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조선시장 선도한 현대중공업그룹 50년│ ③ 앞으로 50년

디지털·탈탄소 전환 속 미래선박 집중투자

2022-06-29 10:43:36 게재

권오갑 회장 "차원 다른 위기에 대응" … 전문가들, 협력·상생 등 1등 역할 요구

지난 1월 13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한국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을 거부한 이유로 LNG운반선 시장에서의 강력한 지배력을 이유로 꼽았다. 1972년 울산 미포만의 모래사장에 건설한 현대중공업이 지난 50년간 이룩한 성과와 함께 그 앞에 닥치고 있는 도전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다. 디지털전환과 탈탄소시대에 적응하고 생존할 과제도, 산업재해 극복과 인권경영의 과제도 해결해 가야 한다. 내일신문은 현대중공업 50년을 △기적의 50년 △산업재해 50년 △앞으로 50년으로 구성해 살펴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6~10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글로벌 조선해양 박람회 '포시도니아(Posidonia) 2022'에 참가해 친환경 선박과 차세대 저탄소 연료 관련 기술을 소개했다. 사진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지난 50년, 세계 1위 조선소를 일군 현대중공업그룹(HD현대)은 앞으로 50년 계속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권오갑 회장은 지난 4월 그룹사장단회의에서 "앞으로의 위기는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위기와 차원이 다를 수 있다"며 "각 사별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해 검토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조선학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세계 1등 자리를 차지한 현대중공업은 월드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며 "디지털 전환, 친환경 전환, 그리고 탈중앙화로 요약되는 선박의 변화에 기술개발 선도는 물론이고 정책과 제도적인 면에서도 선견자로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로섬 게임에서 1등을 할 게 아니라, 판을 키우고 다 같이 제 몫을 크게 나눠먹는 새로운 세상의 리더로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주총에서 4대 미래 사업 밝혀 = 그룹의 미래 50년은 3월 주주총회에서 제시됐다.

권 회장은 주총 인사말을 통해 "앞으로의 50년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며 "사명을 'HD현대'로 변경하고, '투자형 지주회사' 역할을 강화해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적극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 하반기 완공되는 '글로벌 R&D센터'를 그룹의 미래 기술경영 컨트롤타워로 삼고, 그룹이 영위하는 모든 업종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룹은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미래선박, 수소연료전지, 디지털, 헬스케어 등 4대 미래사업 분야와 청정수소, 화이트바이오 등 자회사의 신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명확히 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 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에서 정몽준, 정기선으로 이어지는 3세 경영도 본격화 했다. 정 사장은 그룹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과 사내이사도 역임하고 있다.

그룹은 미래선박시장 중 하나로 자율운항선박시장 개척에 앞장서고 있다. 사내벤처 1호로 출범한 그룹의 자율운항전문 자회사 아비커스는 지난 2일 SK해운과 18만㎥급 초대형 LNG운반선 '프리즘 커리지'호의 자율운항 대양횡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자율운항 기술로 선박을 제어해 대양을 횡단한 세계 첫 사례다. 지난해 6월에는 경북 포항운하 일원에서 12인승 크루즈 선박을 사람의 개입 없이 완전 자율운항하는 데 성공한 바도 있다.

정 사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 IT 전시회인 'CES 2022'에 참가해 아비커스의 자율운항기술을 선보였다. 그룹은 자율운항기술로 물류뿐만 아니라 해양레저 시장, 자원조사, 오염원 제거, 해양생태조사 등으로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자율운항선박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뿐 아니라 신뢰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홍승표 로이드선급 마케팅매니저는 "자율운항선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성 확보"라며 "선박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실증테스트를 해야 하고, 현대가 독립적으로 하는 것보다 여러 기관이 참여해서 공통분모를 많이 적용하는 게 신뢰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부기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장은 "자율운항선박 운영표준, 통신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제도 만들고 기술을 리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을 중심으로 전후방 연관 산업생태계를 활성화하는 것도 조선산업 1등에게 요구된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업에서 규모의 경제와 사업구조를 갖췄다"며 "현대중공업그룹이 향후 50년 계속 발전하기 위해 해운, 철강, 선박해양플랜트 기자재 뿐 아니라 금융과도 협력하는 전후방 연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그룹이 오일뱅크 등 다른 사업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조선업에 대해 끊임없이 투자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좋은 배를 만들어 파는 역할에서 앞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지털·탈탄소 시장에서 생존 = 그룹은 1월 초 빅데이터 기업인 미국 팔란티어와 조선·해양, 에너지, 산업기계 등 핵심사업에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룹의 조선·해양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은 2030년까지 스마트조선소 전환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작업관리를 스마트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이 프로젝트에 빅데이터 플랫폼을 도입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도 올해부터 5년간 충남 대산공장에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며, 현재 운영 중인 생산관리시스템과 통합해 공정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산업기계 계열사인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이미 2019년부터 팔란티어와 빅데이터 협업플랫폼 'DI(Data Intelligence) 360'을 공동 개발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내 로봇기업인 현대로보틱스도 KT와 50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 계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호텔, 레스토랑 등에 쓰이는 서비스로봇 분야와 ICT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팩토리 등에 관한 사업협력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친환경 사업 분야에도 그룹 차원의 수소공급망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HD현대는 지난해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와 수소(H) 및 암모니아(NH3)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 수소 프로젝트 추진에 나섰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람코로부터 수입한 LPG를 통해 블루수소를 생산, 탈황설비에 활용하거나 차량·발전용 연료로 판매할 계획이다. 공정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활용하며 탄소제로 공정을 실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한 아람코로부터 블루 암모니아를 제공받아 2024년까지 설립 예정인 LNG보일러 연료로 일부 활용할 예정이다.

한국조선해양도 세계 조선사 중 최초로 LPG·CO2 겸용운반선과 암모니아 운반·추진선 개발에 나서며 조선 사업에서 양사 간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수소 드림 2030'은 현대중공업그룹의 핵심 미래 성장동력의 하나인 수소사업 전략으로, 2030년까지 육상과 해상에서 친환경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50년을 위해 노동조합과의 관계도 주목된다.

김병조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세계 1위 조선소를 건설한 힘이 노동자 손끝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면 노조는 회사의 미래발전 전망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창립 50년" 연재기사]

정연근 한남진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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