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료업계 담합 무죄 "증거 없다"

2022-06-15 11:32:17 게재

체면 구긴 공정위 … 닭고기 담합 수사 영향

사료업체 사장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가격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사료 회사들에게 내려진 과징금 처분이 대법원에서 취소됐다. 사장들이 정보교환을 한 것은 맞지만 가격 담합의 증거는 없다는 취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담합 사실을 인정한 회사가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선수 이흥구 대법관)는 대한사료와 하림홀딩스 등 4개 회사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2015년 가축 사료 시장에서의 부당공동행위를 적발했다며 10개 사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도합 745억9800만원을 부과했다.

제재 대상은 249억2100만원의 과징금이 매겨진 카길애그리퓨리나(카길)를 비롯해 하림홀딩스, 팜스코, 제일홀딩스, CJ제일제당, 대한제당, 삼양홀딩스, 서울사료, 우성사료, 대한사료 등 10곳이었다. 당초 공정위가 파악한 담합 참여사는 11곳이었으나 가장 먼저 자진 신고를 한 A사는 과징금(27억3600만원)을 감면받았다.

공정위는 이들 기업이 2006년 10월부터 4년여에 걸쳐 모두 16차례 돼지와 닭, 소 등 가축 배합사료의 가격 인상·인하 폭과 적용 시기를 미리 짜 맞췄다고 봤다. 이들 업체 대표이사나 부문장들은 수년 동안 골프장이나 식당 등지에서 '사장단 모임' 등의 명목으로 만나 가격을 담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처분에 반발한 업체 10곳은 그해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 처분 불복소송은 2심제(서울고법·대법원)로 진행된다.

대한사료 등 업체 4곳의 소송을 먼저 심리한 서울고법은 공정위의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11개 업체가 수년에 걸쳐 대면·비대면 접촉과 연락을 해오면서 사료 판매 가격과 인상 계획, 생산·판매량 등 정보를 공유해온 것은 맞지만, 이들 간에 공동으로 축종별 배합사료 가격을 결정·변경하려는 명시적·묵시적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축종별·농가별·지역별로 다양한 판매가격이 산출되는 사료시장의 특성에 주목했다. 또 사료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농협이 가격 조정을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11개 업체가 가격을 결정하기로 뜻을 모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대법원은 서울고법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문제가 된 정보교환 회의에는 11개 사 외에도 다수의 중소업체 임직원들이나 사료 구매 수요자 협회가 참여했기 때문에 적발 업체들이 가격 인상 등을 합의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11개 사가 정보교환을 한 것 역시 합의를 실행하려는 목적과 의도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도 내려졌다.

이번 판결로 하림홀딩스 등 3개 사는 공정위가 부과한 총 159억여원의 과징금을 내지 않게 됐다. 대한사료도 공정위가 부과한 22억9800만원의 과징금을 내지 않게 됐다.

대법원 결론이 내려진 업체 4곳 외에 6개 회사의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법원이 무죄를 판단한 결정적 요인은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리니언시)했던 A사의 '변심'이었다는 게 공정위의 '변명'이다. 공정위 조사과정에서는 담합사실을 인정했던 이 회사가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리니언시란 담합행위를 한 기업이 자진신고를 할 경우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는 담합사건에서 자진신고를 유도, 담합을 방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위 관계자는 "A사는 조사 당시 사료값 가격담합 사실을 모두 인정했고, 과징금 부과대상에서 제외됐다"면서 "그러다 재판과정에서는 진술을 바꾸면서 무죄판결이 나오게 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반면 사료협회 관계자는 "자진신고했던 내용 자체가 재판과정에서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 무죄판결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2020년 12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을 통해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해 과징금 등을 감면받은 사업자가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비협조할 경우 이미 받은 감면을 취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유사한 이유로 공정위 제재를 받은 가금업계도 법적 대응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정위는 육계업계와 협회의 담합 건으로 2019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과징금 약 2030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지난 3일에는 오리고기 계열화사업자 9개에 대해 가격담함을 이유로 과징금 60억1200만원을 부과하고 한국오리협회에 대해 과징금 2억2400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닭이나 오리 공급량과 가격 조정이 수급조절 차원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해 이뤄진 일이란 것이다.

특히 공정위는 육계협회와 회사들에 대해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지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대법 판결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성홍식 김선일 차염진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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