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ESG 공시 인증' 놓고 회계법인·컨설팅업체 갈등

2022-07-22 11:48:32 게재

기업 온실가스 배출 관련

SEC, 독립적인 인증 요구

대규모 시장 놓고 경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온실가스 배출량 등 기후변화 관련 공시를 일정 규모 이상 기업들에게 요구하면서 공시 인증 업무를 놓고 회계법인과 컨설팅 업체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빅4 회계법인들(Deloitte, EY, KPMG, PwC)은 SEC에 기업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공시 인증 업무를 수행할 자격에 대해 범위를 좁혀달라는 내용의 의견을 제출했다. SEC의 공시안에 대한 공개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입장을 밝힌 것이며 비회계법인 컨설팅 업체에서는 실무적인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SEC는 올해 3월 대형 상장기업들이 scope3(기타 간접배출원)로 알려진 공급망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는 내용의 공시 규정안을 승인했다. 규정안이 확정되면 시가총액이 7억달러 이상인 기업들은 2024년 회계연도부터 scope3 배출량을 공시해야 한다.

SEC는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 추정치를 포함한 특정 신규 공시에 대한 독립적인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증권법은 공인회계사들에게만 상장기업의 재무제표 감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SEC의 기후변화 관련 공시 규정안에 따르면 인증보고서는 외부 감사인은 물론이고 엔지니어링과 컨설팅, 인증 법인 등과 같은 서비스 제공업체들에 의해 작성될 수 있다.

SEC 규정안이 확정되면 ESG 세부 사항에 대한 인증 서비스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미국 기업들은 회계법인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나 컨설팅 법인에 자발적으로 데이터 검증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회계업계 그룹인 감사품질센터(CAQ)에 따르면 지난해 S&P 500 기업들 중 약 6%가 회계법인을 이용해 ESG 정보 일부를 검증했고, 비회계법인을 이용한 기업은 47% 가량 된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 기업들을 조사한 오딧 애널리틱스(Audit Analytics)에 따르면, ESG 정보 인증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곳은 인증 법인인 뷰로 베리타스(Bureau Veritas SA), 에스지에스(SGS SA)와 함께 에이팩스 컴퍼니즈(Apex Companys LLC), 더블유에스피(WSP Global Inc.), 영국로이드 선급재단(Lloyd's Register Group Ltd), 이알엠 인터내셔널 그룹 (ERM International Group Ltd) 등 컨설팅 법인들이다. 오딧 애널리틱스의 데릭 콜먼 이사는 "해당 업체들의 인증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빅4 회계법인은 해당 업체들이 이같은 유형의 인증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당국이 업체에 요구해달라는 입장이다. PwC는 SEC가 미국 주 면허법에 따라 공인회계사들 이외의 전문가들을 인증 서비스 수행에서 제외할지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PwC는 또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인증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미국 감사 감독기구인 미국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에 등록하는 것을 심사숙고해달라고 요구했다. PwC는 인증서비스 제공업체들이 미국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으면 업무 수행, 윤리 및 계약 수행과 관련된 요구사항들을 준수하도록 강제해야한다는 것이다. 2002년 사베인즈-옥슬리 법이 시행되면서 회계법인들은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비회계법인인 인증·컨설팅 업체들은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프랑스 인증 법인인 뷰로 베리타스(Bureau Veritas)의 마르크 부아소네 부사장은 "뷰로 베리타스의 직원들은 엔지니어링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어서 업무(인증)를 처리할 자격이 있다"며 "이는 데이터의 타당성을 인증하고 기업들의 탄소배출량 감축 계획에 무게를 둘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증과 관련해 "감사 수단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며 "실무적인 측면에서 자격을 갖추고 평가 중인 분야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인증 시장 규모가 회계법인과 비회계법인이 모두 뛰어들어 서비스하기에 충분히 크다는 주장도 있다. 런던 소재 컨설팅 법인인 이알엠(ERM)의 기업인증 국제 책임자인 베스 와이크는 "인증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을 때, 기업들의 자발적인 공시와 규제적인 공시 모두 충족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투자전문가들을 대표하는 CFA 인스티튜트의 책임자인 샌디 피터스는 "SEC가 인증서비스 제공업체에 회계법인이 충족해야 할 전문성과 인증 기준들을 충족하도록 요구하는 한 투자자들은 어떤 유형의 법인이 기업들의 기후 데이터를 검증하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SEC의 공시 규정안에 대해 기업들은 비용이 상승한다며 반발하고 있으며 공화당 의원과 일부 법학 교수들은 규제기관이 그러한 규칙을 제정할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SEC는 여러 의견들을 수렴해 규정안을 변경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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