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처럼 … 수직통합 나선 차 업계

2022-06-20 10:54:12 게재

이코노미스트 "공급망 차질에 1세기 만의 격변 … 원자재·소프트웨어 등 가치사슬 통제 높여"

자동차산업계는 세기적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내연기관엔진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는 것뿐 아니라 자동차는 사실상 '네바퀴로 구르는 컴퓨터'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중이다.

지난 반세기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자동차 설계와 공급관리, 부품조립 등에 집중하기 위해 제조 과정의 많은 부분을 아웃소싱했다. 하지만 이제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금속, 전기차를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 자동차를 판매하는 매장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있다.

이런 흐름은 전기차 업계의 챔피언인 테슬라처럼 변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이를 '테슬라화'(Teslafication)로 부르며 "움직이는 조립라인의 포드와 적시생산방식의 도요타처럼, 테슬라도 자동차업계의 파괴적 혁신을 상징한다"고 전했다.

한지붕 아래서 모든 것을 처리한다는 수직통합 개념은 사실 역사가 오래됐다. 포드의 창설자 헨리 포드는 자사가 소유한 농장과 제철소 용광로에서 타이어에 쓰는 고무와 섀시에 쓰는 철강을 공급했다. 그가 소유한 디트로이트 리버 루즈 공장은 포드 소유 광산에서 캔 석탄을 썼다.

수직통합 과정은 테슬라에서 재연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달 브라질 광산대기업 '발레'와 니켈 공급계약을 맺었다. 또 필요 리튬의 대부분, 코발트의 절반 이상, 니켈의 약 1/3을 9개의 광산기업들에서 직접 사들이기로 했다. 이 광물들은 미국 네바다주 기가팩토리에서 배터리를 만드는 데 쓰인다. 테슬라는 전세계 다른 3곳의 기가팩토리에서도 배터리 자체 제작량을 더 늘릴 계획이다.

테슬라는 전기차 모터 등 동력전달장치와 전자장비들도 자체 제작한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자체 설계한다. 지난해엔 테슬라가 반도체공장을 사들인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중앙화된 컴퓨팅 솔루션을 만들어 반도체를 구동시킨다. 또 딜러 기반 판매모델을 버리고 자체적인 판매장을 열었다. 크레디트스위스 댄 레비는 "테슬라는 인소싱을 통해 기술뿐 아니라 비용도 통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7240억달러다. 2~9위 자동차기업들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과 비슷하다. UBS는 "수직적으로 통합된 테슬라는 구조적으로 타이트해진 공급망 환경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자동차기업 경영진들도 수직통합에 뜻을 두고 있다. 포드 CEO 짐 팔리는 최근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직통합을 이루는 것"이라며 "헨리 포드가 옳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완성차업체들은 공급망 관리에 집중하면서 독일 보쉬와 콘티넨탈, 일본 덴소 등 공급기업들에게 주요 부품을 아웃소싱했다. 공급사들은 비슷한 부품을 만들어 많은 고객사에 팔았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

덕분에 완성차업체들은 자본을 아낄 수 있었지만 기술적 혁신을 진전시키진 못했다. 다국적 자동차기업 '스텔란티스'의 CEO 카를로스 타바레스는 "우리 차에 들어가는 부품 85%는 범용 부품"이라고 말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에 따르면 완성차 1대의 부가가치 창출 비중은 3대 7 정도로 공급사가 높다.

전통의 자동차기업들은 자체적인 부가가치 창출 비중을 높이려 한다. 최소한 테슬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려고 한다. 투자은행 제퍼리사의 애널리스트 필립 후코이에 따르면 테슬라의 자체 부가가치 창출 비중은 50%를 넘는다. 테슬라는 그 비중을 계속 높이고 있다.

이를 위해선 원자재부터 해결해야 한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주요 광물인 코발트와 리튬, 니켈 등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린다. 때문에 주요 자동차기업들은 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BMW는 지난해 아르헨티나 리튬 개발 프로젝트에 3억3400만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스텔란티스와 르노는 리튬 채굴기업 '벌컨에너지리소스'와 각각 공급계약을 맺었다. GM도 리튬 채굴기업인 '컨트롤드 서멀 리소스'와 수백만달러 거래를 성사시켰다. 포드는 올해 4월 리튬을 공급 받기 위해 '레이크리소스'와 계약했다. 스텔란티스와 메르세데스는 벨기에 화학기업 '유미코어'와 계약했다. 두 회사가 합작한 벤처기업 'ACC'에 양극재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중국 전기차기업 비야디도 지난 3월 자국의 리튬 채굴기업에 5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사 중 하나로 등극한 비야디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배터리 제조로 사업을 시작한 기업이다. 비야디는 또 아프리카 소재 6개의 광산기업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자체 제작에서도 테슬라를 따라하려는 흐름이 생겼다. 글로벌 자동차기업들은 배터리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과점을 깨고 싶어한다. 폭스바겐은 배터리 자체 제조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국 배터리공장에 21억달러를 투자했다. 또 2030년까지 유럽에 6개의 배터리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하지만 배터리 100% 자체제작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기업들은 배터리 공급 전문기업과 협력하는 방안을 택했다. 포드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70억달러와 44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3개의 기가팩토리를 건설할 계획이다. GM은 지난해 LG와 함께 테네시주 배터리 공장을 짓기 위해 23억달러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생산 비용을 분담하기 위해 경쟁기업들끼리 연합하기도 한다. 스텔란티스와 메르세데스가 합작한 벤처기업 ACC는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와 함께 프랑스와 독일의 ACC 공장에 7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볼보가 투자한 유럽 최대 배터리 생산기업 '노스볼트'의 지분 20%(24억유로어치)를 갖고 있다.

규격품 전기모터를 구매하던 흐름도 바뀌고 있다. 현대, 르노-닛산-미쓰비시 자동차동맹은 각각 자체적으로 모터를 생산한다. BMW와 포드, GM, 메르세데스, 폭스바겐도 자체 생산 모터를 늘릴 계획이다. 반도체 전문가를 고용하는 기업도 있다. 폭스바겐은 테슬라처럼 반도체를 자체 설계할 방침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폭스바겐 CEO 헤르베르트 디스는 지난달 "소프트웨어 전문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게 자동차업계가 이뤄내야 할 가장 거대한 전환"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이에 공감한다. 자동차 소프트웨어 부문은 향후 업계의 가장 큰 매출 원천이 될 전망이다. UBS는 2030년 전세계 자동차 소프트웨어 연매출이 1조9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기차, 내연기관엔진차 판매액보다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포드는 지난해 9월 애플의 전기차 프로젝트를 책임지던 더그 필드를 영입했다. 지난 3월 볼보를 이끌게 된 짐 로완은 전자기업 다이슨의 전 CEO였다. 이탈리아 스포츠카 기업 페라리도 지난해 9월 스위스 반도체 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사장 베네데토 비냐를 영입했다.

2020년 소프트웨어 개발 자회사 '카리아드'를 차린 폭스바겐은 최근 "15년 내로 자동차 소프트웨어 대부분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자체 소프트웨어 비중은 10% 정도다. 전용 운영체제(OS)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는 메르세데스와 도요타 역시 심사숙고하는 지점이다. 반면 포드와 GM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향후 5년 약 300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스텔란티스도 2024년까지 4500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전통의 자동차기업들은 기존의 딜러 기반 판매시스템을 뒤흔들 생각은 없다. 고객서비스 측면에서 유용하다는 게 오랜 시간 동안 증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슬라처럼 제3자를 거치지 않고 운전자에게 직접 차를 판매하는 에이전시 모델로의 전환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구매자와 직접 관계를 맺으면 추가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은 "전통의 자동차업계가 테슬라를 따라잡기 원한다면 실리콘밸리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공급자 네트워크뿐 아니라 기업구조도 단순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비대하고 복잡해진 기업구조로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행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볼보와 그 모기업 지리는 2019년 내연기관엔진차 사업부문을 합병해 독립법인으로 만들었다. 2030년을 목표로 볼보를 전기차만 만드는 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포드는 지난 3월 전기차 사업부 '포드 모델e'를 만들어 내연기관 사업부와 전면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르노도 비슷한 방안을 고려중이다.

완성차기업들이 속속 수직통합에 나서면 부품 공급기업들에겐 일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2년여 전부터 콘티넨탈의 주가는 지속 하락중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현재 벌어지는 상황은 1세기에 한번 일어날 법한 격변에 해당한다. 가치사슬 재편은 많은 시간과 돈을 요구한다. 실패 리스크도 만만찮다"며 "자동차기업 CEO들은 기업의 자원과 기술을 최적으로 배분하는 것과 관련해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전환기는 질 높은 처우조건의 제조업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정부와 노조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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