이름이 '파파야시스템'이다. 기존엔 고물상에 헐값으로 팔던 스크랩을 재활용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셈이다.
김 대표는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다. 우선 2월부터 주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최근 5년간 제조공정의 약 70%를 스마트공장으로 대체한 덕분이다. 주4일 근무에 5일간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회사내에 호텔수준의 기숙사를 건립해 직원들에게 제공할 계획도 세웠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직원 만족도에 있다. 기업은 많은 이익을 내 안전을 강화하고 직원이 행복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김 대표와 스피폭스의 미래가 밝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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