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향한 여정, 도전과 응전 계속된다
'글로벌팩트9' 오슬로 현장을 가다 … "허위정보는 빠르고, 지식은 느려"
지난달 22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 중심에 위치한 오슬로 메트로폴리탄대학에 세계 각지에서 활동 중인 팩트체커들과 언론인, 연구자 등이 속속 모여들었다.
세계 최대규모 팩트체크 서밋인 '글로벌팩트9'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행사를 주최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의 설명에 따르면 69개국 512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참가까지 합치면 1000명이 훨씬 넘는다. 9년 전인 지난 2014년 영국 런던의 한 대학강의실에서 진행했던 '글로벌팩트1' 당시 20여개 국가에서 4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이자 성장이다.
56개의 세션으로 3박4일동안 진행된 이번 '글로벌팩트9'에서는 현재 전세계가 동시에 안고 있는 현안이자 고민인 허위정보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이뤄졌다.
세계최대 팩트체크 서밋 500여명 몰려
첫째날인 22일은 아카데믹세션으로 연구원 교수 팩트체커들이 함께 모여 연구와 실제의 차이에 대해 논의했다. 루카스 그레이브스 위스콘신대학 교수는 "학술연구가 항상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쓰여지는 것은 아니다. 학계는 현장의 실제 조직에 정말 시급히 중요한 실용적인 질문들에 연구를 항상 집중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레이브스는 토론 직후에도 트윗을 통해 "정치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결과가 같을 것이라고 가정하지 말라"며 "잘못된 정보와 사실확인에 대한 더 많은 연구는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하버드 케네디스쿨 소렌스타인 센터 연구책임자인 존 도노반 박사는 기조연설을 통해 사실이 실제로 무엇이며, 권력과 정치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했다. 특히 도노반 박사는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샘 하이드가 대규모 총기사건이 날 때마다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례를 통해 허위정보가 어떻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확산되는지 소개했다.
"맥락과 분리된 사실은 무의미"
둘째날에도 허위정보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진실을 향해가는 팩트체커들에 대한 격려와 지지가 이어졌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앤 애플바움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실제로는 매우 긴 준비 기간의 정점"이라며 "물리적 전쟁 이전에 정보전쟁이 선행됐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지금 다루는 것은 단순히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심어지고 통제되고 조직된 완전히 정교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정부"라면서 "러시아정부가 국내외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한번의 사실확인만으로는 수많은 허위정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팩트체커들의 위험 중 하나가 강력한 서사를 놓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이든 거짓이든 맥락과 분리된 사실은 거의 무의미하다"면서 "그것을 설명하거나 이야기의 일부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바움은 또 질의응답 과정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난입한 사건과 관련해 워싱턴에서 진행 중인 청문회에 대해 "사실을 제시하고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예"라고 소개하면서 "어떻게 보면 (이번 청문회가) 거대한 사실확인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애플바움은 "팩트체커 자신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야기에 '타자'로 갇힐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팩트체커들에게 더 큰 역할이 있는데 바로 연합(연대)을 만들고, 맥락을 찾아내며, 더 큰 신뢰감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존 도노반 박사도 전날에 이은 두 번째 기조연설을 통해 지식과 정보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정보는 빠르고 저렴한 반면, 지식은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데 검색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는 종종 정보와 지식을 뒤섞어 둘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 "개방돼있는 모든 것은 재미나 정치 또는 이익을 위해 악용된다"면서 따라서 "팩트체커가 콘텐츠를 허위 정보로 분류하기 전에 콘텐츠의 출처를 이해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도노반 박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예로 들며 "위기가 활성화된 상황에서는 실시간 지식은 없고 실시간 정보만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찾는 거짓말이 어디에 있나?" "조작이 어딨어?" "콘텐츠의 디자인과 배포에 있나? 아니면 콘텐츠 자체에 있나?"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 행위자의 의도를 알게 되면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충고했다.
뭇매 맞은 메타와 유튜브
이번 컨퍼런스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와 유튜브 등 거대 플랫폼기업이나 소셜미디어가 허위정보에 대한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질타가 잇따르는 것이다.
팩트체커들과 참석자들은 이들 기업에 대해 지금과는 다른 책임있는 모습을 주문했다.
메타 및 왓츠앱과의 대화에서 소셜미디어 패널리스트는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나쁜 사용자 경험을 줄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이에 메타 관계자는 위반 유형에 따라 다양한 대응 프로토콜을 사용해 잘못된 정보 범주를 식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부 허위 콘텐츠는 단순히 배포를 낮추거나 경고 레이블을 추가하지만 즉각적인 해를 입힐 위험이 있거나 '정치적 절차를 훼손'하는 게시물과 같은 콘텐츠의 경우 해당 콘텐츠를 제거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 참석자는 허위정보 출처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직접 팩트체크할 수 없다는 메타의 정책에 의문을 제기했다. 메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치인 연설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면밀히 검토된다"며 "팩트체커로 가득찬 방에서 다양한 반응을 얻었다"고 답했다.
유튜브 관계자와의 대화는 한층 날이 섰다. 이는 유뷰트가 전세계적으로 허위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온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IFCN은 지난 1월 12일 80개 이상의 팩트체크 기관이 서명한 공식편지를 수잔 보이치키(Susan Wojcicki) 유뷰트 CEO에게 보냈지만 책임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당시 팩트체커들은 편지에서 "유튜브가 전세계 온라인 허위정보 및 잘못된 정보의 주요 통로 중 하나"이며 "유튜브 플랫폼이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착취하기 위해 파렴치한 행위자들에 의해 무기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번 컨퍼런스에 고위급 인사를 파견한 점은 변화이지만 그의 입을 통해 책임있는 답변을 들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참석자들의 비판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엔지 홀란 폴리티팩트 편집장은 "유튜브는 알고리즘에서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올리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사실 확인 콘텐츠의 비디오를 제작한 경험이 많지만 잘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당신이 그 메시지를 회사 전체에 다시 가져와 최고 수준에서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윌 모이 풀팩트 CEO도 "대부분의 언론사가 귀사의 플랫폼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의 고위 경영진이 그들이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겸허하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것은 과거에 한 일에 대한 해명과 사과와 조치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비판에 대해 유튜브 뉴스 및 시민 파트너십 담당 이사인 브랜든 펠드만은 "회사가 뉴스 속보 중 '공신력 있는 출처'를 높이고 허위 콘텐츠를 하향 조정하는 등 우려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펠드만은 팩트체커와 보다 공식적인 파트너십을 맺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우리는 업계를 가장 잘 지원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 비판이 커지자 펠드만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결과물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번 무대는 우리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