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vs 연료, 작물 쓰임새 논쟁

2022-06-14 11:48:22 게재

바이오연료 전환작물 총량 19억명 소비칼로리와 비슷

"기근에 우선 쓰여야" 지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식량가격이 치솟으면서 기근 등 인도주의적 리스크가 커졌다. 식량이 우선이냐 연료가 우선이냐는 논쟁이 벌어지면서 농작물을 저탄소 연료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 1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우크라 사태 전 곡물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연료 생산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이오연료 선도국가인 미국은 지난해 수확한 옥수수의 36%를 바이오에탄올에, 콩기름의 40%를 바이오디젤에 썼다. 옥수수와 사탕수수에서 바이오에탄올을, 콩기름과 팜유 등 식물성기름에서 바이오디젤을 얻는다.

일각에선 각국이 휘발유와 경유에 바이오연료를 섞어야 한다는 의무조건을 완화해 곡물, 식물성기름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워싱턴 소재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현재 상황은 정부가 정책 인센티브 또는 의무화 정책을 통해 식량작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라고 촉구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와 오크라이나는 전세계 옥수수의 1/5를, 해바라기유의 절반 이상을 생산한다. 그러나 양국의 전쟁으로 두 나라의 곡물 수출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주 "전쟁이 야기한 식량 부족으로 수억명의 사람들이 기아와 결핍의 위기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농업데이터기업 '그로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연간 바이오연료에 쓰이는 작물 총량은 19억명의 사람들이 소비하는 칼로리양과 비슷하다. 식량위기가 악화될 경우 에너지 부문에서 전환될 수 있는 농산물의 양을 가늠할 수 있는 수치다.

바이오연료, 곡물시장에 문제 일으키나

2000년대 초부터 발동기연료에 바이오연료를 섞기 시작했다. 에너지 공급을 늘리고 화석연료의 환경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바이오연료는 2007~2008년 글로벌 식량위기를 악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옥수수 가격 상승분의 20~50%는 바이오연료 시장의 성장 때문이었다. 바이오연료 전환에 대해 당시 UN 식량주권 조사관은 '인류에 적대적인 범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오연료 생산기업들은 이번엔 다르다고 반박한다. 바이오연료 로비집단인 '에탄올유럽'의 제임스 코건은 "가격이나 공급 위축 등 모든 면에서 이번 위기는 바이오연료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식량가격의 고공행진은 수요 때문이 아니라 불규칙한 매매 상황, 에너지 고물가 때문"이라며 "바이오연료 생산을 줄인다 해도 식량가격 위기를 크게 완화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세계자원연구소'(WRI)는 유럽과 미국이 곡물의 바이오연료 전환을 절반으로 줄이면 밀과 옥수수, 보리, 호밀 등 우크라이나 수출 감소분을 보상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물론 식량 생산량은 바이오연료 생산 증가에 발맞춰 증가했다. 이는 식량 공급에 이용되는 곡물량이 줄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바이오연료 제한을 주장하는 측은 바이오연료 전환이 늘어나면서 환경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올리버 제임스 교수는 "식량의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제한적인 자원의 쓰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사람들을 먹이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브뤼셀 소재 환경운동단체 '교통&환경'의 마이크 마라렌스는 "EU의 경우 빵 1500만조각을 만들 수 있는 약 1만톤의 밀이 매일 자동차에 들어가는 에탄올로 전환돼 태워진다"고 말했다.

반면 에탄올업계는 그같은 비교가 부당하다고 항변한다. 연료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곡물 대부분은 제빵용 밀이 아니라 사료용 밀이라는 것. 또 바이오연료에 쓰이는 밀의 양은 총 생산량의 2%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고도 지적한다.

유럽 최대 바이오연료 정제소를 보유한 '클론바이오'의 투자국장 에릭 지버스는 "그같은 맥락을 고려하면 빵에 대한 현재의 위기에서 에탄용 밀을 논쟁의 소재로 삼는 건 약간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연료 제한하면 더 해로울까

업계 경영자들은 바이오연료는 동물에 영양분을 공급해 간접적으로 인간에 이득을 주는 효율성을 갖고 있다고 항변한다. 바이오연료 업계는 동물용 사료 생산에 일익을 담당한다. 곡물을 에탄올로 전환하는 과정은 부산물로 닭과 소, 돼지에 먹일 수 있는 단백질과 지방이 생성된다.

에탄올유럽의 코건은 "바이오연료 생산을 제한하면 EU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신재생에너지를 잃는 것은 물론 에너지 독립성 하락, 일자리와 농가소득 감소, 화석연료 수입에 따른 탄소배출 증가 등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국가별 입장은 다양하다. 벨기에와 독일은 식량 안보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오연료 혼합 의무정책을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수요가 지난해 대비 5% 늘어난 85억리터에 그칠 것이라며 올해 바이오연료 성장률을 당초 예상보다 20% 줄였다.

미국의 경우 저렴한 옥수수 기반 에탄올이 주요 바이오연료다. 미국정부는 급등하는 휘발유 가격을 잡는 게 우선과제다. 때문에 바이오에탄올 혼합비율 상향을 일시적으로 지속키로 했다. 예년의 경우 여름철엔 혼합비율을 인하했었다.

한편 바이오디젤에 대한 정부의 인센티브,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출 감소 등의 요인으로 미국 내 콩기름 수요가 커졌다. 오하이오 소재 제빵기업 '슈워벨'의 구매국장 에드 싱코는 "콩기름 자체가 부족하다. 공급업체들이 견적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에탄올 생산기업들에게 '옥수수에서 에탄올연료를 뽑는 과정을 엄격히 통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인도는 에탄올 혼합비율을 높일 방침이다. 인도의 바이오에탄올 주요 재료는 설탕인데, 다른 작물에 비해 가격이 덜 올랐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파트너 니콜라스 데니스는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식량안보와 에너지가격의 지속가능성, 에너지독립성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각국 정부는 토지의 지속가능한 활용성, 각기 다른 우선순위를 고려해 바이오연료 제한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바이오연료 제한 여부에 대한 국가 내부의 논쟁과 고민은 있지만 국제적 수준에서의 논쟁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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