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이 'Arm(영국 반도체설계기업)'을 원하는 이유

2022-06-28 10:57:40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편재성과 잠재력 커"

거대 기술기업과 각국 정부, 반독점 당국, 투자자들 모두 영국 반도체설계기업 'Arm'의 상장을 주시하고 있다. 2016년 Arm을 320억달러에 사들인 소프트뱅크는 내년 3월 Arm 주식을 상장할 계획이다.

미국 반도체기업 퀄컴의 CEO 크리스티아노 아몬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인텔이나 삼성전자와 컨소시엄을 맺어 Arm 최대주주가 되거나 아예 매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가 400억달러 인수거래를 시도했지만 올해 초 실패했다. 반독점 우려 때문이다.

영국 정치권 일각에선 "Arm의 중요성을 고려해 영국정부가 '황금주'(주주총회 결의사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국이 아닌 타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다. 소프트뱅크는 영국정부의 뜻을 고려해 뉴욕증시와 런던증시에 교차상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는 "Arm의 실적을 보면 상장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다소 혼란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Arm 매출은 전년 대비 35% 증가한 27억달러였다. 나쁜 성적표는 아니지만 반도체설계 거대기업에 견주면 여전히 왜소하다. 엔비디아 인수시도에서 알 수 있듯, Arm 밸류에이션은 6년 동안 1/4 늘었다. 같은 기간 퀄컴의 시가총액은 50%,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13배 상승했다.

Arm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극심한 데 대해 이코노미스트지는 두 가지 설명을 내놨다. 첫째 Arm 제품의 '편재성'(ubiquity)이다. 1990년 영국 데스크톱 컴큐터 제조사 에이콘컴퓨터가 파산한 뒤 재탄생한 Arm은 거의 모든 빅테크 기업들이 반도체 설계를 위해 문을 두드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 대부분은 Arm 기술로 만들어진 칩을 최소 1개 이상 탑재하고 있다.

두번째 장점은 '잠재력'이다. Arm은 수년의 노력 끝에 PC나 데이터센터 등 수익성 높은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또 Arm 칩은 자동차에서 전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구동시킬 수 있다. 모든 사물이 컴퓨터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인텔과 같은 기업들과 달리, Arm은 오직 지적재산(IP)을 판매한다. 수수료를 내면 누구나 규격품 칩설계를 이용(라이선싱)할 수 있다. 라이선싱 매출 이외에도 Arm은 자사 기술로 만들어진 반도체를 판매할 때마다 소액의 로열티를 받는다. 2021년 Arm의 라이선싱 매출은 10억달러를 약간 넘었고, 로열티 매출은 15억달러에 달했다.

반도체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Arm의 규격 칩설계는 인기를 누렸다. 리서치기업 '뉴스트리트리서치'는 250억달러 규모의 스마트폰칩 시장에서 Arm 비중이 99%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Arm 제품은 드론과 세탁기, 스마트워치, 자동차 등 모든 것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Arm은 "창사 이후 현재까지 2000개에 육박하는 라이선스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Arm 설계에 기반한 반도체는 2250억개를 넘었다. Arm은 2035년까지 자사설계에 기반한 반도체를 1조개로 늘릴 계획이다.

올해 Arm CEO에서 물러난 사이먼 시거스는 Arm의 중립적인 위상을 '기술업계의 스위스'에 비유하곤 했다. 리서치 기업 'CCS인사이트'의 애널리스트 제프 블레이버는 "반도체 제조사들은 경쟁기업이 Arm을 갖게 되면 중립성을 해칠 것으로 우려한다"고 말했다. 미국 등 주요국 반독점당국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엔비디아 인수 시도를 막았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경쟁기업들을 막는 데 Arm을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를 믿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Arm 기술이 경쟁 기업을 이긴 주요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뉴스트리트리서치는 "대당 1000달러가 넘는 최고사양 스마트폰 1대가 팔릴 때마다 Arm은 1.50달러를 로열티로 받는다"고 추산한다. 더 저렴한 휴대폰의 경우 로열티는 1달러 이하로 내려간다.

소프트뱅크는 로열티를 더 올리길 원했지만, Arm 경영진은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고객들을 잃을 위험이 크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려는 노력이 좌절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폰에 Arm 칩을 사용하는 애플은 2020년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에도 기존 인텔칩 대신 Arm 기반 칩을 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과 달리 이 시장에선 애플이 지배적인 사업자가 아니지만, 이는 Arm 칩을 신뢰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Arm은 점차 서버나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장비 등 고마진사업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 시장은 수십년 동안 인텔이 지배했다. 하지만 Arm은 최근 수년 동안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Arm 설계기반 그래비톤칩을 쓰고 있다. 데이터센터 반도체를 파는 미국 기업 '암페어'도 Arm 설계에 기반한 제품을 쓰고 있다. 여러 전문 프로세서 제조사들도 마찬가지다. 리서치기업 '트렌드포스'는 "2025년 서버칩 시장에서 Arm 프로세서의 점유율이 22%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CCS인사이트의 블레이버는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이후 Arm은 연구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는 Arm의 기술 경쟁력을 유지시켜 줄 전망이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자 '리스크파이브'(RISC-V)의 기세도 등등하다. 로열티와 라이선스 수수료를 받지 않는 기업이다. Arm의 라이센스를 이용했던 일본 시스템반도체 기업 '르네사스'는 2020년 차세대 제품에 RISC-V 설계를 쓸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텔과 퀄컴, 삼성전자도 그 기술을 주시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Arm이 영국정부가 지배하는 기업이 될지, 아니면 컨소시엄을 이룬 거대 반도체 기업들의 기업이 될지 관심"이라면서도 "Arm이 향후 여전히 반도체 핵심기업이겠지만 강력한 경쟁자 때문에 실리콘밸리 기준에선 여전히 피라미 수준에 머물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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