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허술한 명퇴금 관리 47억원 날려

2022-08-23 11:19:02 게재

SR 이직한 34명 상대 패소 … 법원 "자회사 아닌 경쟁관계"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수서고속철도(SR)로 이직한 전 직원 34명에게 퇴직금을 반환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코레일 등 공공기관은 자회사로 이직하는 명예퇴직자들에게는 명예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어 이미 지급된 명예퇴직금은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SR이 코레일의 자회사가 아니라고 봤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2부(정현석 부장판사)는 코레일이 A씨 등 34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명예퇴직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 등은 코레일에서 20년 넘게 근속하다가 2015년 7월부터 2017년 6월 사이에 퇴직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자회사 취업을 전제로 명예퇴직하는 사람들에게 명예퇴직수당(명예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A씨 등도 건강이나 가사, 부채상환, 타 직종으로 취업 등을 이유로 명예퇴직을 신청했고, 코레일은 자회사 취업시 명예퇴직금을 환수한다는 약정서를 받았다. 이들에게 지급된 명예퇴직금은 4000만원에서 1억6000만원 등 모두 47억원 가까이 됐다.

하지만 A씨 등이 SR에 취업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코레일은 명예퇴직금 회수에 나섰다. 코레일은 "A씨 등이 SR로 이직 또는 재취업하는 것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회사를 기망했다"며 지급된 명예퇴직금 47억원을 환수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A씨 등은 해당 규정이 노동조합 동의 없이 신설된 '불이익 규정'이라는 점, SR이 자회사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거부했다.

재판부는 가장 중요한 쟁점인 코레일과 SR의 관계를 따졌다.

코레일이 SR 주식 41%를 소유하고, SR이 코레일을 지배기업으로 공지하고 있어 외견상 자회사로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통합 공시 매뉴얼에 따르면 50% 이상 지분을 소유했거나, 30% 이상 지분을 소유하고 임원임면권 등 실질 지배력을 가진 회사를 자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지분을 소유했지만 자회사가 아닌 경우는 출자회사다.

재판부는 이를 기준으로 "코레일이 SR 임원임면권까지 갖고 있다고 할 수 없고,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기준에 따라 실질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SR 도입이 논의되던 박근혜정부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철도산업 부채를 줄여나가기 위해 SR은 철도사업을 영위함에 있어 철도공사와 건전한 경쟁관계를 형성해 상호간 발전을 촉진시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며 자회사가 아닌 경쟁관계인 회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철도노조가 SR 설립에 반대하면서 파업에 나서자 서 장관은 철도산업 민영화가 아닌 '철도경쟁시대'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결국 재판부는 "SR이 코레일의 자회사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SR이 코레일 자회사에 해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명예퇴직금 반환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코레일은 "회사와 직원 모두 SR이 코레일 자회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명예퇴직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코레일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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