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독오른 '입' … 여의도정치가 말라죽는다

2022-06-09 11:19:50 게재

국민의힘 '개소리' 공방 … 민주당은 "치매" 대자보 논란

문재인 사저 앞에선 욕설 시위 … "팬덤정치와 결별해야"

여야 정치인과 강성지지층의 '입'이 부쩍 거칠어지고 있다. 합리적 비판과 설득보다는 일방적 비난과 저주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낸다. 상대당 인사 뿐 아니라 같은 당 아군에게도 총구를 겨누기 일쑤다. 일부 정치인과 강성지지층의 독오른 '입'으로 인해 여의도정치가 말라죽는다는 우려다.

9일 정치권의 '입'이 선을 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대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60대인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연일 거친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승리 확신하는 국민의힘 │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국민의힘 이준석 상임선대위원장, 권성동 공동선대위원장, 정진석 의원 등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8회 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방송을 시청하며 밝은 모습으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정 부의장이 지난 6일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비판하자,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어차피 기차는 간다"고 적었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 청산에 반발하는 군 장성들에게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고 말한 것을 인용한 것. 정 부의장은 8일 "정치선배의 우려를 '개소리'로 치부하는 만용은 어디에서 나오는거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 부의장도 이날 "어디서 이런 나쁜 술수를 배웠냐"며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9일 귀국길에 오르기 직전 "대표를 몰아내자고 대선 때 방에서 기자들 들으라고 소리친 분을 꾹 참고 우대해서 공천관리위원장까지 맡기고 공관위원 전원 구성권까지 드렸으면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예우는 다 한거 아니냐"며 정 부의장을 다시한번 '저격'했다. 끝장을 보자는 분위기다.

민주당에서는 친명-친문 충돌 속에서 상대편을 겨냥한 문자폭탄과 대자보 테러가 무분별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의원 지지자들은 지난 5일 친문핵심 홍영표 의원 사무실 문에 "홍 의원님이 말하는 거 보고 있으니 치매가 아닌지 걱정되고, 중증 애정결핍이 심각한 것 같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홍 의원은 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문자는) 하루에 기본적으로 1000통, 많을 때는 2000통까지 받고 있다"며 "그런 것들을 과거에도 받아왔지만 갈수록 폭력적이 돼 걱정"이라고 전했다.

친명 김남국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대자보가 붙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며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도 넘는 공격'이 이뤄진 뒤였다.

정치권의 막말은 상대편 당을 향해서는 더욱 거칠게 이뤄지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경남 양산 사저 앞에는 보수인사들이 진을 치고서 문 전 대통령을 향한 저주와 욕설을 쏟아내고 있다. 주민과 방문객의 항의가 잇따르지만 이들의 '일탈'은 멈추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사저 앞 '일탈'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야권과 야권지지층도 대응에 나섰다. 민주당은 사저 앞 '일탈'을 처벌할 근거를 만들기 위해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특정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금지'를 집시법에 명시한 것. 진보성향 유튜버인 '서울의소리'는 사저 앞 '일탈'이 계속되면 박근혜 전 대통령 대구 사저 앞으로 가서 보복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야권지지층의 윤 대통령 부부를 향한 비난과 조롱도 위험수위를 넘나들기는 마찬가지다. 야권지지층을 자처하는 인사들은 SNS를 중심으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언행과 과거를 겨냥한 말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9일 "보수는 원래 품격있는 언행으로 (진보와) 차별화됐는데, 요즘에는 품격을 잃었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며 "일부 보수정치인과 강성지지층의 거친 언행은 팬덤정치를 부추기겠지만 지지층 확장에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민주당의 집시법 개정안을 겨냥해 "민주당이 문자폭탄에는 말 한마디 못 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집시법 개정에 나선다면, 또다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민주당은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강성 팬덤정치와 먼저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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