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사무실서 '찰칵' … 일상이 된 야근 증거수집

2022-08-16 11:43:03 게재

수당 못 받을까 두려운 직장인들 '인증샷'

수도권의 한 지식산업센터에서 야근을 하던 A씨는 사무실에서 퇴근할 때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직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야근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는 노무사까지 동원했지만 연차수당 일부만 추가로 받았다. 노무사는 "야근이나 휴일근무에는 사무실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어야 증거로 쓰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후 새 직장에서 야근이 없는 정시 퇴근에도 인증샷을 남긴다.


16일 법조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직장인은 물론 단기고용직(아르바이트), 외국인 노동자 할 것 없이 퇴근 '인증샷' 찍기가 퍼지고 있다.

시간외 수당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급여 생활자들이 자신의 근무 기록을 휴대전화에 남기는 방식이다.

대개 출근 시간은 다양한 시스템으로 회사가 파악해 놓지만 많은 기업들이 퇴근 기록을 하지 않고 있어 야근 수당 등을 청구할 때 피용자(근로자) 입장에서는 제시할 증거가 거의 없다.

사측이 초과 근무를 확인해주지 않거나 폐쇄회로(CC)TV, 업무용PC 등의 데이터 등을 지운 뒤 '모른다' '증거가 없다'고 잡아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근무 중 분쟁이 아닌 퇴사 후 분쟁은 더 막막하다. 함께 일한 동료가 회사 눈치를 보며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 경우 사진 파일에는 사진이 촬영된 시간과 위치정보가 고스란히 남는다.

이는 직장인은 물론 아르바이트 등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유니온센터 관계자는 "아르바이트 등 단기 근무를 하는 경우 제대로 수당을 안 챙겨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실제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기 전 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증빙자료로 인정해 미지급 급여를 받을 수 있어 '인증샷'을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 B씨는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돈을 받지 못했고, 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공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셀프사진을 찍어둔 게 유용한 증거로 채택됐다.

휴대전화에 기록된 GPS 정보가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8-1부(김예영 부장판사)는 근로기준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권 모씨에 대해 1심과 같이 유죄를 선고했다. 1심은 실형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일부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등의 사정을 고려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권씨는 일부 피해자에게 업무를 맡기지 않았다며 급여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직원 중 일부가 자신의 GPS 정보를 제공했고, 재판부는 이를 통해 권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오승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