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으로 새길 여는 중소·벤처기업│⑩ 독서광이 된 CEO들

책에서 기업경영과 삶의 지혜 배워 … "위기상황 미리 대처"

2022-07-27 10:57:30 게재

열린경영 도입으로 직원이 직접 구매·발주 결정

회사 내 토론문화 정착, 긍정적 분위기 확산 돼

기업은 사람처럼 생로병사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닥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야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한국경제는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과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으로 무장된 기업인들이 있었기에 성장해 왔다. 내일신문은 (사)밥일꿈과 함께 기업가정신으로 새 길을 여는 중소·벤처기업 20곳을 발굴해 연재한다. 산업의 대전환 시기를 헤쳐 나가는 용기와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왼쪽부터 박건영 피디씨(PDC) 대표, 김유홍 브레인EMS 대표, 정민채 JMC부동산투자연구소 대표, 최득호 대목환경건설 대표, 엄기용 혜미항공해운 대표, 사진 김형수 기자

 


"오늘의 나를 있게 한건 우리 마을 공공도서관이다."(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

"가장 쉽고 효과적으로 실력을 키우는 방법은 바로 책을 읽는 것이다. 끊임없는 독서야말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권오현 삼성전자 고문)

빌게이츠 회장과 권오현 고문은 '독서광'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는 매년 '독서주간'(외부 연락을 끊고 독서에만 매진)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오현 삼성전자 고문은 연평균 독서량이 100권에 달하는 다독가다.

책 읽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늘고 있다. 책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 삶의 가치를 확장하는 통찰력을 배우기 위해서다. 초연결 초지능 초예측으로 특징되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독서는 상상력과 융합적 사고를 키워 CEO 능력을 배가시키는 화수분인 셈이다.

◆ CEO 능력 배가시키는 화수분 = 글로벌기업이나 국내 대기업 CEO 못지않게 책 읽는 국내 중소벤처기업 CEO들이 있다. 이들은 고전 인문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책과 토론을 통해 배운 지혜를 기업경영에 적용하고 있다. 결과는 긍정적이다. 대표와 직원간 자유로운 의사소통 문화가 정착됐다. 앞선 사업전략 수정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표 자신이 삶의 가치와 행복감이 높아졌다. 이들은 독서에 그치지 않고 올해 초 각자 책을 펴냈다.

"독서와 토론을 지속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신이 변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직원과 생각을 공유하니 신뢰와 행복이 쌓였다."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독서 효과다.

이들을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청계산 입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유홍 브레인EMS 대표, 최득호 대목환경건설 대표, 엄기용 혜미항공해운 대표, 박건영 피디씨(PDC) 대표, 정민채 JMC부동산투자연구소 대표가 독서광에서 작가로 올라선 CEO들이다.

김유홍 브레인EMS 대표는 책 한권이 인생을 바꾼 경우다. 어느 날 회사 선배가 던져준 책을 읽다 감동이 밀려왔고 창업을 결심했다. 2003년 회사 설립 후 곧바로 독서문화 만들기에 노력했다. 사훈도 'S=amh²'으로 정했다. S는 성공(success), a는 태도(attitude), m은 동기(motivation), h는 습관(habit)으로 '성공은 좋은 습관'이라는 의미다. 그는 가장 좋은 습관을 독서로 판단했다.

김 대표가 우선 모범을 보였다. 저녁 술자리와 주말 골프를 산행과 독서토론으로 바꿨다. 매월 사내강의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직원들과 나누며 독서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 모든 직원 책상에는 수십권의 책이 꽂혀있는 이유다. 집에서도 아이들과 책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TV를 없앴다.

독서는 경영에 큰 보탬이 됐다. 김 대표는 직원들에게 구매와 발주 권한을 줬다. 다만 거짓말을 하거나 비리를 저지른 경우에는 강력히 처벌하기로 했다. 실제 직원이 발주 실수로 1100만원의 손실을 봤다. 김 대표는 직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격려했다. 이 일을 계기로 직원들이 자신있게 업무에 임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자 시간적 여유가 생긴 그는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회사 주력사업을 인쇄회로기판(PCB) 모듈제조에서 의료기기 부품제조로 전환해 위기를 대비한 것도 세미나와 독서를 통해서였다.

그는 "독서토론에서는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고, 역사탐방에서는 CEO로서 갖춰야 할 덕목과 삶의 지혜를 배운다"며 웃었다.

김 대표는 이노비즈협회 독서토론모임과 역사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3월 모임을 운영하며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기록한 '살면서 한번은 모임의 리더가 되어라'를 출간했다.

◆세상 보는 눈 넓어져 = 최득호 대표는 조경 및 골프장 건설업체 대목환경건설을 38년째 경영하고 있다. 최 대표는 '남아수독 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를 실천하고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에서 유래된 '남아수독 오거서'는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실을 만한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독서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그는 고향 경북 김천에 1만4000권의 책을 보관한 서고를 따로 만들 정도로 독서광이다.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이 지낸 덕에 독서는 생활이다. 현재도 급여의 5%를 책 구입비로 사용하고 있다.

2003년부터 전 직원 독서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직원들이 매월 책 한권씩 읽고 작성한 1년치 독후감을 모아 문집으로 엮는다. 문집 '대목의 메아리'를 13년째 발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업무분위기와 직원들 간 단합이 훨씬 좋아졌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약간 강제성을 띠었는데 지금은 자발적으로 잘하고 있다. 직원들 긍정적 마인드로 바뀌면서 거래처 관계도 잘 풀린다"고 전했다.

최 대표가 내놓은 책은 '인생은 오늘도 나무를 닮아간다'다. 나무와 인간의 희로애락을 빗대어 삶을 고찰하는 인문에세이다. 최 대표는 앞으로 5권의 시리즈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는 책에서 하루아침에 민둥산을 만들어 버린 업자, 도시개발로 사라지는 수백년된 나무들, 분별한 벌채 현장과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박건영 대표는 PCB 설계업체 피디씨(PDC)를 20년째 경영하고 있다. 구미전자공고 졸업 후 SK하이닉스에 입사했지만 사업을 결심했다. 전원분야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독서토론모임에 참여한 지는 6년째다. 독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틔었다. 그는 "지금까지 책을 읽어도 나무만 보고 숲을 파악하지 못했다. 독서토론을 통해 접한 다양한 시각과 경험은 경영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집필한 '사업회로도'는 20년간 사업 철학과 경험을 회로설계에 빗대어 풀어냈다. '인간다움'을 설계 원칙으로 하는 그는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책에서 "직원들과 다같이 공동으로 회사를 움직이는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국제물류운송회사 혜미항공해운을 경영하는 엄기용 대표는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3월에 자전적 포토에세이 '집으로 가는 길'을 출간했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로 유년시절의 기억까지 끄집어냈는데 책을 썼다"며 "집필하는 과정에서 한결 겸손해졌다"고 말했다.

정민채 JMC부동산투자연구소 대표는 달동네에서 70억원대 강남엄마가 된 유명인사다. 그가 펴낸 '부동산 투자'는 직접 경험한 투자 실패와 성공 원인을 날 것으로 보여준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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