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대선 승리하면 브라질 구할까

2022-07-13 10:47:06 게재

76세 좌파 아이콘, 중도·안정성 내세워 세번째 임기 도전 … 국제사회도 예의주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이긴다면, 10여년 만에 정치적 귀환으로 기록된다. 구두닦이소년이자 금속노동자였던 그는 브라질 대통령 재임 기간 글로벌 경제 호황으로 큰 혜택을 입었다. 2010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던 때 지지율이 80%를 넘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76세 중남미 좌파의 아이콘인 룰라는 오는 10월 대선에서 현직 보우소나루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직을 되찾을 강력한 선두주자다. 10월 2일 1차투표까지 아직 석달이 남았지만 룰라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10%p 이상 앞선다.

브라질 국민은 보우소나루정부의 잘못된 코로나19 정책, 끝없는 문화전쟁 시도에 신물이 난 상황이다. 룰라는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안정성을 가져올 정치인' '브라질을 경제적 나락에서 구할 정치인'이라고 홍보한다.


룰라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대통령에서 물러난 지 12년이 지났는데 브라질이 더 가난해졌다는 사실이 슬프다"며 "실업자와 굶주린 사람들이 늘어났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다"고 말했다.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룰라와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정치권을 양분하고 있다. 두 정치인은 서로에 대한 안티전략으로 맞선다. 보우소나루는 2018년 대선에서 스스로를 '반룰라 후보'라고 내세우면서 당선됐다. 지금 룰라는 여성과 동성애자, 환경론자를 공격하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그와는 정반대'라는 점을 내세운다.

룰라의 복귀가 유력한 상황에서 브라질 기업계의 관심사는 그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냐에 집중됐다. 룰라는 첫번째 임기 동안 실용주의 경제정책을 구사했고, 두번째 임기에서는 이념을 앞세워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늘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룰라는 자신의 계획을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대신 룰라는 FT에 "국가 통치엔 신뢰성과 예측가능성, 안정성 등 3가지가 필요하다"며 "내 나이가 되면 보다 성숙해지면서 상황을 바로잡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라진 국내외 경제환경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룰라의 첫번째 임기엔 여러 행운이 따랐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글로벌 원자재시장의 장기 랠리가 촉발됐다. 중남미의 원자재 부국들과 함께 브라질 경제는 고공행진을 누렸다.

만약 룰라가 올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전혀 다른 상황 앞에 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경제는 침체 가능성이 높은 데다, 브라질 재정 역시 재량적 지출의 여지가 거의 없는 빡빡한 상황이다.

각종 국제기구 예상에 따르면 브라질 경제는 올해 1~2% 성장할 전망이다. 실업률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한자릿수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치솟는 인플레이션은 큰 고민거리다. 브라질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3% 이상으로 올렸지만 물가는 연율로 12%씩 오르고 있다.

브라질 민간연구기관인 '제툴리오 바르가스 연구재단'(FGV)에 따르면 지난해 브라질의 극빈곤층은 1/3 늘어 총인구의 14%에 달했다. FGV는 "전세계 최대 농산품 수출국 중 하나인 브라질에서 인구의 36%가 식량을 살 충분한 돈을 갖고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대선을 앞두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극빈층에 더 많은 지원금을 주는 선심성 정책을 쓰고 있다. 또 트럭운전사들과 택시기사들에게 연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계획중이다.

반면 룰라는 디테일한 정책 대신 큰 어젠다를 거론한다. 예를 들어 공공지출에 대한 헌법적 제한조항을 없애는 것 등이다. 룰라는 "사회적 지출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며 "사람들이 극빈상태를 탈출해야 의료와 교육 상품의 소비자가 된다. 그래야 경제 전반이 성장한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을 내팽개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에 대해 룰라는 "어머니가 문맹이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번 것 이상 쓸 수는 없는 법'이라고 가르치셨다"고 말한 뒤 자신이 지명한 부통령 후보를 거론했다. 상파울루주 주지사를 지낸 제랄도 알키민으로, 한때 룰라의 정적이었던 인물이다. 룰라는 이를 자신이 중도성향으로 변했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룰라는 첫번째 임기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자가 아닌, 전문가그룹의 조언을 받는 노련한 정치인을 재무장관에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우소나루정부에서 진행된 노동개혁과 세금정책도 재검토할 계획이다.

룰라정부를 이은 호세프정부에서 일했던 정치평론가 토마스 트라우만은 "룰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운 첫번째 임기와 강력한 국가개입을 내세운 두번째 임기를 혼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트라우만은 룰라가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었을 때 룰라와 현재 룰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중도적 결정을 내릴 줄 알게 됐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룰라 본인은 경제인이나 기업인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는 자신의 극단주의를 걱정하는 기업인들에 대해 "브라질 엘리트들은 노예소유제 시대의 정신상태를 가졌다"며 "교통이 막히면 '룰라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차를 사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룰라의 적대적인 언사에도 브라질의 경제엘리트들은 그의 재집권 가능성에 패닉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정치적 격변을 일으키는 보우소나루정부 때문에 기업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기업 입장에서 룰라는 불확실한 미지수가 아니라 두번이나 겪어본 잘 알려진 상수다. 한 고위급 은행가는 FT에 "룰라는 제도적 위협이 아니다. 경제정책에서 일부 질적인 하락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시대의 역행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골드만삭스 중남미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알베르토 라모스는 "브라질 공공부문은 매우 비효율적인데, 룰라는 공공부문에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그건 좋은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룰라는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 줬다"

대선후보로서 룰라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임기 동안 브라질 경제가 번영을 구가했다는 사람들의 집단기억이다.

상파울루의 외곽 빈민촌 '파벨라'엔 약 10만명이 거주한다. 이곳의 많은 이들은 룰라의 집권 기간을 우호적으로 회상한다. 이 마을 대표 질송 로드리게스는 "룰라는 가난한 자들에게 시선을 맞췄다"고 말했다.

파벨라 사람들 역시 룰라가 속한 노동자당(PT)이 과거 대형 부정부패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룰라가 개인적 이익을 위해 부패에 연루된 게 아니라며 그를 당을 초월한 리더로 인식한다. 이곳에 사는 한 젊은 택배운전사는 "룰라는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줬고, 보우소나루는 훔쳐서 부자들에게 줬다"고 농담했다. FT는 "이는 브라질 국민 저변에 깔린 인식"이라고 전했다.

룰라 재임 동안 빈곤률은 급격히 줄었다. 저소득층 대상 사회복지 프로그램인 '보우사 파밀리아'가 주효했다. 불평등 감소를 위해 조건부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국제사회도 브라질 대선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룰라는 "브라질을 국제무대에 다시 복귀시킬 것"이라며 "환경적,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개발도상 강국을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국경수비대를 도입해 산림파괴를 막을 것"이라며 "아마존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말했다.

지정학적 냉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룰라의 당선 가능성은 국가별 희비를 부를 전망이다. 서구는 현재 러시아·중국과 새로운 냉전에 휘말려있다. 룰라는 우크라이나사태 초기 러시아 침공을 촉발한 이유 중 하나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브라질은 우크라이나사태에서 특정 편을 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양측은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룰라는 또 "평화를 구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참을성이 부족하다"며 "내가 브라질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물론 동맹이자 최대 외국인 투자국인 미국 모두와 논의할 수 있는 협상가"라고 말했다.

브라질 여론조사 전문가 카를로스 아우구스토 몬테네그로는 "룰라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려면, 광범위한 전문가 풀로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며 "기능이 마비된 브라질의 정치시스템을 실제로 개혁하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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