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그린인프라

제각각 그린인프라 제도, 통합 관리 시스템 필요

2022-07-04 11:27:29 게재

법에 개념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 도시재해 회복력 높이는 효과, 미국 영국 등은 접근성까지 고려

이상기후로 인해 증가하는 폭염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는 가운데 그린인프라(Green infrastructur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부처별로 제각각 흩어져 있는 그린인프라 제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코로나19 등으로 변화하는 사회 시스템을 고려해 단순히 녹지 면적만 중요시할 게 아니라 접근성이나 연계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린인프라의 대표적인 예는 생태계 기능회복을 목표로 만들어진 자연적인 공간 혹은 자연에 가까운 공간인 공원이나 산림 등을 들 수 있다.

폭염이 심화될 수록 도심내 그린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연일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해 7월 지열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장면.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초기에는 주로 물관리 측면에서 다뤄지다가 최근에는 도시재해의 리질리언스(이른바 회복탄력성)를 높이는 전략적 계획 수단으로 활용된다. 반대 개념인 그레이인프라(Grey infrastructure)의 경우 도로 철도 상업지구 등이 해당된다.

◆시군 단위 도시숲 사업 중복 문제 = 6월 29일 윤은주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린인프라 관련 계획이나 기법들이 개별법들로 나눠져 있고 가이드라인이나 지침들도 구체적이지 않아 문제"라며 "각 부처별로 다양한 그린인프라 사업들이 진행되는데 사각지대 없이 그린인프라 개념이 잘 녹아들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종전에는 정성적인 부분이 강하다보니 좀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정량적으로 최적인 그린인프라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시의 사회기반시설 공급 측면에서 그린인프라 개념을 법·제도적으로 확립하고 기초조사 수요분석 계회목표 등에 대해 표준화된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8년 8월 폭염 경보 때 산림을 제외한 도시의 모든 인프라에서 열스트레스 지수가 높았다. 사진은 지난해 7월 22일 건지산 편백숲을 찾은 시민들이 그늘에서 쉬는 장면.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도시 그린인프라 계획모형 구축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세먼지, 코로나19 및 기후변화 관련 정책수단으로 그린인프라가 활용되지만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공원녹지법) 등 관련 법·제도에서는 정작 명확한 개념조차 정의하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관련 법·제도에 통합적인 그린인프라 개념을 도입하는 게 시급한 상황이다.

보고서에서는 '그린인프라 기본법'(가칭) 등 상위법을 제정해 각 부처별로 개별적으로 계획·관리하는 체계에서 통합 체계로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린인프라 관련법은 △공원녹지법 △도시숲 등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시숲법) △도로법 △하천법 등 다양하다. 도시공원과 녹지는 공원녹지법에서, 가로수는 도시숲법과 도로법에서 다루는 식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소관 기관 별로 나눠본다면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은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 별로 다양한 영역에서 제각각 그린인프라 관련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한 예로 도시숲과 공원녹지를 들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도시 그린인프라 계획모형 구축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숲의 범위는 '공원녹지법'에 따른 공원녹지와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또한 실제 수립된 시·군 단위의 '도시숲 등 조성·관리 계획'들이 기존 '공원녹지기본계획'과 상당 부분 중복되는 문제가 있다.

이동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그린인프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린워싱처럼 실제 그린인프라가 아닌데도 그린인프라인 사업처럼 포장하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법에서 관련 정의부터 명확하게 해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워싱이란 위장환경주의로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걸로 홍보하는 현상을 말한다.

◆몇도 저감이 아닌 열쾌적성까지 고려 = 미국환경보호청(EPA)은 그린인프라 효과를 세 가지 측면에서 정의했다. 환경적 측면에서는 △탄소 저감 △대기질 향상 △홍수예방 △효과적인 토지이용 등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기반시설의 건설비용 감소 △토지 가치 증가 △에너지 소비 감소 등이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도시열섬 완화 △도시의 녹색길 확립 등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의 '기후변화 적응형 도시구현을 위한 그린인프라 전략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포틀랜드에서는 가로수와 녹화 등 녹색길 조성을 통해 연간 유출수 40%가 감소했다. 영국 런던의 경우 녹지지역이 주변도로보다 평균 0.6℃ 낮게 측정됐다. 미국 시카고는 도시공원 내 나무를 통해 대기오염 농도가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이는 연간 344만달러 절감 효과를 가져 온다고 밝혔다.

이처럼 그린인프라는 도시열섬효과 완화, 대기질 개선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공간이나 목적별로 제대로 된 방법을 사용해야만 효과를 낼 수 있다.

'도심열섬현상완화를 위한 그린인프라 전략' 논문에서는 도심열섬 완화 정책을 펼칠 때 단순히 표면온도나 대기온도가 몇도 저감된다에 치중하지 말고 보행자 측면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열쾌적성 지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예로 바닥 표면의 반사도와 증발산열을 높이면 도시 전체 온도를 저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보행자 입장에서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높은 반사도를 갖는 바닥재질을 사용하거나 증발산을 통해 습도를 높일 경우 보행자의 열 환경을 악화할 수 있다.

◆지역·소득별 접근성 격차 없도록 = 이 교수는 "기후변화가 심화할수록 그린인프라 중요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지역 소득 취약계층 등에 따라 그린인프라 접근성이 크게 차이가 나게 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린인프라는 사람과 자연의 관점을 함께 융합하는 식으로 볼 필요도 있다"며 "동물 측면에서는 그린인프라 연결성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여름철 폭염발생에 따른 고령자층의 의료 비용 추정 및 요인 분석' 논문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환자표본자료에서 추출한 67만3346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온열질환자의 1인당 평균 의료비용 본인 부담은 약 3만9000원이다. 이 비용은 고령일수록 높아진다. 65세 이상 온열질환자의 경우 약 5만7000원으로 전체 평균보다 46% 정도 높았다. 이러한 격차는 기후변화 취약계층인 고령자들의 그린인프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면 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그린인프라 접근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추세다. 그린인프라 접근성을 핵심적인 기준과 지표로 설정하고 공간계획 및 관리에 반영한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는 자연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법에서 기본권으로 정했다. 미국의 경우 그린인프라 지침을 면적 기준에서 접근성 기준으로 전환했다. 특히 미국 뉴욕은 도시계획 수립시 그린인프라 접근성을 중점 목표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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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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