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사태 과제는 러-유럽 관계 설정"

2022-07-20 11:11:05 게재

미국 전 국무장관 키신저, 독 슈피겔지 인터뷰 "러시아를 유럽에 둘지 아시아에 둘지가 핵심"

태어났을 땐 블라디미르 레닌이 여전히 살아있었고, 29세 때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했다. 39세 땐 니키타 흐루쇼프가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했고, 45세 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프라하의 봄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일생 동안 소련의 주요 지도자들을 지켜본 그는 바로 미국 전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다.

우리로 치면 올해 백수(白壽, 99세)를 맞은 키신저 전 장관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보면 흐루쇼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1972년 2월 22일 중국 마오쩌둥 주석과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정상회담 모습. 맨 오른쪽에 미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배석했다. 사진 신화통신=연합뉴스


그는 "흐루쇼프는 인정받길 원했다. 소련의 위상을 확인하고 미국과 동등하게 취급받고 싶었다. 동등함의 개념은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며 "푸틴 대통령의 경우 흐루쇼프보다 더 심하다. 푸틴은 1989년을 기점으로 유럽에서 소련의 위상이 붕괴된 것을 전략적 재앙으로 바라본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많은 이들이 '푸틴 대통령은 소련 시절의 영토를 모두 되찾으려 한다'고 분석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푸틴 입장에서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참여한 건 참을 수 없는 문제다. 우크라이나가 푸틴의 핵심 표적이 된 이유"라고 말했다.

'흐루쇼프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했지만 결국 굴복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전쟁도 그같은 일이 가능할까'라는 슈피겔의 질문에 키신저는 "푸틴 대통령은 흐루쇼프처럼 충동적이지 않다. 훨씬 계획적이고 훨씬 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관계의 세력균형

키신저는 지난달 말 '리더십: 6가지 세계 전략 연구'라는 책을 냈다. 책 도입부에서 '역사를 공부하라. 역사엔 국정운영의 모든 비밀이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했다. 슈피겔은 그 대목을 거론하며 '우크라이나전쟁을 이해하고 그 전쟁을 끝내는 데 있어 가장 시사적인 역사적 선례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키신저는 "역사적으로 비견될 만한 사례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전쟁은 한 측면에선 '세력균형'에 대한 전쟁이고 또 다른 측면에선 '시민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고전적인 국제적 문제를 글로벌 문제와 완전히 결합시킨다. 이 전쟁이 끝났을 때 핵심 문제는 러시아가 유럽과 응집력 있는 관계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다. 이는 러시아가 늘 추구해왔던 목표다. 그게 아니라면 유럽의 경계에 위치한 러시아가 아시아의 전초기지가 될 것인지 여부다. 따라서 이번 전쟁은 역사적으로 비교할 만한 선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키신저는 국제관계의 안정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건 '세력균형'이라고 본다. 그는 "세력균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며 "세력균형만으로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하지만 세력균형이 없다면 안정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슈피겔이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을 민주주의 대 독재의 투쟁으로 본다. 독일의 새 내각 역시 가치기반의 외교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지적하자, 키신저는 '30년전쟁'의 재연을 우려했다. 30년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신성로마제국과 중부유럽을 무대로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 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을 말한다. 당시 중부유럽 인구의 2/5가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키신저는 "개인적으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나에게 보다 바람직한 체제"라며 "하지만 현 세계의 국제관계에서 민주주의가 주요 목표가 된다면 '30년전쟁'과 비슷한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광신적 충동이 등장할 것이다. 현 시기의 정치적 수완은 세력균형의 역사적 역할과 하이테크의 새로운 역할, 핵심가치 보호를 모두 아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를 어느 진영에 둘 것인가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전쟁 전황을 볼 때 중국이 대만문제를 해결하려는 욕망이 늘어났을까 줄어들었을까' 묻는 슈피겔에 그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키신저는 "확실히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과소평가했다. 하지만 중국은 평화로운 사태해결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순간 대만을 상대로 전면적인 힘을 사용할 것이다. 중국이 아직 그같이 판단할 지점에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사태와 관련한 군사적 측면 중 하나는 두 영역의 핵무기 보유 국가가 제3의 국가 영토에서 재래전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으로부터 많은 무기를 공급받고 있다"며 "하지만 대만에 대한 중국 공격이 이뤄진다면 미국과 중국은 초기부터 직접 대결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전쟁 이전, 체제 경쟁국인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이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활발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현재는 미국이 중국과 벌이는 갈등을 줄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쟁으로 바뀐 상황이다. 이는 50년 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하며 이뤄냈던 것이기도 하다. 이에 슈피겔은 '미국이 두개의 거대한 적들과 동시에 싸울 정도로 강력하다고 생각하는가' 물었다.

키신저는 "두개의 적과 싸운다는 게 우크라이나사태를 러시아에 대한 전쟁으로 확대하고, 동시에 중국과도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매우 현명치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나는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물으려는 미국과 NATO의 노력, 영토를 회복하려는 우크라이나의 노력을 지지한다. 하지만 국제관계는 더 큰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국과 NATO, 우크라이나의 목표가 달성된다고 해도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는 또 다른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문제다. 러시아가 유럽의 일원이 될지, 아니면 다른 세력권에 기반해 유럽의 영원한 적이 될지가 중요하다. 이는 우크라이나사태의 결론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현재 관점에서 50년 전 대만문제를 미해결 상태로 둔 건 성과였는가 실수였는가'라는 슈피겔의 질문에 그는 "중국과 화해협력을 시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적극 옹호했다. 그는 "게다가 대만문제를 불문에 부치면서 냉전과 베트남전쟁을 끝낼 수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 최소 20여년 동안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이테크 동원 전쟁 가능성

키신저는 당초 이란과의 핵합의를 반대했다. 그는 "내가 이란 핵합의에 대해 우려한 건 그 합의가 시기를 늦추는 효과만 있을 뿐 이란의 핵보유국 등극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아무런 진전이 없는 그같은 합의로 되돌아가는 건 사실상 패배다. 앞으로도 계속 고통스런 문제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동 내 핵군비확산이 아니라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우려한다"며 "이란이 일단 핵보유국을 선언한다면, 이집트와 터키가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나면 중동 내 역학관계,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현재보다 더욱 위태롭게 된다"고 말했다.

키신저는 또 고도로 발전한 기술과 이를 제어할 능력이 안되는 현실을 깊이 우려하며 최신기술이 동원되는 전쟁을 막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1차세계대전 때부터 기술이 관리능력을 넘어섰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지난 80년 동안 핵무기를 가졌고 이를 정교화하기 위해 수조달러를 쓰고 있다. 1945년 이후 아무도 감히 핵무기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오늘날 핵무기는 인공지능 등 고도로 발전한 기술에 의해 더욱 복잡해졌다. 정치지도자들이 기술을 통제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 최신기술이 동원되는 전쟁을 막는 건 최우선 의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라는 가장 힘이 센 하이테크 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 현재를 역사적으로 비교할 수가 없다. 과거엔 한쪽이 승리하면 그에 따른 혜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의 하이테크 전쟁에선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우려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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